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향 이모님의 김장 김치
[기고] 고향 이모님의 김장 김치
  • 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 승인 2021.12.0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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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금년도 벌써 가을의 끝자락인 11월 하순이 되었지만, 포근한 늦가을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무슨 겨울 초입이 이렇게 온화하냐고 되묻고 싶지만, 다음 주부터 비 오고, 눈이 오며 영하 날씨에 접어든다고 한다. 사람 심리 묘하다. 포근한 날씨가 싫지는 않지만, 왠지 와야 할 것이 오지 않으면 약간 불안하고 그날이 기다려진다. 마치 어릴 적 예방주사 맞을 때의 기분이라고 해야 할 거나, 지금껏 대자연의 흐름에 잘 길들여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고향에 온 지 10개월이 넘었다. 11월 하순이면 김장철이다. 이맘때쯤이면 어릴 적 시골 풍경은 집집마다 김장 담그느라 어머니들은 바빴다. 필자도 텃밭에 배추 9포기, 무 20여개를 심었고 나름 잘 자라고 있지만, 이번 김장은 이웃 동네에 살고 계시는 이모님이 김치를 담가 주시겠다고 한다. 어머니는 25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홀로 남은 이모님의 사랑이다.

이모는 각종 요리도 잘하시고 김치도 정말 맛있게 담그신다. 지난 2월에 보내주신 배추김치는 거의 반년간 내 집의 보물이었다.이모님의 김장 방법은 고향의 전통적인 전라도식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본인만의 특기가 숨겨져있다. 전통적으로 들어갈 양념 모두 포함하고, 추가로 이모님만의 노하우인 소고기나 생선 절임 등 고기 맛이 절묘하게 양념 속에 융합되어서 김치 맛을 더욱 깊고 감칠맛 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 이모의 배추김치는 온갖 양념과 고기 부재료가 융합된 종합식품인 셈이다. 이모님의 배추김치는 김장 후 즉시 먹어도 생김치 다운 풀냄새가 나지 않고 숙성한 맛이 우러나오며, 특히 겨울을 보내고 봄철이 되면 이모의 김치는 더욱 깊은 맛을 낸다.

이모의 김치는 김치찌개에 최고의 장점이다. 이미 김치 속에 온갖 양념이 녹아있고, 소고기나 생선 등이 녹아서 숙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김치와 멸치만 넣어서 끓여도 깊은 맛이 우러나오며, 거기에 두부나 돼지고기 몇 점 얹은다면 금상첨화다. 김 모락모락 나는 쌀 밥에 김치찌개, 소주 한 잔, 다른 반찬은 들러리일 뿐이다.

겨울 어느 날, 입맛도 막연하고 새로운 요리 만드는 것도 귀찮고, 냉장고에 반찬도 심드렁하다면, 노란 냄비에 배추김치 듬성듬성 썰어 넣고, 굵은 멸치 몇 개 투하하고, 김치가 반쯤 익을 정도로만 살짝 익혀서 밥과 함께 먹으면 끝이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먹고 나서 뒤 끝 좋기로는 이보다 좋은 음식이 있겠는가? 이모가 만든 묵은지의 힘이다.

요즘 인터넷 정보란에 보면 전라도식 김치가 유행이다. 전라도식 김치의 핵심은 멸치 젓갈과 다양한 양념을 넣어서 다소 진한 김치 맛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라도식 김치도 전남지역과 전북지역의 맛이 다르고, 전남 지역에서도 고향인 강진과 인근 지역인 해남, 장흥 지역의 김치 맛이 약간 달랐다. 물론 고향의 한 동네에서도 집집마다 김치의 맛은 달랐다. 이유는 주부의 손맛, 즉 양념의 내용과 정도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었다.

고향에 있을 때야 약간 다른 김치 맛이었지만, 84년 직장 생활로 포항에 입성하고 처음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배추김치의 맛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를 실감했다. 실체는 사용 젓갈과 양념의 차이였다. 나이가 먹을수록 배추김치 먹는 횟수는 늘어나고 있다. 많은 반찬이 필요 없다. 냉장고 속에는 아내가 만들어 놓은 이런저런 반찬이 많이 있지만, 밥 먹을 때는 입맛 드는 반찬 한두 개면 족했다. 주로 배추김치 관련된 것이다.

중국에 25년간 살았을 때 가장 그리운 것은 고향의 김치 맛이었다.가끔씩 아내가 김치를 집에서 담궈 먹었지만 고향의 김장 김치 맛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대량으로 공급해 주는 배추김치는 주로 조선족이 공장에서 만든 김치였는데, 맛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멸치 젓갈의 투하량과 양념의 정도가 고향의 김치와는 비교 되지 않았다. 어느날 아내가 김치 한 포기를 자랑스럽게 식탁에 내놓았다.

왠일인가 하여 심드렁한 마음으로 김치 한조각 입안에 넣는 순간,입안에 착 달라붙는 이 감칠맛 나는 여운, 고향의 배추 김치 맛이었다. 무슨 연유인가 하였더니 고향 출신 할머니가 북경 우리 지역에 새로 김치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아, 얼마나 고맙고 기쁜일인지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할머니의 김치는 북경 생활의 활력소였다. 한국사람에게 김치는 역시 그냥 반찬이 아니다. 김치는 우리의 힘과 한국사람이라는 자부심, 그리고 고향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그리움의 원천이었다.

우리 지역 강진에서도 김장김치 사업을 지자체에서 적극 권장하고 지원해 주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고향의 맛있는 김치가 전국으로 전파되고 해외의 교포들에게까지 전파되어 고향 힘의 원천이 스며들길 바란다. 이모님이 주신 김치가 김치냉장고에 가득하다. 연로하심에도 자식들 입맛을 위해서 고군분투해 주신 이모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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