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1박2일의 여행 - 마량그라운드골프회
[다산로] 1박2일의 여행 - 마량그라운드골프회
  • 김성한 _ 수필가
  • 승인 2022.07.04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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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사람을 젊게 만드는 것이 둘 있는데 하나는 사랑이요, 또 하나는 여행이다.>

아침 7시. 관광버스는 강원도의 남이섬을 향해 갔다. 차내에는 마량그라운드골프회 남녀 회원 30명이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모두가 60대를 훨씬 넘긴 초로의 얼굴들이다.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들녘에는 아직은 앳된 볏모 들이 푸르러가고 간혹 긴 목을 늘어뜨린 흰 두루미들이 논 가운데서 한가롭다. 허유나 소부가 저랬을까? 그 모습이 은둔자들처럼 유유자적하다. 썩은 쥐를 탐해 오늘도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 까마귀들과는 사뭇 다르다.

마량그라운드골프장. 뒤로는 병풍처럼 긴 산이 드리우고 들녘 건너 저 멀리는 덕동포구다. 뒷산은 먼 옛날 왜구가 쳐들어오면 가장 먼저 봉화를 올려 서울까지 연락을 취했다는 봉대산이고, 덕동포구는 이 순신 장군이 병졸들을 훈련시키고 명나라의 진린제독을 접견했던, 그리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시신으로 돌아와 82일간을 쉬어가신 곳이다.

아마 그 당시에는 여기가 바다였었고 그곳이 강진군에 속했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곳도 그때 병사들의 훈련장이었을지 모른다. 그러한 이곳에 초등학교가 들어서 있었는데 학교가 폐교되자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고 아웃코스 4홀, 인코스 4홀의 골프장을 만든 것이다. 강진군에서 가장먼저 들어선 명실상부한 마량그라운드골프장 이다.

홀인 원. 그라운드골프의 꽃이자 백미다. 운동장안의 8홀을 돌면서 32회의 티샷을 하는데 그 티샷 1타로 홀포스트안에 공을 넣으면 홀인원이다. 15m. 25m. 30m. 50m의 거리에서, 보일 듯 말듯한 홀포스트 에 공을 넣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

깊게 파인 홀이라면 모를까 홀포스트이니 들어가도 타력이 강하면 밖으로 흘러나가 버린다. 그래서 단 한번의 티샷으로 공이 들어가 멈추면 그야말로 짜릿한 쾌감이 인다. 그 순간 공을 친 사람도 보는 사람도 "홀 인원" 하고 함께 외친다. 미지근한 맥주처럼 그냥 무덤덤한 사람도 간혹 있지만 거의 모두는 손을 치켜들고 환호한다. 어떤 사람은 팔짝팔짝 뛰기도 한다.

그리고 그 홀인원을 한사람은 '그라운드골프 성금 투척함'에 자기돈 1천원을 넣는다. 상금을 받는 것이 아니고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즐겁다. 지금 이 시간, 그렇게 해서 모인 돈으로 전 회원이 단체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남이섬 관광을 끝내고 소양강변에 있는 베어스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종일토록 버스를 탔는데도 누구한사람 피곤한 기색이 없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밖으로 나와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출향인 몇분이 여러 가지 식음료와 양주를 가지고 와 그야말로 즐거운 식사시간이 되었다. 소양강을 내려다보면서, 그것도 양주를 반주로.

다음날 아침. 호텔식으로 식사를 하고 소양강스카이워크를 걸었다. 강가에 노래속의 <소양강 처녀> 12m 동상이 옷깃을 펄럭이며 우리를 맞이했다.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곧바로 삼악산호수케이블카를 탔다. 그리고 뒤이어 가평수목원을 구경하고 수목원내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 내려오는 길. 지금까지 조용하기만 하던 차내가 조명이 번쩍이는 나이트클럽으로 변했다. 일행모두가 통로로 나와 뛰고 흔들었다. 회원중에는 근엄한 교육자출신도, 강퍅한 공직자출신도, 그리고 90이 다 되신 연로하신 노인 분도 계셨다. 그러나 그런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차안의 대형TV화면에서는 각설이품바가 끝없이 이어졌고 일행 모두는 그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골프로 다져진 체력 때문인지 일곱 시간여의 긴 시간 어느 한사람 지치지도 않았다.
흔히들 외로움(孤)을, 병(病)·가난(貧)·무위(無爲)와 함께 노년4고(老年四苦)라고 한다. 늙어가면서 겪는 4가지 고통중 하나인 것이다.

옛날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이 집안에 있었고, 이쁜 며늘아기가 끼니마다 밥상을 차려주었으며 또 문밖을 나서면 동내사람들도 많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가족구조가 변했고 농촌의 현실이 변했다. 더구나 코로나 라는 몹쓸 바이러스까지 생겨나 요 몇 년간을 외로움으로 보내게 했던 것이다. 통로로 나와 함께 흔들고 뛰었다. 뛰면서 어제 아침편지에 올라온 김 형석씨의 말씀을 떠 올렸다. 102세를 살면서도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분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30세까지는 교육을 받는 기간이었고 65세까지는 사회인으로서 직장에서 일하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65세부터 90세까지는 전 단계보다 더 즐겁고 보람되며 그리고 아름답고 의미있는 삶이었다. 그래서 인생은 2단계가 아니라 3단계로 살아야한다는 생각이다' -김형석의《인생문답》중에서 -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오자 품바는 기세를 더하고 차내의 열기는 극에 달했다. 즐거움은 바이러스처럼 전염이 된다던가? 모두가 한 몸이 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짧아 아쉬움이 조금 있었지만 그러나 즐거운 그리고 한편으론 많은 것을 생각게 한 1박2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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