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표없는 편지
[기고] 우표없는 편지
  • 강진신문
  • 승인 2022.06.20 14: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인선 _ 신전주간보호센터 요양사

강진만 뜰을 쉼 없이 달려온 꽂 바람이 주작산 허리쯤에 잠시 쉬며. 처녀 젖가슴처럼 몽실몽실한 아카시아꽃 속에서 떠날 줄 모르고 사랑놀이에 빠져 있습니다.

하얀 벚꽃잎이 눈꽃처럼 일렁이던 날!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젊은 나이였던 당신은 흰 고무신에 소복을 단정히 입으신 채 이승의 마지막 길을 휘적휘적 손 저으며 가셨습니다. 남은 자의 애끓는 그리움에 아프다는 한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동전 세 잎 노자 삼아 그렇게 그렇게 하늘나라 기차에 오르셨습니다.

삼십 년이 훌쩍 지난 세월입니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처럼 있건만 나날이 그리워집니다.

알싸한 찔레꽃 향기 같은 어머니의 냄새와 흰 옥양목 저고리를 단정히 입으시던 그때의 그 모습이 어제인 듯 선명하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어제부터 창포꽃이 피기 시작한 정원에 앉아서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가슴에 강물처럼 흐르던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와 주체할 수 없이 흐릅니다.

진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며 믹스커피를 유난히도 좋아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커피가 담긴 예쁜 잔을 잠시 탁자 위에 두고 가슴을 진정시켜 봅니다. 어머니가 계신 그곳에도 향기 좋은 카페는 있겠죠?

어머니와의 추억은 하늘에 별만큼이나 많고 많지만, 어머니 암 수술 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남매가 열흘씩 교대로 병실을 지키고자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가끔 진통이 시작되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곁에서 손을 꼭 잡아 드리는 것 이외에는 해 드릴 것 없어 안타까운 마음뿐이었습니다.

이내 진통이 잦아들고 정신이 맑아지면 그저 행복하고 아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민머리 환우를 보면 얼마나 고통과 싸우고 싸우다가 머리카락마저 빠졌을까, 가슴 한 모퉁이가 아릿해 왔습니다.

오전 내내 진통에 시달리시더니. 저녁 무렵 진통이 잦아들고 정신이 맑아진 어머니를 모자와 담요로 보호하고 휠체어를 밀고서 비상등만 켜있는 휴게실로 갑니다.

모녀가 두 눈 맞추고 두 손 마주 잡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945년 해방, 골목마다 태극기가 물결치고 환희에 넘칠 때 어머니는 홀로 장독대 뒤편에서 울었답니다.

일제 말기 정신대란 이름으로 처녀들을 공출해가니 외할아버지께서는 혼사를 서둘렀습니다.

사윗감 나이는 두 살 어리지만 3대 독자라 군대 안 가도 된다는 생각에 혼사를 결정,

꽃바람 불던 삼월 어느 날 덤덤한 마음으로 꿈많던 소녀는 그렇게 모든 걸 접고 꽃가마에 오르셨답니다.

조금만 더 버티었으면 하는 아쉬움 반, 힘든 시집살이 반을 울음으로 토해내신 열아홉 그 마음, 그 이야기를 들을 때의 내 나이 서른일곱. 처음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도 꿈 많은 소녀였으며 하고픈 것을 배우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가슴에 눌러 담고 남편과 자식만을 위해 가냘픈 몸으로 씩씩하게 사셨구나 라는 생각과 같은 여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로 어머니로 살아가는 것도 제일 중요하지만, 자투리 시간을 내어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 아직도 가슴깊이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사뿐히 작약꽃 스치고 지나는 바람결에 나지막이 어머니 이름 불러봅니다.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