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훈의 대명사, 안씨가훈(顔氏家訓)
가훈의 대명사, 안씨가훈(顔氏家訓)
  • 강진신문
  • 승인 2021.11.2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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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점권의 다시 보는 중국의 고전(4)

 

김점권 전 센터장은 도암출신으로 전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포스코건설 북경사무소장을 거쳐 중국건설법인 초대 동사장을 지냈다. 이어 광주테크노피아 북경 센터장을 거쳐 교민 인터넷 뉴스 컬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중국에서 25년간 생활한 역사와 고전, 문학류를 좋아하는 김 전 센터장을 통해 중국고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본다. 편집자주/

가훈 (家訓)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교훈이다.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가훈을 담은 책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안씨가훈>이 대표적이다. <안씨가훈>을 중국의 대표적 가훈으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대를 초월하여 어느 시대에나 걸맞은 보편성 때문에 오늘날의 냉혹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씨가훈>은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 중국에서 가장 혼란한 시기의 하나인 남북조 시대에 살았던 안지추 (顔之推 531~ 602년)가 후손을 위해 남긴 교훈서다. 그야말로 혼란한 시기에 가장 현실적이면서 이상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세상을 잘 살아가는 비결을 모아서 자식들에게 물려준 셈이다.

안지추는 원래 남조의 귀족으로 재능을 인정받아 관직에 올랐으나 얼마 되지 않아 남조가 북조에게 망하자 유랑 생활을 하며 망국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 후 북조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으나 오래지 않아 첫 번째 섬기던 왕조가 멸망하고 두 번째 왕조도 멸망하고 말았다. 남북 합쳐 세 나라를 섬겼으나 모두 멸망하였다. 요즘 회사원에 비유하자면 다니던 회사가 세 군데나 도산당해 안정된 생활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굉장히 힘겨운 생활을 한 안지추는 "나는 혼란한 시대에 태어나 전쟁을 겪으며 성장했고 살기 위해서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녔다"라고 회고했다. 결국 안지추는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의 관리가 되어 말년을 평안하게 살다가 생애를 마쳤다.

일반적으로 가훈은 가족이나 자손을 위해 남긴 가르침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읽히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안지추도 후손을 위해 <안씨가훈>을 집필했으며, 그는 책 서두에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손들이 가정을 잘 꾸려가고 훌륭한 사회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라고 밝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안씨가훈>의 내용이 이웃들에게 전파되어 널리 읽히게 되었다. 그 이유로는 안지추의 개인사가 기록되어 있지만 유익한 내용이 많고, 다른 가훈서가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비해, <안씨가훈>은 구체적인 사례와 실증적인 설명이 상세하고 다양한데, 이는 저자인 안지추가 평범한 관리가 아니라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문장론이나 종교론, 더 나아가 음운학이나 문자학 등 여러 학문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안씨가훈>의 내용 중 생활속의 지혜를 바탕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식들에게 강조한 핵심 사항 몇 가지를 살펴 보기로 하자.

먼저, 안지추는 가정교육을 가장 중요시 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집안과 자손이 번성하려면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가족 가운데 시원찮은 인간이 나오면 으레 집안을 망치기 때문이다. <안씨가훈>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항은 자식의 가정 교육을 먼저 들었다. 이는 안지추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와 두 형 아래서 인사예절에서 사소한 행동거지까지 균형 잡힌 예절교육을 받고 자랐으나,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형들 아래 맡겨졌으나, 생활에 쫓겨 정상적인 가정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안지추는 소년기를 제멋대로 행동하고 경박하게 말했으며 옷매무새도 단정치 않았다고 스스로 회상했다.

<안씨교훈>은 교육이 지나쳐서 잔소리처럼 변해버리는 우를 경계한다. 잘한 것에 대한 칭찬과 개성을 존중해 줘야 하며, 자식의 편애는 결코 하지 말아야 하며, 가족 간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선을 지키고 덕을 베풀어야 하며, 자식에게 교육을 시키려면 어른이 솔선수범해야 하며, 가정을 평안하게 유지하려면 절대 검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검소함이 지나쳐 인색함으로 가는 길을 피해야 한다고 첨언한다.

두 번째로 안지추는 제법 긴 지면을 할애하여 되도록 많이 배우라고 권유했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안지추는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현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천적 학문을 강조했다. 그럼 무엇으로 습득할 수 있는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천만 재산이 서투른 기술만 못하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책을 많이 보되, 실질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즉, " 열심히 공부하여 지식을 쌓으면 일을 잘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책을 읽어 말을 잘하는데만 쓰고, 실행을 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그들은 효행이나 인의와 덕이 부족하다. 게다가 간단한 문제의 시시비비마저도 명쾌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작 필요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세 번째 강조한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절대 필요한 '정도를 지켜라'였다. <안씨가훈>의 특징은 절묘한 균형감각에 있다. 안지추는 매사에 도를 넘지 말고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이 세상은 아무리 넓어도 끝이 없다. 그러므로 욕망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학문을 중시하고 재물과 지위에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벼슬길에 오르더라도 절대 지방 장관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지 말고 세력가의 집안과 혼인을 맺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그는 지위나 신분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을 할 때도 정도를 지켜야 하며, 그 핵심은 '근검절약'과 '겸허한 자세'라고 했다.

네 번째는사회인으로서의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서, 안지추는 이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다뤘는데 도를 넘지 않은 균형감각을 중시했던 만큼 자기만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기적인 행동을 경계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안지추는 다음과 같이 조언하고 있다.

 

첫째로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이며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 "군자는 항상 옳은 길을 가며 덕을 쌓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지위가 오르지 않고 녹봉이 오르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이므로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

둘째로 각자 자기 위치에서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수행해야 한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불평하지 않고 성실히 수행하면 언젠가 반드시 인정받고 새로운 전망이 열리기 마련이다.

셋째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훌륭한 사람과 사귀면 좋은 꽃이 가득한 방에 있는 것과 같아서 좋은 향기가 저절로 난다. 그러나 반대로 나쁜 친구를 사귀면 오랫동안 생선가게에 있는 것처럼 악취가 밴다. 그러므로 군자는 친구를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라고 했다.

넷째로는 '남의 공을 훔치지 말라'라고 했다. "상대의 의견을 채택하면서도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은 부끄러운 짓이다. 아무리 사소한 의견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빌렸으면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하며 비록 상대가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세운 공은 인정해 줘야 한다" 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안지추가 자식들에게 강조한 것은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유행했던 신선술이나 불로장생술에 대해서는 "나는 너희들이 이런 일에 정력을 낭비하지 말길 바란다. 다만 온몸의 신경을 안정시키고 호흡을 가다듬어 절도 있는 생활을 하고 더위와 추위에 잘 적응하고 음식을 삼가고 적당히 약을 복용하여 천수를 누리고 단명을 예방하기 위한 정도라면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아울러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취미와 놀이에 대해서는, 즐기는 것은 좋으나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빠져 들어서는 안된다"라고 훈계했다.

<안씨가훈>은 1400년 전의 전통 선비가 혼란한 시기에 자신의 몸을 지키고, 관직을 유지하며 가족을 챙기면서도, 좀 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자손들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진실한 아버지의 글이다. 조금은 고지식하고 교훈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결국 어떤 것이 자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그것도 순간적인 이익보다는 영속적인 자손들의 안녕을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할 것이다. 사회적인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결국 자기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아버지가 되어야 자식들에게 할 말이 있을 텐데,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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