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사학의 모태 금서당의 이야기를 전하다
강진 사학의 모태 금서당의 이야기를 전하다
  • 강진신문
  • 승인 2022.03.2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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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 - 남성리 영랑길 2]
옛날 학교 금서당(Ⅰ)

강진군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강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19년부터 매년 '우리 동네 옛이야기' 책을 발간하고 있다. 책 편찬에는 강진 출신 김옥애, 강현옥, 장미연 동화작가가 글로, 김충호 화백이 그림으로 참여하고 향토사학자 양광식 강진문사고전연구소장의 감수를 받았다.

올해 세 번째 펴내는 강진 이야기 동화책에는 남성리 영랑길의 역사, 문화 이야기 6편을 오일파스텔 삽화와 함께 책에 담았다.

'우리 동네 옛이야기' 남성리 영랑길 편에 가까운 옛날 실존했던 인물들과 유적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강진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관서제(금서당)

 


금례는 너럭바위(넓고 평평한 큰 돌)에서 아버지를 기다렸어. 막대로 흙을 콕콕 파다가, 나무에 몸을 콩콩 찍다가, 돌탑 앞에 서서 서당에 다니게 해주십사 빌었지. 그래도 아버지는 기척이 없으셔.

'언제 오실까?'
산길을 살피다가 청솔모와 눈이 딱 마주쳤단다.

"히히히, 나랑 놀자!"
금례는 이리저리 내빼는 청솔모를 쫓아다녔어. 금세 흙투성이가 되어버렸지. 갈래머리도 삐죽빼죽 엉망이 되었고.

"에구, 엄니한테 혼나겠다."
연신 흙을 털어내지만 무명옷(무명으로 지은 옷)에 벤 풀물은 그대로야.
"아부지는 왜 안 오시지?" 아무래도 산 중턱까지 가봐야겠어.
"으~음~ 으~응~으~음~"

아버지 볼 마음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어. 졸졸졸 물소리에 재재재 새소리까지 절로 어깨춤이 들썩들썩. 제비꽃에 코를 막 박으려는데…….
"금례야~~~" 아버지가 코앞에서 부르시네.
"오메! 아부지~~~"

그대로 아버지 품에 안겼지. 아버지는 딸을 와락 보듬고는 토닥토닥 두들겼어.

금례 아버지는 농사지을 땅을 얻지 못했어. 이런저런 막일을 하다가 결국은 숯장수가 되었지. 하지만 숯을 파는 날보다 가마터에서 지내는 날이 더 많았단다. 왜냐고? 그야 정직하고 성실한 일꾼을 만났으니 그쪽에서 금례 아버지를 꽉 붙잡을 수밖에. 그는 매일 나무를 베다 나르고 숯가마에 불을 지폈어. 잘 구워진 숯을 식혀서 지게에 잔뜩 짊어지고는 여기저기 팔러 다녔지. 숯 일을 하다 보니 온 몸이 까맸어. 눈만 빼고.

아이들은 금례아버지가 나타날 때마다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놀렸더란다. '까마귀 숯장수'라며. 그때마다 금례는 '손에 잡히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목에 핏줄을 세워댔지.
"아부지, 왜 늦었어요?"
"일이 많았다. 엄마는?"

"엄니는 만날 똑같지. 낮에는 식이네 일 돕고, 밤에는 삯바느질하시고."
"음……."
"아부지, 저기 금서당. 나도 서당 보내주면 좋겠는데……."

금례가 아버지 옷소매를 흔들었어.
"응? 응? 아~부~지~"
"금례야, 우리 집에도 훈장님이 계시잖니."
"엄니 말고. 한복 입은 진짜 훈장님한테 배우고 싶단 말이에요."
"요놈, 엄마한테 이른다?"

아버지가 눈을 흘겼어. 금례는 속으로 겁이 났어. 입을 꾹 다물었지.
그동안 어머니는 금례에게 아학편(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아동의 한자 학습을 위하여 저술한 교재)을 가르치셨어. 부엌바닥에 글씨를 쓰고는 소리 내어 읽혔지.

"하늘 천, 땅 지, 아버지 부, 어머니 모."
"하늘 천, 땅 지, 아버지 부, 어머니 모."
금례는 곧잘 따라 읽었어.
"무슨 뜻이냐?"
"하늘, 땅, 아부지, 엄니?"
"맞아. 하늘과 땅만큼 부모가 소중하다는 말이지."
"네."
"천지부모(天地父母), 땅바닥에 또박또박 써 보아라."

금례는 괴발개발 글씨를 따라 썼어. 아, 하늘을 가리키는 말이 이렇게 생겼구나? 속으로 새겼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공부재미가 붙기 시작했어. 산을 보면 山(산)자를 그렸고 꽃을 보면 花(화)를 그렸어. 위를 가리키며 上(상)자를 쓰고 아래를 가리키며 下(하)자를 썼지. 세상이 점점 넓어진 느낌이었어. 궁금한 것도 많았지.

"엄니, 친구는 어떻게 써요?"
"가깝게 오래 사귄 친구는 이렇게 쓰지. 친할 친, 예 구(親舊)."
"이건 어렵네?"
"글자보다 뜻을 새겨라."

금례는 몇 번이고 바닥에 썼어. 점례, 점례, 친구, 친구, 자꾸 뜻을 새겼지.
아이들은 서당이 끝나기 무섭게 너럭바위로 모였어. 야트막한 언덕배기가 놀기에 좋았거든. 낡은 가마니를 엉덩이에 깔고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돌을 모아 성을 쌓기도 하고,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서 술래잡기도 했어. 그중 유독 뭉쳐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어. 윤식이, 현구, 부진이.

"저 애들 또 모였어." 점례가 말했어.
"모여서 공부하나 보지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금례는 속으로 궁금했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귀를 기울였지.
"애들아, 훈장님 하신 말씀 생각나?"

"뭔 말?"
"자기 이름 뜻 알아오란 말씀?"
"아니"
"그럼, 글자보다 뜻을 새기라는 말씀?"
"맞아!"
'글자보다 뜻을 새기라고?'

어쩜 훈장님 말씀과 어머니 말씀이 똑같지? 금례는 듣다가 깜짝 놀랐어. 애들은 제 이름의 뜻을 알아보자는 둥 공부 그만하고 놀자는 둥 야단이더니 언덕으로 우르르 몰려갔어. 금례와 점례는 산길을 오르며 길가에 난 나물을 뜯었단다. 아버지 밥상에 봄나물을 올리려고.

"점례야, 이것도 먹는 거지?" 금례가 물었어.
"응, 그건 쑥지야. 된장에 조물조물 무치면 맛있어."
"이것은?"
"돌나물, 요건 취나물."
"넌 아는 게 많구나?"
"무얼. 이제 두릅 따러 가자."
"그래!"

금례는 점례가 마냥 좋았어.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바랑에 나물을 가득 채웠더란다. 집에 가는 길, 두 소녀는 목청껏 노래를 불러댔어. 기분이 좋았거든.

저건네라 저배는 건넌네라 저배는
중배더냐 새배더냐 중배더냐 새배더냐
은접시는 은꽃패고 은접시는 은꽃패고
놋접시는 놋꽃패고 놋접시는 놋꽃패고

금례는 어머니가 바느질 하며 부르는 이 노래를 뜻도 모르고 익혔거든. 둘은 박자를 맞춰가며 고래고래 불러댔지. 그 때였어.

"두~례 간~다" "두~례 간~다~~"
"금례 점례 두~례~래요~~" "금례 점례 두~례~래요~~"

남자아이들이 뒤따라오며 놀려댔어.
"메~롱 메~롱 메~롱."

어린 상구까지 혓바닥을 날름대니 참을 수가 없었지.
"이것들을……. 콱!"

덩치 좋은 점례가 겁을 주자,
"엄~마~야~~~"

다들 부리나케 도망쳤어.
"또 놀리기만 해봐라. 그때는 확!"

점례가 다시 주먹을 흔들어댔어.
"우리 점례 최고!" 금례는 엄지손가락을 척 올렸지.

금례 아버지는 보름에 한 번쯤 집에 오셨어. 어머니는 여전히 밤새 바느질을 하느라 손톱이 닳도록 일을 하셨고. 죽어라 일을 해도 세 식구 겨우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지. 때는 1906년, 일본 놈들이 판치는 세상이라 백성들의 삶은 더 고달플 수밖에. 풍수 좋은 땅은 그들이 차지하고 일본식 집을 짓고는 남의 땅에서 호령하며 살았더란다. 그 뿐인가? 도자기, 구리, 꼬막, 전어, 쌀 등 손가락으로 일일이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들을 빼앗아갔지. 착취한 물품을 실어 나르는 배가 백금포(강진 영포의 포구. 정식명칭은 군령포. 흰 모래가 많다고 해서 백금포라 불리움)에 30여 척 들락날락거릴 정도였으니까. 강진 지역의 수탈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만하지?

"이럴 때 일수록 교육이 중요합니다."
"군수님 말씀이 옳아요."
"신식 학교를 세웁시다."
"학과목도 나누고 좋은 선생님을 모셔옵시다."
"그렇다면 기금부터 모아야겠군요."
"옳소!"

본래 관청 주변 탑골은 선비, 지주, 상인, 건달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았더란다. 제 이익만 챙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 어려운 일이 닥치면 소매를 달달 걷었지. 군민들은 학교 세우는 큰일에 십시일반(十匙一飯:열 사람이 밥 한 술씩 보태면 한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 힘을 보탰더란다.

어느 정도 기금이 모태지자 선생님을 모시느라 서울로 충청도로 바삐 움직였어. 그렇게 해서 실력 있는 선생님을 모셨는데, 그 중 계몽운동가 손붕구씨와 청년 조재갑씨가 유명했단다. 1907년 4월 1일 드디어 사립금릉학교를 열게 되었고, 백여 명의 학생들이 그들을 열렬히 환영했지. 굉장한 풍경이었어.

금례는 금서당(관서제)이 금릉학교로 변화하는 과정을 다 지켜보았어. 제 집 앞이 학교였으니까. 야간에도 학생들이 복닥복닥 거렸어. 책보를 들고 공부하러 다니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몹시 부러웠지. 어머니는 그런 딸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

"금례야, 어서 나와 봐." 점례가 숨을 헐떡이며 문간에서 불러.
"왜? 아침부터 야단이니?"
금례가 사립문을 열었어.
"금릉학교 운동회래. 우리도 구경 가자."
"우린 학생도 아닌데 뭣 하러 가니?"

금례가 입을 삐죽였어.
"왜 상관없어? 강진 사람들이 다 구경 가는데. 응?"
"다 간다고?"
"그래. 금례야, 제발! 우리도 도시락 싸서 가자."
"그러면 그, 그럴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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