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말 그리고 말
[다산로] 말 그리고 말
  • 유헌 _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
  • 승인 2022.08.2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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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 _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

말 많은 세상이다. 말들이 판을 치고 있다. 내가 하는 말이 있고 남과 나눈 말도 있다. 남의 말을 듣고 전하는 말도 있다. TV도 말잔치, 스마트폰에서도 말들이 쏟아진다. 정치권의 막말은 가관이다. 갈수록 세지고 있다. 칼춤이 난무하고 있다. 말이 말을 만드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말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매일 살아가고 있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나는 말을 부리며 살아왔다. 말로 월급을 받았다. 말하는 걸 직업으로 삼은 방송사 아나운서였다는 말이다. 그 시절엔 바른말 고운말을 달고 살았다. 고상한 말만 골라 썼다. 그런 내 말이 요즘 많이 거칠어졌다. 정치판 얘기만 나오면 열부터 난다. 쌍시옷이 튀어나온다. 그나마 TV에 대고 목청을 높이니 누구랑 당장 다툴 일은 없어 다행이지만 불편하긴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나처럼 TV에게 큰소리치는 건 그걸로 끝난다. 인간관계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말로 말미암아 송사를 벌이고 이웃이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말과 관련된 속담도 많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는 건 말 많은 걸 경계하고 말을 아끼라는 의미일 게다.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말을 조심하라는 말이다.

말이라는 이 놈, 때론 천방지축이라 입술이라는 울타리를 한번 벗어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야생의 말이 된다  -유헌「말 그리고 말」전문

이처럼 말은 때론 날카로운 무기가 돼 상대의 심장을 찌르기도 한다. 입술을 한번 벗어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야생의 말, 야생마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잘 다뤄야 한다. '화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못 줍는다'는 속담처럼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오해를 살 만한 말은 자제하고 신중해야 한다. 

말은 듣는 것도 중요하다. 내 말만 앞세울 게 아니라 남의 말도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엊그제만 해도 그렇다. 자동차 오일을 교환하러 갔더니 앞바퀴도 교환시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이어 업소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결정을 했다. 금액이 많긴 했지만 승차감이 좋아진다는 말만 듣고 선뜻 결재를 했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뭐가 좀 맞지 않았다. 업소에 전화를 했더니 교환한 타이어가 외국산이라는 것이다. 내가 "소형차에 무슨 외제냐"고 하니까 분명히 나에게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건성으로 들은 게 분명했다. 자동차는 새 바퀴로 이미 잘 굴러가고 있는데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어 전화를 끊었다. 아내는 "남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 경향이 있다"며 내가 문제라고 했다. "덕분에 좋은 걸로 바꿨으니 잘 됐다"고도 했다. 말은 하는 것 못지않게 잘 들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일깨워준 타이어 사건이었다. 

어떻게 보면 말도 말을 닮았다. 긴 혹은 짧은 발음에 따라 뜻은 달라지지만 성질은 비슷하다. 잘 나가다가도 여차하면 돌변한다. 말꼬리를 잡으면 시비로 이어질 수 있고, 말꼬리를 잡으면 뒷발에 차이는 수가 있다. 말은 주거니 받거니 '응응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를 쳐주면 되고, 말도 말을 잘 알아들으니 '이랴 이럇차차 잘도 간다' 하면 된다. 말도 첫말부터 말 갈키를 세우면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말도 수가 틀리면 말갈기 세워 앞발 들고 대든다.

'말 갈 데 소 간다'는 말이 있다. 안 갈 데를 간다는 말이다. 우리말도 마찬가지이다. 안할 말을 골라하면 곤란하다.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비단이 곱다 해도 말같이 고운 것은 없다'는데 좋은 말을 두고 왜 거친 말만 골라 쓰려 하는가.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도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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