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중국 고대 10대 병법서(兵法書)
[특집] 중국 고대 10대 병법서(兵法書)
  • 강진신문
  • 승인 2022.05.2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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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의 다시 보는 중국의 고전(11)
김점권 전 센터장은 도암출신으로 전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포스코건설 북경사무소장을 거쳐 중국건설법인 초대 동사장을 지냈다. 이어 광주테크노피아 북경 센터장을 거쳐 교민 인터넷 뉴스 컬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중국에서 25년간 생활한 역사와 고전, 문학류를 좋아하는 김 전 센터장을 통해 중국고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본다. 편집자주/

 

 

중국 10대 병법서라고 역사서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바는 없다고 한다. 단지 송나라 신종이 증공량외 다수의 신하들에게 지시하여 종전까지의 병법을 재정리하여, '武經 7書(武經總要)'라는 제목으로 병법서를 출간 한 적은 있다. 중국 10대 병법서는 무경 7서를 포함하고, 이후 명나라 시기 왜구 척결의 명장인 척계광까지 포함하여, 현대의 군사 전문가들이 선정하였다고 한다. 한번 알아보자.

10대 병법서는, 1. 춘추 시대 오나라 孫武의 '손자병법(孫子兵法)' 2. 전국시대 제나라 손빈의 '손빈병법(孫臏兵法)' 3. 전국시대 천재적 전술가 吴起의 '오자(吴子)‘’ 4. 주나라 전설적 전술가 강태공의 '육도(六韜)' 5. 전국시대 秦 나라의 위료가 지은 '위료자병서(尉繚子兵书)' 6. 전국시대 제나라 사마양저의 '사마법(司馬法)' 7. 唐대 저명한 전략가 이전(李筌)의 '태백음경(太白阴经)’ 8. 송나라 북송 許洞이 기존의 병법서를 정리한 '호령경(虎鈴經)' 9. 명나라 왜구 척결 명장인 척계광의 '기효신서(紀效新书)' 10. 척계광의 훈련 도감 ' 련병실기(练兵实纪)' 다. 상기 리스트 중, 1번부터 6번까지는 전문가 의견이 대동소이한데, 7번부터 10번까지는 호불호가 갈린다고 한다. 특히 전설적인 기인 귀곡자의 '귀곡자' , 황석공의 '삼략', 당나라 시절 당태종과 대화하면서 병법을 저술한 이정의 ' 李衛公問對', 명나라 창업공신 유백온의 '백전 기략'이 누락되고, 비교적 현대에 가까운 명나라 척계광의 병법서가 2개 포함 된 것은 이론의 소지가 있다고 한다.

참고로 송나라 신종 때 정립한 '무경 7서' 는 1. 손무의 '孫子兵法', 2. 오자의'吴子‘, 3. 사마양저의 '司馬法', 4. 위료의 '尉繚子兵书', 5. 당나라 이정의'李衛公問對', 6. 황석공의 '3略', 7. 강태공의 ''六韜' 다.

자, 이제 10대 병법서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와 책자 표지라도 올려보도록 하겠다.

1. 손자병법 (孫子兵法) 손자병법은 명실 상부한 중국 병법서의 태두다. 동양인치고 누구 하나 손자병법 전술 한두 가지 인용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그의 병법은 중국 병법의 원조이며, 그 옛날 고대에 나왔음에도 현대전에서 느낄 만한 전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명작이며 고전이다. 현상으로부터 본질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정치와 외교의 본질까지 파헤치는 인간 심리의 결정판이다. 손자병법의 핵심은 1.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말라 2.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병법이라는 것이다.​

2. 손빈 병법(孫臏兵法) 손빈은 손무의 후손이며, 귀곡자의 제자로서 동문인 방연과의 악연에 의해 장애인이 되나, 역경을 극복하고 제나라의 군사 참모로서 통쾌하게 방연에게 원수를 갚는 무용담은 세인에게 널리 알려졌다. 손빈 병법은 현존 30편 (약 1만 1천 자)으로서,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을 바탕으로 군사사상을 바탕으로 더욱 발전시킨 전국시대 대표적인 병법서다.

3. 오자병법 (吴子兵法)오자는 전국시대 다양한 인격체의 전술가다. 목적을 위해 가족을 헌신짝 버리듯이 하고, 부하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동고동락하며 고름까지 입으로 짜주는 전략가다. 그의 병법서는 2권 6편 18조(약 3천 자)로서, 그의 평소 생활태도와는 관계없이 군을 다스리는 데는 예의를 숭상하고 교훈을 밝히는 등 질서 정연한 병법 논리를 바탕으로 했으며, 실제 병법을 적용함에 있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었으나, 그의 말년은 결국 타살당하는 비극을 당한다. 그의 명언 중 '승리하여 천하를 얻는 자는 적으나, 망한 자는 많다' , '작전에서 가장 큰 실패는 망설임에서 비롯되고 삼군의 재앙은 의심에서 생긴다' 라고 하였다.

4. 육도 (六韜)육도는 주나라 개국 공신인 강태공의 병법서다. 내용은 6권 60편으로서 군대의 편제, 관리, 훈련, 행군, 포진, 공수, 병기, 군사이론 등을 종합하여 문답식으로 논술한 보급형 군사 전문서다. 육도란 문도, 무도, 용도, 호도, 표도, 견도 라고 하며, 앞의 3 도는 정치에 관한 내용이며, 후의 3도 (호도, 표도, 견도)는 구체적 병법서다.

5. 위료자 병서 (尉繚子兵书) 위료자는 전국시대 진(秦) 나라의 대신이라고도 하고, 위나라 설객 중의 한 명이라고 하는데, 신분이 불분명한 셈이다. 죽간으로 출토된 그의 병법서는 송나라 휘종 때도 이미 7대 병서로 인정받았으며, 5권 22편 (약 4천4백 자)으로서 정치, 경제, 군령, 군제를 다룬 병서로 현실적이며 신중한 정치관과 사상을 보여준 병법서라 알려졌다.​

6. 사마법 (司馬法) 춘추시대 제나라 위왕 때 중신 사마양저가 저술한 병법으로서 현존 5편 약 3천 자의 병법서가 있으며, 전쟁의 목적은 전쟁을 그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 있다는 대의를 바탕으로 역대 전쟁 사례를 통해 군사이론을 논술한 병법서다.​

7. 태백음경 (太白阴經)당나라 덕종에 하동 절도사인 군사전략가 이전(李筌)이 저술한 병법서다. 총 10권으로서 인사, 행정, 병기, 진법, 제사, 약방, 점술, 공격, 수비 등 10 가지 전 부문에 대해 상술하였다. ​

8. 호령경 (虎鈴經) 호령경은 송나라 (1004년) 때 군사 전문가인 허동(許洞)이 저술한 병법서로서 전체 20권, 120편의 편집되어 있으며, 손자병법과 태백음경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군사 작전에 대해서 논술하였다.​

9. 기효신서 (紀效新書)기효신서는 명나라 시절, 척계광이 동남 연해안 지역에 출몰하는 왜구를 무찌르기 위한 군사 전략서다. 총 18권 18편으로서 왜구와의 전투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군사 전반에 관해 문답식으로 논술한 병서로서 명대 군사사를 연구하는데 필독서로 꼽힌다고 한다.​

10.련병실기 (練兵实纪) 명나라 시대 왜구를 퇴치한 명장 척계광의 병사 훈련 지침서다.

이상으로 '중국 10대 병서'를 소개하였다. 사실 필자는 소개된 병서 중에서 풍월로 혹은 정색을 하고 병법서를 들여다 보긴 하였지만, 별무소득이었다. 우선 재미도 없었고 당장의 필요성이 덜해서인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중국 관련 서적 중 각종 병법서나 희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교훈을 주고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부분적인 전략 전술을 활용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서적이 유용했다. 즉, '모략 3권' '지전 3권' '간신론' '삼국지' '초한지' '동주열국지' 등이다.

'백면서생'이라는 단어가 있다. 병법서를 보는 이유는 상대를 이기기 위함이다. 그런데 병법서를 보면 전쟁에서 꼭 이길 수 있는가? 역사상 재밌는 고사가 있다. 먼저, 한무제 시절 최고의 장군 곽거병이다. 곽거병은 한무제의 친척이었으나, 젊어서부터 흉노와의 전쟁에 참여하였다. 약관 18세에 한무제는 곽거병에게 전쟁 참여 전, 병법서 일독을 강요하였지만, 그는 '병법서는 필요 없다. 현장에서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비하는 것이 최고다'라고 하면서 무시하였다. 곽거병의 전투는 항시 승리하였으며, 흉노군은 벌벌 떨었다. 그는 오로지 전쟁 상황에 따라 임기 응변했고 항시 승리했지만, 약관 24세에 병으로 죽고 만다.

자, 다음은 병법 대가의 말로다. 전국시대 조나라 멸망 시기, 조사의 아들이 조괄이다. 조사는 말단 세무공무원 출신으로서 체계적인 병법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근면 절약하고 현실 상황에 맞게 처신하여 대장군으로서 진나라와 맞서서 패하지 않았다. 그에게 조괄이라는 병법의 대가 아들이 있었다. 조괄은 병법에 대해서 막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기 전, 아내에게 유언하길 절대 조괄은 대장군이 되면 안 된다고 하였다.

조나라 왕은 조괄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괄을 대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왕은 "왜,어머니가 자식의 출세를 그렇게 반대 하느냐?" 라고 묻자, 어머니가 말하길, “먼저 죽은 아버지의 간곡한 유언으로 아들은 병법은 모르는 것이 없으나, 세상을 모른다 라고 하였으며, 실제 이번 대장군이 되었을때 아버지는 받은 격려금을 부하들과 나눠가졌는데, 아들은 논밭사느라 정신없었다" 라고 하였다. 결국 조괄의 50만 대군은 몰살 당하고 조나라 패망의 시간을 단축시켰다.

원인은 무엇인가? 공부만 한 것이다. 손자병법 전쟁 승리의 요소는 '修道保法'이라고 했다. 즉 먼저 자신부터 정의로운 도를 세우고, 구체적인 전략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이 배우고 안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며, 먼저 겸손하게 세상을 구하는데 일조하겠다는 수양이 먼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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