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풀꽃
[기고] 풀꽃
  • 이소향 _ 강진군도서관 우리들서평단
  • 승인 2022.05.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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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향 _ 강진군도서관 우리들서평단

자연은 색채로 시간의 흐름을 알려준다. 연두색의 여린 잎들이 어느덧 여름으로 가기위해 녹음이 지고 있다. 봄을 맨 먼저 알리는 매화를 필두로 개나리, 진달래 등 각양각색 봄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백색의 찬연한 벚꽃은 벌써 우리 곁을 떠났고 소담스럽게 피어난 풀꽃은 여기저기서 아직도 '봄이에요'라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지만 벌써 한 낮의 기온은 여름을 향하고 있다.

풀꽃! 소담스럽고 지천으로 널린 꽃.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게 부끄러워 담벼락 아래 살며시 피었다가 한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여리지만 생명력이 강하고 소담스럽지만 자주 들여다보면 예쁜 풀꽃. 마치 우리네 엄마를 닮은 것 같다.

풀꽃이 한 철 피어나는 것처럼 5월 가정의 달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어버이의 날, 자녀는 어느덧 자라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자연으로 돌아간 지 오래, 그리운 나의 어머니!

신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어머니란 존재를 만들었다고 한다. 모든 생명의 모태이고 자양분이신 어머니, 그분의 희생으로 자녀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다시 태어난다. 만약 어머니가 세상에 없었다면 녹색 지구 행성은 어떻게 되었을까?

풀꽃은 여리지만 어둡고 차가운 겨울 한철 새싹을 움트기 위해 준비한다. 얼음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대지로 흐르며 봄의 전령사가 되어 봄을 알린다. 씨앗은 흙과 물, 바람, 태양을 머금고 기지개를 켠다. 새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돌보아 주는 이 하나 없어도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꽃을 피우고 바람과 벌과 교류한다. 이내 씨앗을 남기고 자연으로 귀향한다. 하지만 생명 순환은 지속된다. 마치 조상이 부모님을, 그리고 부모님이 자녀를 남기듯이.

일제 강점기, 6.25동란 등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60년대 경제 발전의 주역으로 사시다가 가신 나의 엄마. 그분에게 따뜻한 봄날과 수확의 시간 가을이 존재했을까? 농경시대를 거쳐 간 엄마는 다산으로 어려운 경제 속에서도 많은 자녀의 부양과 행복을 위해 본인을 희생했다. 쌀 항아리에 담긴 쌀이 점점 줄어들고 자식들은 제비처럼 엄마만 바라볼 때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린 나이에 잘 알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만나 시모 공양하고 어린 자식들까지 부양해야 할 '어느덧 엄마'가 되어 버린 나의 어머니는 겨울 한철 어두운 땅속의 씨앗이 아니었을까? 여리디여린 소녀가 엄마가 되어 가부장적 환경과 부양, 가장의 역할 등 많은 시간을 인내했어야 할 풀꽃 같은 나의 어머니.

어머니가 남긴 씨앗들은 따뜻한 양지에서 발아하고 싹이 터 이제 소담한 꽃을 피워 열매를 맺으려 하는데 천지에 당신의 자취는 흔적조차 사라진 지 오래.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실감에 가슴 한편이 시리다.

옆을 돌아보아도 뒤를 돌아보아도 당신은 이곳에 남아 있지 않다. 온전한 마음의 씨앗처럼 나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나의 풀꽃. 나의 어머니! 모든 사람을 대면할 때 전생의 어머니라 생각하며 모든 이를 잘 대하라는 어느 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진정성이 아닌 당신을 어느 한순간이라도 대면하기를 소망해 본다. 찰나의 스쳐 가는 인연이라도 좋으니.

당신은 내게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나의 자양분. 당신은 씨앗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꽃을 피울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해주시고 영원히 건너올 수 없는 그 강을 건너셨고, 나는 그리움이란 그 강의 언저리에 머무는 당신의 풀꽃인 것을,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표현할 수 없는 꽃으로만 남은 나는 당신이 나는 오늘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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