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도암 성자마을
[마을기행]도암 성자마을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5.01.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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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가 시작된다는 소한(小寒)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창 키를 키워가는 보리의 푸릇함이 들녘을 덮고 있다.

맹위를 떨치는 동장군의 위세에 굴하지 않고 따스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햇볕은 잠시나마 한겨울의 추위를 잊게 만든다.

강진읍에서 출발해 강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석문산(272m)을 지나 찾아간 곳은 도암면 성자마을.

마을 옆으로 뛰어난 자연경관과 천혜의 기암괴석을 간직한 석문산이 자리하고 있고 마을 앞으로 넓은 농토를 가지고 있어 풍족한 삶을 영위했을 성자마을은 30여호, 50여명의 주민들이 오붓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삼수골, 큰골, 작은골, 역지골 등으로 불리는 골짜기를 뒤로 하고 고즈넉하게 내려앉은 성자마을은 겨울의 찬바람을 석문산과 마을 뒷산인 깃대봉이 가리고 있어 따뜻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방송중계탑이 설치돼 이름지어진 깃대봉은 도암면에서 매년 새해 해맞이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지난 1일에도 많은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해맞이행사가 열렸다.  

마을은 도강김씨가 처음 터를 잡은 것으로 전해지며 인근 석천마을에서 옮겨 와 ‘작은석천’으로 불리다 성자골로 명명됐다.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월하, 신리, 석천리라는 지명이 나오며 석천, 월하, 신리마을은 석문리로 통합됐다.

성자라는 마을 지명은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루어진 1914년 이후부터 해방이 되기 이전에 하나의 행정마을로서 체계를 갖추면서 등장하게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때 도강김씨 자자일촌이었던 마을은 현재 해남윤씨, 장수황씨, 평해오씨, 평산신씨 등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 찾아간 마을회관에는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주민들이 집에서 가져온 음식과 술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들어서자 선뜻 음식부터 권하는 주민들의 변함없는 인심이 정겹기 그지없다. 농한기에는 매일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주민들은 마을자랑을 먼저 꺼냈다.

주민 김병인(58)씨는 “마을주민들 사이에 다툼이 없고 화합이 잘 되는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제”라며 “마을 안길 풀베기와 쓰레기 청소 작업 등 울력에도 각 호당 1명씩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울력에 불참하는 경우에는 미도라고 해서 2~3만원의 벌금을 낸다”며 “미도로 울력을 함께 한 주민들을 위한 빵, 음료 등 간식을 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만덕리 마점마을로 넘어가는 금당골에 위치한 한국유리공업이 지난 97년 경영상의 이유로 문을 닫으면서 성자마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주민 오오님(64)씨는 “20여년전만해도 한국유리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도암중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하숙할 방을 구하느라 마을에 빈방이 남아나지 않았다”며 “학생수가 줄어들고 한국유리가 폐쇄되면서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옆에 있던 김기평(69)씨는 “우리 마을은 올해 105세를 맞는 주민을 비롯해 80세 이상 장수하는 주민들이 많다”며 “특히 여자들이 장수하는 마을로 65세 이상 주민들로 이루어진 20여명의 노인회에서 남자회원은 단 3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상수(58)이장과 함께 마을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도강김씨 제각인 추원묘를 찾아나섰다. 매년 음력 3월 전국에 살고 있는 도강김씨들이 모여 제향을 모시고 있는 추원묘는 성자마을로 처음 이거한 김응정 외 7위를 모시고 있다. 추원묘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논밭에는 여느 마을에서 볼 수 없는 각종 묘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묘목들에 대해 김이장은 “마을출신으로 강진농고 등에서 원예교사로 근무한 김동규씨가 심기 시작한 묘목들”이라며 “미맥농사보다 소득이 높아 심기 시작한 묘목들이지만 판로를 찾지 못한 상태”라고 소개했다.
세월의 풍파와 함께 해온 추원묘는 아름다운 문화재로서 손색이 없었지만 제대로 보수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성자마을에는 상을 당하였을 때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상포계가 있으나 상여를 맬 수 있는 주민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서울, 광주에서 생활하는 도강김씨들이 매년 동짓달 보름에 모여 문원들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는 도강김씨 대문계가 남아있다.

성자마을 출신으로는 나주원예고등하교 교사로 근무하는 김동규씨, 도암면 부면장을 지낸 임종승씨, 서울에서 중국어학원을 운영하는 김영규씨, 광주 한빛교회 목사로 활동하는 임수완씨, 광주에서 중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윤주현씨, 여수에서 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하는 김순일씨,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있는 김종석씨, 광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오아영씨, 대구 한국은행에 근무하는 김남규씨, 광주에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는 김동필씨, 대선건설을 운영하는 오선옥대표, 현대자동차 강진대리점에 재직하고 있는 김병석씨, 전기공사업을 하는 윤순호씨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 또 이수택 신전면장이 성자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최장수 신중님(105)씨를 모시는 며느리 김갑인(83)씨


올해 105세가 되는 신중님할머니를 찾았다. 100세가 넘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신할머니의 모습에서 며느리 김갑인(83)씨의 지극한 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60년 넘게 신할머니를 봉양하고 있는 김씨는 “육식보다 해물과 채소를 즐겨해 하루 3끼를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틀니 사용을 싫어하셔서 모든 음식을 드시기 편하도록 부드럽게 만들어 상에 올린다”고 말했다.


신할머니에 대해 김씨는 “젊으실 때나 지금이나 말 한마디라도 싫은 소리하실 때가 없다”며 “어디서 이런 시어머니를 만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또 김씨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시면 머리에 동백기름을 직접 바르실 정도로 행실이 고으시다”며 “사시사철 제철에 맞는 옷을 직접 챙기시며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씨는 “노인당에 가면 백살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늙지 않는다는 우스개 소리를 듣는다”며 “지금처럼 어디 크게 편찮으신 데 없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셨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4남3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 김씨는 “자식들이 각자 맡은 일 모두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며 “결혼 적령기에 찬 손주들이 제 짝을 찾아 올해는 꼭 결혼했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밝게 웃었다.


아직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어 노인이란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한다는 김씨의 모습에서 참된 효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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