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악아짐 보고 싶소!
[기고] 남악아짐 보고 싶소!
  • 김일님 _ 신전면 송천(92세)
  • 승인 2021.11.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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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님 _ 신전면 송천(92세)

나와 남악 아짐은 한글을 모르던 중 87세의 늦은 나이에 마을에 찾아가는 여성농업인 한글학교가 들어와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의 우리 나이는 학교 다닌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학교보다는 어린 나이지만 일이 우선이었다. 한글학교 3년의 학기 동안 결석한 적 없었다. 눈은 침침하고 연필을 잡은 손은 마음먹은 대로 안됐지만 글을 배운다는 것이 행복했다.

한 자 한 자 알아간다는 기쁨에 열심히 배웠다. 그렇게 배운 한글로 자식들에게 편지를 쓰고 매일 일기 쓰는 즐거움으로 살았다. 나의 노년은 동무인 남악아짐과 함께 서툰 글씨였지만 글자를 쓰고 한글을 배우는 소녀가 되어 깔깔대고 웃고 서로에게 위안을 주며 살고 있었다. 2017년 88세 때 한국농정 신문(2017.4.17.)에 '엄마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라는 편지가 실렸다.

나와 남악 아짐은 윗 아랫집에 살며 한 번도 얼굴 붉혀 본 적 없이 의좋게 70년이 넘는 세월을 같이 보내면서 구순을 넘는 나이가 됐다. 그런데 올해 8월 남악아짐이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넘어지면서 갑자기 북망산천으로 허망하게 떠나 버렸다. 나는 가족을 잃은 마음보다 더 충격이 커 억장이 무너졌다. 날마다 의지하고 살던 이가 떠나 마음 둘 곳 없어 헛한 마음을 글로 적어보려고 연필을 들었다. 한글학교에서 배운 한글을 서툰 글이나마 한 자 한 자 친구의 그리움을 전해본다.

황천에 가신 남악 아짐에게

가시는 길이 그렇게도 가깝든가요. 너무나도 허무하고 서운해서 이 글을 적어봅니다.

아무리 긴 세월을 넘기고 살아왔어도 갈 때가 돼서 짧아졌어요. 엊그제 우리 집에 오셔서 놀다가 가시더니 영원한 황천길을 가신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셨나요. 너무나도 허무하고 서운합니다.

우리 집에 놀러 오시면 당신 앉아 놀던 자리가 비어있어요. 언제 다시 돌아와서 그 자리에 앉아 놀다 가실래요

만물에 싹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갔다가도 돌아오는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 번 가면 못 오는 것이 사람이지요. 너무나도 억울해요.

나도 그 길이 다가왔어요. 먼저 가셨으니 좋은 길을 인도해서 하늘나라에서 만납시다.

그 길이 갈 때가 되면 그렇게도 가까운가요. 당신은 복이 있어요. 마지막 갈 때 그렇게 가는 것이 행복이지요. 하늘나라에 가셔서도 좋은 자리 선택해서 만납시다. 너무나도 허무하고 섭섭해서 적어봅니다. 하늘나라에서 만납시다. 그렇게 허무하니 가실 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고인에게 올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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