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이젠 겨울이 싫어요!”
[독자투고]“ 이젠 겨울이 싫어요!”
  • 특집부 기자
  • 승인 2005.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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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면사무소 정몽규

누구나 “농촌“ 또는 ”시골“ 하면. 대명사처럼 떠오르는 사물과 사연 그리고 추억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많고 많은 것들 중에서도 요즘 들어서 문득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듯한 정“이라고나 할까? 그런 추억이 그리워지는 것이 단순히 추운 겨울 날씨 탓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초가을 바람이 서서히 불어올 무렵 콩밭에 듬성듬성 뿌려놓았던 수수 이삭이 또록또록 여물어 제법 탐스럽게 보일 때 먹음직스럽게 생긴 수수 모가지 몇 개 꺾어서 저녁밥솥 에 쪄서 심심풀이로 까먹던 일.

콩밭에서 가을걷이 하면서 덜 여문 콩가지 들을 집에 가지고 와서 큰솥에 쪄서 온 식구들이 모여앉아 한 가지씩 들고 까먹으면서 이런 이약 저런 이약 오순도순 행복을 엮어 가던 일.

추수가 끝나기가 바쁘게 방아를 찧어 와서 그동안 꾸어다 먹었던 쌀을 우선적으로 갚는 것은 필수적이고, 하다못해 막둥이 생일을 핑계 삼던지 무슨 “쪼(?)”를 달아서라도 농사지은 새 찹쌀과 새 콩가루로 난질난질한 찰떡을 해서 따뜻함이 가시기 전에 이웃집도 돌리고 온 가족이 모여앉아 콩가루 흘려가며 맛있게 먹으면서 그 순간이나마 한 해 동안의 고생과 굶주림 모두 다 잊고 행복에 빠지곤 했었다.

집집마다 크게 여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곡간에는 수확해서 거둬들인 곡식 가마니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으며 독마다 일년 먹을 양식들이 듬뿍듬뿍 담겨져 있고, 간간히 돈 사서 가용에 쓸 콩이나 팥, 깨 등 잡곡류도 여기저기 꽉 차 있었으며 대두병에는 내년 종자까지 담아서 즐비하게 메달아 두었었다.

작은방 윗목에는 커다란 고구마 뒤대통이 자리 잡고 있어 동지섣달 기나긴 밤에 간식 걱정은 없었다. 무는 텃밭 양지쪽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놓고 무 잎은 엮어서 달아 메어두면 깊은 겨울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거리용이 된다.

이렇듯 그야말로 농촌의 겨울은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게 배불리는 먹고 노는 “풍요” 그 자체의 계절 이였기 때문에 겨울은 일년 동안 내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 농촌의 겨울은 몹시 쌀쌀하고 추워졌다. 때로는 아주 슬프도록 추울 때도 있다. 그 추위는 “텅 빔”에서 더욱 크게 느껴진 것 같다.

소득이 줄어드니 곡간은 물론 마음까지 텅 비고 젊은이가 떠나니 마을도 텅 비어 인심마저 떠나버렸다. 국민경제가 어렵다보니 도시로 간 자녀들 가정경제도 어렵다. 그러다보니 가용으로 쓸려고 남겨둔 콩팥 한주먹이라도 돈사서 자녀들에게 보태야 할 형편이다. 쌓여간 것은 농.축협 부채만 상한선까지 늘어나서 재산보다 부채가 많은 형편이다.

나락 값은 올라도 어려울 판에 해 마다 내려가고, 비료값, 농약값, 농기계값, 기름값은 자고나면 올라있다. 여름 내내 열심히 일을 해서 가을 추수를 하여 이리저리 정리하고나면 곡간은 다시 텅 비어있다.

텅 빈 곡간을 보고 있노라면 일년 내내 고생하며 키워왔던 희망과 쏟아 부었던 열정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같아 인생의 허무함과 처참함에 흠뻑 적시게 된다. 늘 상 그래왔듯이 “내년에는 더 나아지겠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또 한해를 시작해보지만 가을이 되면 도로아미타불 이다. 차라리 가을이 오지 않았으면 이처럼 추운겨울을 맞지는 않을 텐데... 정말! 우리농촌에 희망은 없는 것일까?

빈 곡간만큼 텅 빈 우리 농민들의 마음속을 무엇으로 채우랴!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가난했어도 행복했던 그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올해는 정말 신바람 나게 일할맛나는 한해가되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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