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딘가 천국이 있다면
[기고] 어딘가 천국이 있다면
  • 김수현 _ 강진군도서관
  • 승인 2022.07.26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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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_ 강진군도서관

제법 컸을 때의 일이다. 또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도서관에 자주 들락거렸다. 혼자 놀다가 지치면 친구를 찾아 나섰는데, 신기하게도 도서관에 가면, 서너 명은 거뜬히 만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서가를 두고 숨바꼭질을 하고, 책을 줄지어 세워놓고 도미노 게임을 하였다. 어쩔 땐 책을 띄엄띄엄 벌려놓고 징검다리 건너듯 겅중거리기도 했다. 가끔은 얌전하게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펼쳐서 그림 속 사람 많은 수로 내기도 했다.

그러다 심드렁해지면 흩어져서 책을 읽기도 했는데,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그렇게 해가 저물 때까지 도서관에서 놀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곳이 편안했던 것 같다.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는 이런 말을 했다. "어딘가 천국이 있다면 필시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다." 그가 도서관 사서로 일생의 긴 시간을 보냈던 터라, 그 말이 유독 마음에 들어온다. 고요한 도서관에서 책과 물아일체가 되었을 작가를 상상해보니 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시력을 잃은 뒤에도 보르헤스는 장서를 매만지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이곳이 나의 천국이로다." 왜 아니겠는가?

어린 시절 놀이터처럼 무시로 들락거렸던 도서관, 그때는 훗날 내가 사서가 될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도서관에서 노닐 때 다 읽지 못한 그 책들이 나를 사서로 이끈 것은 아닐까 한다.

그 때 만난 『작은 아씨들』은 어째서 유독 마음에 들었는지……. 네 자매의 정겨운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 그들이 소설 속에 입고 있는 드레스와 그들의 집을 상상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햇빛 잘 드는 창가를 골라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작은 아씨들』 속의 '조우'가 된 거 같은 느낌이 들어 행복했다.

강진에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생겼다. 바로 <어린이도서관>이다. 지난 2022년 3월 4일 봄이 오는 길목에 <어린이도서관> 개관식을 가졌다. 1층에는 어린이자료실, 골목독서실, 구름계단식 독서 공간, 특별독서실, 2층에는 다목적 강당이 있다. 쨍하게 환한 공간이다. 재미나고 아름다운 놀이터이다.

골목에서 뛰어 놀며 울룩불룩 근육을 키우듯, 강진의 아이들도 <어린이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생각의 근육을 키우기를 바란다. 참새가 방앗간에 들락거리듯, 갓난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듯, 꿀단지에 자꾸 손이 가듯, 수시로 불쑥불쑥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에 놓여있다. 그 되어가는 과정 속에 꼭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강진군 어린이도서관이 '어린이의 천국'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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