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추석이 올무렵
[기고] 추석이 올무렵
  • 이수희 _ 시인
  • 승인 2022.09.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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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희 _ 시인

어느덧, 여름을 데려간 사의재 뜰은 가을이 성큼 온 8월의 끝자락이다. 며칠 전부터인가 사의재 잔디밭에는 모과나무와 살구나무가 이사왔다. 그 옆 벤치 하나도 따라와 누군가 기억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 해 한 해 저 나무들이 이곳에서 터를 잡는다면 돌담이 있는 사의재 뜰의 또 하나의 상징물이 될 수 있지않을 것인가? 가만히 상상해본다.

그렇다면 살구꽃이 필 무렵을 기억하고 약속을 잘 지킬 일이 생길 것이다. 꽃처럼 화사하게 살아서 웃음꽃이 활짝 피어날 것이며 모과가 주렁주렁 열릴 때면 이곳을 방문한 이들에게는 항상 이야깃거리가 피어날 것이다.

또 하나 겨울밤에 우리는 찾을 것이다. 굴곡진 모과나무 가지 맨살에 달빛이 포근한 입술을 포개는 날을.

몇 해 전 우리 마을에도 새 도로가 놓인 곳에 신성한 소나무 아홉 그루가 이사 온 적 있다. 틈만 있으면 내가 말을 걸어보지만 우째 비스듬하니 자리 잡으며 마을 어귀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럼에도 겨울에는 긴 골목에서 불어온 바람들을 다 재우려고 하모니를 이룬다. 그 울음 들을 때마다 문풍지가 우는 듯하여, 나는 겨울밤을 하얗게 세우며 받아쓰기를 하것만, 이제 그 알 수 없는 울음까지도 정이 들어 한마을에 든든한 식솔이 되었다.

시간은 흘러 소나무 바로 옆집 할머니도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어슴어슴 영역을 밝히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모진 폭풍에 휘어져 울어야 하고 뙤약볕 아래서는 물끄러미 나무가 된다. 사계절 나무들의 순환과 순응을 보면서 우리 인간에게 삶의 표상을 던져주는 것이기도 하기에 오늘도 출퇴근 눈도장을 찍는다.

그 더웠던 계절이 바뀌고 우리도 차츰 익어가지만 중간중간 휴일이 있어 쉬어 갈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새롭게 찾아온 일상이 있어 늘 감사하지 않은가.

햇살 자락이 가상가상 꽂히는 가을은 이미 시작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늘 그대가 보고 싶듯이 멀리 있어도 항상 그 자리에서 서로를 읽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는, 그런 삶의 아카이브를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 한 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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