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시절 고향 설은 따뜻했다
[기고] 그시절 고향 설은 따뜻했다
  • 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 승인 2022.02.1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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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고향에서 설 명절을 맞이하는 것이 25년만이다. 고향의 설분위기는 조용하고 담담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하다. 핵가족화, 도시화의 영향이 근본적인 변화의 요인이겠지만,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가 적막함의 정점을 찍었다고 할 것이다. 나이가 먹었다고 하더라도 왁자지껄했던 옛 설 명절 분위기가 그립다. 어릴 적 설 분위기를 가만히 회상해 봄으로 자족해보려고 한다.

설 명절 준비는 약 1달 전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초가 지붕을 새로 단장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동네 아저씨들과 약 3일간을 볏짚 이엉을 손으로 엮어서 하루 동안 새로운 볏짚 이엉으로 교체하고, 울타리까지 말끔하게 새로 단장하고 나면 초가집은 아늑함과 따뜻함으로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제부터 설 준비는 대부분 어머니 몫이었다. 설이 다가오면 좁은 방안이 더욱 좁아졌다. 고구마 더미로 비좁은 방안에는 새로운 손님, 콩나물과 녹두 나물 시루가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으며, 방 윗목 어느 지점에는 동동주 담아놓은 항아리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어서, 사실 그 좁은 방이 발 뻗을 곳조차 찾지 못할 지경이었다. 방안  가득 퍼져 나가는 누룩에 술 익는 냄새, 콩나물 시루의 흥건한 물과 재가 섞인 애매한 냄새, 고구마 더미에서 부분적으로 썩고 상하여 나는 퀴퀴한 냄새, 그래도 언제 한번 불편하게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웠다.

자, 이제 설 명절 10일 정도 앞두고 나면 본격적인 설 준비 아닌가? 동네 어느 엄마는 엿을 얼마나 만들고, 식혜를 얼마나 담가야 하고, 산자와 유과 등 한과를 준비했다. 그리고 일년 동안 잘 먹고 지냈던 놋그릇을 양잿물과 볏짚 재로 닦아내서 반짝반짝 빛을 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설날에 대한 우리들의 가장 큰 희망과 설레임은 설빔이었다. 설날을 앞둔 대목 장에 가신 부모님께서 과연 무슨 옷을 사다 줄 것인가? 부모님이 장에 가신 그날 하루는 희망과 설레임으로 도통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 줄 몰랐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 부모님이 해가 져도 오시지 않고, 밤 8시 근방에 도착했을 때 그 반가움이란 어찌 말로 표현 할 수 있었겠는가, 방안에 들어서자 마자 펼쳐 든 설빔, 양말 한켤레, 검은 고무신, 검은 교복, 혹은 나일론 목 폴라, 내복 등 대부분 몸에 1.5배 정도는 커 보였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었던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 최소 자식들만 평균 5명 이상이었는데, 궁핍한 부모 입장에서 한 명 한 명의 자식들에게 빼놓지 않고 설빔을 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짠해진다.

드디어 설날을 3일 앞뒀다. 이날부터 산에 가서 나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온 식구는 어머니가 준비한 뜨거운 물로 돼지 움막에서 온몸을 씻어내렸다. 그리고 새로 사준 내복을 걸치고 설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제 설 음식 요리 시작이다.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이 떡국 사리다. 집에서 가마솥에 쌀을 삶아서 동네 방앗간에 가져가면, 먹음직한 떡국 사리가 만들어졌다. 하얗게 쌓인 눈밭을 김이 서리는 가래떡을 짊어지고 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행복 그 자체였다. 사리는 약 하루 정도 말려서 굳어지면 온 식구가 달려들어 잘게 썰어야 했다.

이제 설 떡을 준비해야 한다. 가장 먼저 시작한 떡이 쑥떡이다. 쑥덕은 떡 표면에 푸른 곰팡이가 피워도 데워 먹으면 걱정 없던 가장 위생적인 떡인지라, 15일이 지난 보름까지 먹을 수 있었다. 다음은 노란 콩가루에 묻혀먹는 설떡의 왕자인 찹쌀 인절미다. 그리고 겨울의 신사 시루떡을 뺄 수 없다.

드디어 설날이다. 섣달 그믐날 밤은 왜 그리 길고 아침은 더디었는지, 창호지가 하얗게 변하기를 몇 번이나 지켜보았던가! 아침 떡국 먹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설빔 착복이다.설날의 분위기는 동네 어르신부터 시작된 세배가 인근 친척 어르신, 구석구석 산소까지 성묘 다니다 보면, 벌써 정월 대보름이었다.

대보름에는 대보름만의 음식이 기다리고 있고, 이웃 동네 애들과 밤새 불꽃 싸움을 하고, 불넘기를 하고, 논둑을 태우다 산불이 나기도 하고, 밥을 지어서 문앞에다 누군가를 위해 고시레도 하고, 연날리기도 하고, 하얗게 빛나는 보름달 밑에서 하루 저녁을 꼬박 새워야 했던 겨울에 대한 송별식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고향의 설 명절도 끝이 나고 길고 길었던 겨울도 끝이 났다. 나이가 먹어도 아름다운 추억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몽롱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 옛날이여, 가난하고 어려운 그 시절이었지만 그립고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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