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소쩍새 우는 사연
[다산로] 소쩍새 우는 사연
  • 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 승인 2022.08.01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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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고향의 7월은 여름의 한복판이지만 낭만의 기운이 가득하다. 신록은 푸르러져 진한 녹색으로 치장했고, 고추는 파란색과 붉은 색이 조화를 이루고, 하얀 참깨 꽃이 피어서 여물어가며, 벼 잎사귀는 싱그러워지며 벌써 벼 이삭이 피기 시작했다. 낮에는 30도를 넘는 강한 햇살이 여름인가 하면은 밤이 되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기온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이때 즘에 가장 상쾌한 것은 저녁 산책이다. 석양에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시간에 동네 한 바퀴 도는 산책의 재미는 시골 생활 최고의 맛이다. 저녁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하늘은 어슴푸레 어두워져 오는데, 서쪽 하늘에는 석양의 낙조가 하늘에 아름다운 무늬를 남기고 있다. 연분홍 색깔, 진한 홍색, 노란색 물감이 햇살에 반사되어 하늘에 번지고 있다.

어찌 하늘뿐이겠는가? 7월 시골 정취의 꿀맛은 각종 울음소리다. 그것은 노래이고 자연의 합창이다. 물이 가득 담긴 논바닥에서 울어 대는 개구리 합창 소리, 지나가는 길손에게 소식을 알리는 멍멍이 소리, 저녁 여물을 달라고 소리치는 소들의 음매 소리, 각종 풀벌레 소리, 그리고 숲에서 들려오는 밤새 소리가 있다.

오늘은 밤에 우는 새소리 중에서 가슴을 진하게 울리게 하는 소쩍새 사연을 되새겨 볼까 한다. 소쩍새는 '소쩍 소쩍' 또는 '소쩍다 소쩍다'라고 해질녁부터 새벽까지 운다. 그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지루하지 않을 만큼, 여유를 가지고 가끔 씩 울어 주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소쩍새 울음소리를 듣다 보면, 왠지 가슴 한 곁이 허전해 지면서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못 잊어서 애타게 그리워하는 회한의 정이 떠오르게 한다.

소쩍새 울음소리는 여운이 있다. 어린애들이 떼를 쓰듯이 마구 울어대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학대에 면전에서는 울지 못하고 부엌 후미진 곳에서 숨을 고르며 훌쩍이는 며느리의 울음이거나, 도시로 떠난 애인의 소식이 그리워 혼자 애태우며 훌쩍이는 시골 아가씨의 울음소리다. 소쩍새의 울음소리에는 역시 사연이 있고 전설이 있었다.

아주 오랜 옛날에 며느리를 몹시 구박하는 시어머니가 있었는데, 며느리에게 밥을 주지 않으려고 아주 작은 밥솥에 밥을 짓게 하였다. 결국 며느리는 배가 고파서 죽게 되었으며, 죽어서 불쌍한 영혼은 소쩍새가 되었다.

그 새는 '솥이 적다 솥이 적다, 소쩍 소쩍' 라고 운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 소쩍새의 울음이 '소쩍 소쩍' 이라고 울면 그 해 흉년이 들고, '소쩍다 소쩍다' 라고 울면 그 해 풍년이 든다 라고 믿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소쩍다'는  '솥이 작으니 큰 솥을 준비해라' 라는 소쩍새의 예시라고 믿는 것이다.

소쩍새는 이름도 그렇고 사연이 많은 새다. 소쩍새라는 이름 외에 접동새, 자규, 촉백, 불여귀 등이 있고, 일부는 두견새도 같은 새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별개의 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름이 많은 새에게는 사연이 많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도 오대 촉 나라의 왕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자귀의 전설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각종 전설이 있으며, 가까이로는 백난아의 노래 '낭랑 십팔 세'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서도 소쩍새는 등장하고 있다.

오늘 밤도 구슬프게 울어대는 소쩍새의 사연은 무엇일까? 아마도 소쩍새는 어제와 변함없이 울어대지만, 듣는 사람의 심정에 따라서 애환의 정도는 달라질 것이다. 밤은 깊어 가고 개구리 합창 소리도 멀어져 가는 이 시간, 소쩍새 울음소리는 아늑한 꿈결에 들려오는 멋진 소야곡이다. 소쩍새를 소재로 한 시가 꽤 있지만, 그 중에서 이대흠의 시 한 수 인용해 보면서 소쩍새를 그리워해 보겠다.

소쩍새(이대흠)

밤이 되면 소쩍새는
울음으로 길을 놓는다
어둠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소리의 길

어린 새끼들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 간다
행여 길 끊어질까 봐
어미 소쩍새는
쑥둑 쑥둑 징검돌
연이어 놓는다
골 깊은 봄 밤
새끼 걱정에 쑥떡 얹힌 듯

목이 메어
목이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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