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전의 앞면 뒷면
[기고] 동전의 앞면 뒷면
  • 최희복 _ 활동지원사
  • 승인 2022.05.03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희복 _ 활동지원사

동전에도 앞면 뒷면이 있듯이 우리 인생사도 앞면 뒷면이 있겠지요?

이른 아침 병영성을 휘 돌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영성의 동문(정문)으로 들어 와 남문·서문·북문의 성곽을 걷다보면 거대한 역사속의 한 주인공이 된 듯 머리 속은 그 당시 인물로 들어가 봅니다. 성내에서 지내는 중인·양반·무인 중의 한명이었을까? 성밖에서 거주하는 천민출신이었을까? 요즘 같은 시대라면 양반·천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병영 사람들, 면사무소 직원 모두 친절하시고 인정이 넘쳐서 저도 병영면민이 되고자 합니다. 남문 앞에 있는 북카페는 둘이 가서 커피 한잔 시키면서 "커피양이 많아요" 말씀드리면, 한잔이 두잔 되어서 탁자 앞에 갖다 주십니다.

일본서 병영으로 시집 오셨다는 제가 이모(82세)라고 부르는 분은 어찌 지혜스럽고 처세를 잘 하는지 저도 그분처럼 나이 들어가고 싶습니다. 앞에다 작은 텃밭을 가꾸시는데 고추, 더덕, 감나무, 파 등 철따라 본인이 드실 만큼만 밭농사를 관리하십니다. 하다보면 더 많이 수확도 하고 싶고 밭두렁도 더 넓히고 싶을텐데... 3년 정도 지켜봐도 꼭 그 만큼만 밭을 일구십니다.

솔직히 꼭 그만큼이 쉬울것 같지만 욕심이 그렇지 않거든요. 더 많이, 더 넓히고 싶은게 인간의 욕망일텐데...아주 절도 있게 삶을 사시는 것 같습니다.

화려하게 넘쳐 났던 벚꽃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연녹색의 산야가 시선을 푸르게 합니다. 까치내제 고개 길은 터널공사로 복잡한 불편이 있습니다만, 금년 10월쯤은 터널을 통해서 병영성을 다닐것 같습니다.

겨울이면 기상악화로 금곡사 까치내재는 통행이 금지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터널공사가 완공된다면 읍내서 병영까지 십분내로 도착할것 같습니다.

코로나19시대를 넘기면서 제 삶의 목표가 화려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더 책임감 있게 살고자 합니다. 동전의 앞면으로 관심 받고 돋보이고 싶었다면 지금부터는 동전의 뒷면으로 자연을 접하면서 맨발로 텃밭 일구면서 그렇게 살고자 합니다.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면서 이웃들과 소통하는 삶을 꿈꾸어 봅니다. 병영성을 돌다보니 수백년의 세월이 한눈에 보여 무상함도 느껴지고, 더 훗날 누군가는 이 성곽을 걷고 걸으면서 저처럼 삶의 목표가 달라질 수도 있을테니까요.

면단위에서 중앙부처 예산으로 문화재 복원은 유일무일하게 병영면의 전라병영성뿐이랍니다. 하멜기념관도 새롭게 단장하여 관광객을 맞이할 채비가 마무리에 접어 들었습니다. 배진강의 연방죽의 구조가 우리나라에는 없던 구조로 되어 있다는데 하멜 일행이 노역을 하면서 저수지 모습이 네델란드식으로 엮어져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병영쪽의 크고 작은 저수지물이 하고저수지로 모아져서 병영성내까지 흘러 들었다는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쪽의 저수지들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한군데로 모아져서 하고리 중고·상고 면민들의 생활수 역할을 수백년 이어져 왔다니 세계유산에 등록될만 합니다. 연방죽(배진강) 관문인 홍교는 배진강 다리라고 하는데 무지개형으로 짜 맞추어 점토로 다리 위를  다져서 상단에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형상인데 누군가 용머리를 잘라서 개인소장 하고 있답니다. 볼 때마다 애석합니다. 하루빨리 용머리가 홍교 상단 중앙에 세워 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배진강 누각은 관광객 누구나 한번쯤 머물고 가는 정자입니다. 근처에 화장실은 면에서 관리를  한다는데 커피향이 흘러나오는 최신식 화장실입니다. 3년을 오가며 지켜보는데 한번도 눈쌀 찌뿌리게 한적이 없습니다. 요즘은 장날만 반짝 장이 서는데 예전에는 장사를 하려거든 병영으로 들어가라는 옛말도 있었답니다.

어느새 병영면민이 다 된듯합니다. 코로나19 끝난 좋은 시절 전라병영성을 찾아서 성곽을 밟으며 예전의 영광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