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숫자 공부를 해 볼게요
[기고] 숫자 공부를 해 볼게요
  • 김옥희 _ 영랑생가사랑방이야기꾼
  • 승인 2022.07.18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옥희 _ 영랑생가사랑방이야기꾼

나는 1947년생인데요. 지금 제 핸드폰에는 1964년 강진 금릉 여중 14회 앨범이 들어있어요.

나는 열여섯에 광주로 학교를 가게 되어 계속 객지에서 지내다가 환갑이 넘어서야 고향으로 내려와 멋진 노년을 보내고 있답니다.

강진 영랑 실버 시인학교로 시작하여 요즘에는 영랑예술학교 문학반 학생이랍니다. 매주 월요일이면 가방을 메고 손에는 책을 들고 거울 앞에 서서 요리조리 뽐낸 후 출발하죠. 지금은 마을 회관까지 군내 버스가 들어와 편하게 다니고 있지만 예전엔 6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렵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살짝 꺼내 보려구요. 어린 나이에 나는 읍내 여중학교에 가려면 산을 넘어서 20리 길을 오고 갔어요. 아침 6시에는 출발해야 지각을 안해요.

겨울이면 해가 짧아 산 넘어 집에 오는 길이 컴컴해서 너무나 무서웠어요. 내가 올 때가 되면 엄니는 산꼭대기에서 "옥이야 오냐?" 하시면 "엄니 나 가고 있어"라고 답해요. 엄니의 목소리에  무서움을 쫓아내며 걸음을 재촉해요. 엄니 손잡고 집에 오던 그 시간이 아련한 엄니와의 추억이네요. 그 먼 길을 지각, 결석 한 번도 안 해서 졸업 때 3년 개근상을 받았답니다.

이쯤에서 이야기 하나 더 하렵니다. 학교 가는 길 산을 넘으면 주덕이란 친구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했던 친구. 우린 어느 날 약속을 했어요 '내일 쌀을 퍼오자'고...

다음날 엄니 몰래 쌀독에서 쌀을 푸는데 얼마나 떨렸는지 도둑 질 하는 것 같았어요. 쌀이 조금 있어서 더더욱 마음이 떨렸어요.

친구와 학교 가는 길에 추돌이 할머니 구멍가게에 쌀을 맡기고 학교에 갔어요. 지금도  가게 자리는 폐가로 남아  있어 추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집에 오는 길에 가게에서 사탕을 받아 빨고 오는데 몇 개 안 먹었는데  친구 집이 가까워졌답니다. 사탕을 갖고 집에 가면 혼날께 뻔해서 친구와 길옆 산에다 묻어놓고 내일 먹자며 집으로 왔는데 엄니가 화나신 얼굴로 기다리고 계셨어요.  속으로 올 것이 왔구나 마음 단단히 먹었죠.

"너 오늘 쌀 퍼서 뭐했냐?" "무슨 쌀 나 안 펐어" "방바닥에 쌀이 떨어져 있드라,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줄테니 어서 말해" 사탕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러했노라고 말했는데 그때 엄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나는 철이 없었나 싶네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울 엄니 가 보고싶네요. 그립습니다.

어제 산에 묻어 둔 사탕이 생각나서 수업이 끝나자 친구와 곧장 달려가 사탕을 파보니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그 사탕은 몰래 퍼온 쌀과 바꾼 사탕, 꾸중 듣고 혼난 사탕, 아까워서 남겨둔 사탕, 세상에나 사탕 봉지를 꺼내니 사탕 봉지가 변하여 움직이는거에요. 산에 있는 개미들이 다 모였나봐요 상상해 보세요.

속상하고 또 징그러워서 친구와 난 울기 직전이었어요 그래도 사탕이 아까워 개미와 사탕이든 봉지를 들고 물가로 가서 씻어 먹었답니다. 13살이었던 우리는 그래도 재잘거리며 그 사탕을 빨면서 집으로 오는 길은 꿀맛이었답니다. 개미들이 먹고 남은 그 사탕 그 달콤함은 잊을 수가 없답니다. 지금까지 달콤한 사탕 맛은 못 먹어 봤어요. 지금 생각하니 그 사탕을 남겨서 엄니 좀 드릴 것을 그때는 내 입만 생각 했다니....이제야 이제야

졸업 앨범 속에 3년 내내 담임하신 전옥하 선생님과 친구들이 무척이나 보고 싶은 오늘입니다. 더위도 잊은 채 추억여행 다녀왔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