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버지의 생일을 맞이하며
[기고] 아버지의 생일을 맞이하며
  • 김남영 _ 주부
  • 승인 2022.05.16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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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영 _ 주부

2남 6녀의 제일 큰아들인 나의 아버지, 그리고 우리 5남매, 우리의 가족은 언제나 대가족이었다. 한 집안에 15명이 넘는 식구가 살아가는 것은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옛날에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나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경제력이 없었으므로 가족의 부양을 다 도맡아야 했다. 얼마나 힘이 드셨을지 생각해본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집에 오시면 말이 없으셨다. 무서우리만큼이나 누구도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돈이 필요할 때도 돈을 달라고 바로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봐야만 했다. 아버지가 기분 좋을 때를 골라 조심스럽게 말해야 했다.

가족들이 아버지를 어려워 했지만 나에게는 돈을 달라는 방법이 있었다. 중학교 다닐 때는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주시곤 했다. 아버지가 다니시던 우체국이 중학교 바로 옆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도착할 때쯤이면 "아빠, 노트 사야 하는데 돈 주세요?" 하면 그때는 어김없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주시곤 했다. 그 방법은 잘 통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남원을 떠났다. 타지에서 대학을 다닌 후 시집을 갔다. 그러면서  아버지하고는 소통의 시간이 적었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버지와 나는 서로 소통하는 법을 점점 잃어갔다. 그렇게 필요할 때만 서로가 말을 주고 받을 뿐이었다.

돈 버는 데만 열심이셨던 아버지,
버럭 소리를 잘 지르셨던 아버지,
자기를 위해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셨던 아버지,
가족을 위해 희생하셨던 아버지,
무엇이든 혼자서 그 무거운 짐을 지시고 모든 것을 해결하며 지내셨던 아버지.

그때는 몰랐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정을 꾸리고 한 가정의 아내로 열심히 살면서 나의 생활속에 아버지가 문득 문득 들어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지금도 그 마음을 다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 자식들이 나를 모르는 것처럼 나도 끝까지 그 깊은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 고생하셨던 아버지가 지금은 행복하시길 바란다.

아버지 나이 올해 80세이다. 아버지의 얼굴과 손등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내려 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시큰해진다. 가족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사셨던 분인데  지금은 치매가 있어 기억을 잘하지 못한다.

"남영이가 어디에 있어? 뭐해? 조금 전에 주머니에 두었던 돈 어디에 있어?"

버럭 하던 성질도 많이 없어지고 우리가 집에 찾아가도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 그냥 가만히 말없이 계시기만 하신다. 나이가 드는 줄도 모르고 일만 하시다가 늙어 버린 나의 아버지에게 연민이 겹쳐진다.

밤잠이 없으셔서 영화도 잘 보셨던 아버지가 지금은 밤9시가 되면 방에 들어가 주무신다.

이런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제일 많이 닮은 사람이 나인 것 같다. 제일 싫어하는 모습을 닮아 있는 나. 미워하면서 닮아 가는가 보다. 나도 똑같이 내 아들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마음을 줘야겠는데 이게 나의 숙제이다.

시간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화사한 봄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마음을 훔친다. 우리 아버지는 가장 아름다운 봄에 태어나셨다. 내일모레면 아버지 생신이다. 강진으로 초대를 했다.

가족을 위해 고생만 하셨던 나의 아버지의 수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전국에 음식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한정식집도 예약해 두었다.

생신상을 받은 아버지의 얼굴 주름이 활짝 펴졌으면 좋겠다. 지금 나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에게 좀 더 다정스럽게 좀 더 사랑스럽게 좀 더 곰살맞게 말해보고 싶다. 안아드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가까운 시간에 그렇게 하고 싶다. 이런 걸 용기를 내야 한다니 참 내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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