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개척서, 송나라 명재상 여몽정의 파요부(破窯賦)
운명 개척서, 송나라 명재상 여몽정의 파요부(破窯賦)
  • 강진신문
  • 승인 2022.01.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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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의 다시 보는 중국의 고전(6)

 

김점권 전 센터장은 도암출신으로 전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포스코건설 북경사무소장을 거쳐 중국건설법인 초대 동사장을 지냈다.
이어 광주테크노피아 북경 센터장을 거쳐 교민 인터넷 뉴스 컬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중국에서 25년간 생활한 역사와 고전, 문학류를 좋아하는 김 전 센터장을 통해 중국고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본다. 편집자주/


여몽정, 가난한 유년시절 거쳐 3번 재상 지낸 명신
방약무인한 진종에게 가르침 주기 위한 수양서


세상을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은 어렵지만, 중국 고전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길을 제시하고 있다. 공자, 노자, 석가모니 등 동양의 내노라 하는 철학자들이 주창하는 바가 모두 상기 질문에 대한 고찰이다. 하지만 사상은 깊고 난해하여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송나라 명재상 여 몽정(?蒙正944~1011년)이 지은 '破窯賦'는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 명문이다. '파요(破窯)'란 '깨어진 기와조각'이란 뜻으로서, 여몽정이 어린시절 가난하여 깨어진 기와조각 위에서 잠을 자면서 공부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전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파요부(破窯賦)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바람과 구름이 있고, 사람은 아침저녁에 있을 화와 복을 알지 못한다.

지네는 발이 100개 있으나, 달리는 것은 뱀을 따르지 못하고, 닭의 두 날개는 넓으나, 하늘을 나는 것은 까마귀를 당하지 못한다.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으나, 기수가 지시하지 않으면 스스로 갈 수 없으며, 사람은 비록 하늘을 뚫는 깊은 뜻이 있다고 하여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그 뜻을 펼칠 수 없다. 대저 듣기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부귀만을 떠받드는 것은 옳지 않으며, 비천함을 업신여기는 것 또한 옳지 않으니라.

세상을 놀랠만한 학식 있는 공자도, 일찍이 진(陳) 나라에서 곤욕을 당했으며, 무략이 출중한 강태공도 한때 위수가에서 낚시질로 세월을 보냈다.

공자의 제자 안회는 단명하였지만 흉악한 사람이 아니었고, 천하의 도적인 도척은 장수하였지만, 선량한 사람이 아니었다.

요순 황제는 성인이었으나, 불초한 자식을 낳았으며, 고수는 완고하고 미련하지만, 도리어 대성인을 낳았다.

장량은 원래 한미한 선비였고, 소하는 작은 현의 관리에 불과했으며, 안자는 오 척이 안되는 단신이었으나, 제나라의 재상이었으며, 제갈공명은 초야에 은거하다 촉한의 불세출의 군사가 되었다.

초 항우는 불세출의 영웅이었으나 오강에서 자살하였으며, 한 왕 유방은 비록 약했으나, 천하를 움켜쥐었고, 한나라의 이광은 활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는 명장이었으나, 제후에 오르지 못했고 풍당은 천하를 짊어질 수 있는 인재였지만, 인생은 불우했다. 한신은 시운이 없을 때는 하루 삼시 세끼 때우는 것도 어려웠으나, 시운이 오자 천하의 대장군이 되었고, 다시 시운이 가자 여인의 음모에 허무하게 죽게 되었다.

어려서는 가난했다가 늙어서 부자가 되기도 하고, 경륜이 가득해도 백발이 되도록 급제를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능 없고 학문이 깊지 못하여도 소년등과를 하는 사람도 있다.

젊어서 궁중의 귀인이었다가, 늙어서 기생이 되기도 하고, 기녀가 되었다가 정부인이 되기도 하며, 젊은 미녀가 아둔한 남편을 만나기도 하고, 준수한 미남이 추녀 아내를 만나기도 한다. 교룡이 때를 얻지 못하면 물고기나 새우들이 노는 물속에 몸을 잠기며, 군자도 시운을 얻지 못하면 소인의 아래에서 몸을 굽힌다.

군자여 때를 얻지 못해 의복은 비록 남루하여도, 마음은 항시 의젓하게 행해야 하고, 얼굴에는 근심이 어리지만, 가슴속에는 평안한 마음을 지니고, 불우한 시기에도 분수를 지키고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면 언젠가 억압에서 벗어나 활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잃지 않고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필히 미간에 정기가 흐를 것이다. 군자는 어려서 가난하더라도 천연으로 귀한 골상이 형성되고, 소인의 행동으로 부자가 되면 천한 골상을 면치 못하게 된다.

하늘도 때가 되지 않으면 해와 달의 광채가 없으며, 대지도 때가 되지 않으면 초목이 자라지 않는다. 물도 때가 되지 않으면 풍랑으로 잔잔할 수 없으며, 사람도 때를 얻지 못하면 좋은 운이라도 뜻을 이루지 못한다.

내가 어릴 적 낙양에서 머무를 때 절에 가서 밥을 얻어먹고, 밤에는 차가운 도자기 가마에서 잠을 잤다. 입은 옷은 헤져서 몸을 가릴 수 없었고, 멀건 죽으로는 배고픔을 피할 수 없었다. 그때 어른들은 나를 혐오하였고, 어린이들은 나를 핍박하였으며, 모두들 '나를 천하다'고 하였다.

내가 그 뒤에 급제를 하고 벼슬이 높아져 지위가 삼공의 반열에 들고, 만조백관을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밖으로 행차할 때는 채찍을 든 병사들이 호위하고, 집에 있을 때는 미인이 시중을 들고, 마음만 먹으면 산해진미와 능라비단의 옷을 마음대로 걸칠 수 있게 되었다.

윗사람은 나를 총애하고, 아랫사람들은 나를 받들면서 모든 사람들이 나를 흠모하며 말하기를 '내가 귀하다'라고 하였다.그때 내가 말하기를, '내가 귀한 것은 원래 귀한 것이 아니고 천한 것은 내가 원래 천했던 것이 아니다. 단지 나에게 주어진 時와 運과 命 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오호라! 대저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부귀만을 받드는 것은 옳지 못하며, 빈천함을 업신여기는 것 또한 옳지 못한 것으로서, 이는 천지가 순환하여 마치게 되면 다시 시작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전문 마침)

여 몽정은 원래 관리 출신의 문중에서 자라다가 어머니가 이혼하고 나서부터 어린 시절에  가난하여 허름한 폐가에서 자면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장원급제 후 3번에 걸쳐서 재상을 지낸 명신이다. 이 글은 여 몽정이 송태종 황제의 태자 (후일 송 진종)의 스승으로 있으면서, 방약무인한 진종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쓴 수양서라고 한다. 사실 황권 시대의 스승은 어렵고도 위험한 자리다.  생사 여탈권을 쥔 황제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언제까지 당신이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느냐고, 질책할 수 있는 스승은 드물다. 이런 측면에서 여 몽정은 솔직 대담한 정직한 사람이며, 세상의 인심과 흥망성세를 달관한 인사였다.

자,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뜻을 마음대로 펴보지 못한 불우한 인재들이여 용기를 내시라. 위수가의 낚시꾼 강태공은 76세에 출사하여 천하의 스승이 되었다고 하지 않은가? 젊어서 천하의 운세를 짊어진 잘 나가는 인재들, 혹은 지금 천하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여, 하루아침에 무너진 항우와 한신의 말로를 생각해 보시고 하루하루를 근신하며 신중하게 처신하시라. 여문정의 말처럼 인생사 언제 어떻게 될 줄 아무도모른다. 단지 세상을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면 명운은 따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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