[특집] 고려 문인들의 청자 知好樂(지호락)을 아시나요
[특집] 고려 문인들의 청자 知好樂(지호락)을 아시나요
  • 김철 기자
  • 승인 2022.09.05 1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려 문인들의 삶이 담긴 '서재삼영 특별전'
고려청자박물관, 향로·화분·베개청자 등 오는 11월27일까지 전시

 

고려청자박물관은 지난달 24일 고려청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2년 고려청자 특별전 '서재삼영, 향로·화분·베개' 전시회 개막식을 열었다.

이번 특별전시는 고려청자박물관에서 고려시대에 문인들의 생활공간인 서재를 장식했던 청자 향로, 화분, 베개를 대상으로 당시 문인들이 각 기물에 어떠한 의미와 바람을 담았는지 알 수 있도록 특별 기획한 고려청자 '서재삼영' 전시회이다.

특별전에는 고려시대 서재에 놓인 향로, 화분, 배개의 기능, 특징을 더 세밀하게 접하는 자리로 준비됐다. 이번 특별전에 고려청자박물관은 국립광주박물관의 학술출판 협력지원사업에 선정돼 전시도록도 발간했다.

고려 문인들의 청자 知好樂(지호락) 도자기는 무엇일까. 고려청자박물관 조은정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도자기는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인들의 생활속에서 쓰여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남아 있는 문헌자료와 발굴조사된 유적, 유물을 통해 그 당시 도자기의 쓰임새를 밝혀야 한다. 고려사회를 이끌어간 지식인들이 남긴 시문(詩文) 곳곳에 청자와 관련된 내용이 남아 있다.

고려사회 문인들의 생활속에서는 어떤 청자들이 사용되었고, 문인들은 그 청자에 어떠한 의미를 담았을까?

당시 시문을 남긴 이들은 문신으로서 관료들이었으며, 그들의 주요 생활공간은 서재이지만 때로는 경치좋은 풍경속에 지어진 정자이기도 했고, 선방(禪房)일 때도 있었다. 

문인들의 공간에서는 행향(行香)과 독서, 음주(飮酒)와 음다(飮茶), 악기 연주, 서화 감상, 시작(詩作) 등 학문 정진, 연회(宴會), 유희(遊?), 문회(文會) 활동 등이 펼쳐졌다. 문인들과 승려들의 교류가 활발하여 문인들이 글공부를 위해 사찰의 선방(禪房)을 찾기도 했다.

선사와 같이 수행하거나 불교경전에 심취해 선시를 쓰는 이들이 많았으며, 승려들도 문인들과 어울려 시와 사(詞)를 짓거나 거문고를 연주하며 교유하였다.

이규보는 자신의 서재 책상위에 놓인 석창포 화분과 청자연적, 대나무로 만든 벼루갑, 즉 안중삼영(案中三詠)[소분석창포(小盆石菖蒲), 록자연적자(綠?硯滴子), 죽연갑(竹硯匣)]을 각각 시로 남겼다.

문인들의 공간에 문방사우(文房四友)는 기본이다. 책상 주변에 놓여 있어 가장 가까이서 늘 곁에 있었을 소중한 물건들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책상에서 조금 더 시야를 넓히면 문방 제구와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이 놓여있을 것이다. 다만 서재, 곧 문방(文房)은 마음을 닦아 맑게 하고 학문에 정진해야 하므로 간결하고 검소한 기물들로 꾸며졌을 것이다.

문방제구중에 속하는 청자연적, 청자벼루, 청자필가, 청자필통 외에 문인들 가까이에 있어 그들이 사랑하고 아낀 청자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문인들의 주요 생활공간에 있었을 법한, 그리고 여러 문헌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청자향로, 청자화분, 청자베개이다.

글공부하는 선비와 승려는 향을 맡으며 정신을 맑게 가다듬었다. 그리고 군자(君子)의 이미지가 투영된 석창포, 소나무, 대나무, 매화, 난초, 국화 등을 청자화분에 심어 서재 공간에 들여놓았다. 글공부가 힘들어지면 옆에 놓아둔 거문고를 켜거나 청자베개를 베고 단잠에 빠져 들었다.

청자향로는 문인들의 몸과 마음을 청한(淸閑)하는 필수품이었으며, 문인들은 한고(寒苦)와 담박(淡泊), 군자의 덕을 갖춘 여러 화초 화분을 완상하며 스스로 군자가 되기를 바랐고, 때로는 높고 서늘한 청자베개에 몸을 누인 채 평화로운 꿈을 꾸었다. 꿈결속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기도 하고, 신선이 되어 옥황상제를 만나기도 했으며 태평성대를 꿈꾸기도 했다.

청자화분은 거기에 심은 화초는 물론 화분 그 자체가 작은 정원이라 할 만큼 다양한 동식물로 구성된 자연풍경이 문양소재로 사용되었다. 연꽃과 버드나무를 배경으로 학과 원앙이 쌍을 이뤄 노니는 풍경을 표현하거나 만개한 모란을 정교하게 가득 새기기도 하고, 팔각화분에는 국화·모란·연꽃·버드나무를 각 면마다 새긴 후 모서리는 연주문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기존에는 이러한 문양이 시문된 방형 또는 팔각의 청자를 배수구가 없다는 이유로 향로로 구분해왔으나, 청자화분이 여러 시문에 등장하는 것처럼 고려시대에는 훨씬 많은 청자가 화분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청자베개에 대해서도 기존의 상징적 의미 외에 중국과 고려사회에서 또 다른 사회적 의미가 부여됐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당대 『침중기(枕中記)』에서 노생(盧生)의 꿈처럼 인생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왔다.

청자베개는 록자침(綠瓷枕), 자침(瓷枕), 옥침(玉枕) 등으로 불렸는데, 이와 더불어 주목할 만한 용어가 '고침(高枕)'이다. 높은 베개는 전쟁이나 국정 혼란이 없는 상태에서 높은 베개를 베고 편히 잘 수 있는 의미로 중국 고대부터 사용되었다. 이규보(李奎報)와 최자(崔滋)의 글에 등장하는 '만가고침(萬家高枕)' 역시 만백성이 베개 높이 베는 태평시대를 뜻한다. '서재삼영' 특별전은 오는 11월 27일까지 고려청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갖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