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달콤한 샘물이 먼저 마른다
[다산로] 달콤한 샘물이 먼저 마른다
  • 김제권 _ 수필가
  • 승인 2021.12.0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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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생명체는 죽음 앞에 두렵기 마련이다. 나는 오래 전 재래식 도축장 책임자로 근무 한 적이 있다. 가축이 트럭에 실려와 도축장 문으로 들어 설 때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며 눈물을 흘린다. 피 냄새와 느낌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도를 닦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던 공자(孔子)도 죽음이 두려운 때가 있었다. 천하를 주유하던 중 환난을 당해 칠 일간 꼼짝 못 하고 갇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대공임(大公任)이란 대부가 위문을 와서 묻는다.

"선생님은 곧 죽을 것만 같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그렇소."
"선생님은 죽음을 싫어하시오?"
"그렇소."

이 말을 들은 대공임이 말했다.

"동해에 의태(意怠)라는 새(鳥)가 있었는데 동작이 굼떠서 능력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무리 지어 날아갈 때는 다른 새를 이끌고 앞장서지 않고 맨 뒤를 따랐으며 먹이가 있어도 먼저 맛보지 않고 다른 새들이 먹고 나며 맨 나중에 먹었습니다. 그러므로 무리에서 배척당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 새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곧은 나무가 먼저 베어지고, 물맛이 달콤한 샘물은 먼저 마른 것입니다."

곧은 나무는 고급스런 가구를 만들거나 집을 짓는 데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에 목수들이 그 나무를 먼저 찾는다. 그러므로 곧게 쭉쭉 뻗은 나무는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자라는 도중에 베어지게 마련이다. 반면에 이리저리 굽은 나무는 땔감 외에 쓸모가 없어 욕심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크게 자랄 때까지 베임을 받지 않고 선산을 지킨다.

물맛이 달콤한 우물은 길어 가는 이가 많으므로 빨리 마른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보다 재주가 출중한 사람은 혹사되기 마련이며, 일찍 쇠퇴하게 되는 것이다.

공자가 지혜를 자랑하며 어리석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몸을 수련하여 그로써 남의 허물을 드러내며, 마치 해와 달을 들고 다니듯 그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당연히 화를 면치 못한다고 충고했던 것이다. 즉 공자더러 너무 잘난 체하지 말라고 충고한 것이다.

사람 사는 이치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출한 자식을 잘 키워놓으면 부유한 처갓집 데릴사위로 사돈댁에 뺏겨 버리거나 해외나 대도시로 떠나 살지만 못나고 뒤처진 자식이 끝까지 부모 곁에 남아 효도한다.

한때 모든 사람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으며 기대와 촉망 속에 승승장구했던 사람은 기억 속에 사라졌지만 열심히 제자리를 지키며 덕망을 쌓아온 사람은 오랫동안 존경받으며 사는 경우가 많다. 강물이 너무 맑으면 먹잇감이 없어 큰 고기가 살 수 없듯이 사람도 성품이 원만해야 주변에 사람이 많은 법이다. 지나치게 똑똑하거나 엄격하면 존중은 받을지라도 존경 받기는 힘들다.

속이 텅 빈 깡통이나 빈 수레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어떤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언제나 과묵하고 겸손하다.

나의 학창시절 때 한 친구가 떠오른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기질과 제주가 뛰어나서 공부와 운동을 잘했다. 주변 사람들이 장차 크게 될 것이라며 기대를 했는데, 사회생활이 순탄치 못해 결국 알코올 중독되어 친구를 만나면 횡설수설하며 지내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반면에 학창시절엔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 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온 친구는 지역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살고 있다.

귀하고 아름다운 내 삶, 타고난 능력을 탓하지 말고, 굽은 나무처럼 비바람이 불어도 그 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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