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와요.", "입맛이 없고 소화가 안 돼 식사를 못 해요." "정신이 멍 하고 기억력이 떨어져요.", "가슴이 답답하고 조여오는 것 같아요.", "속이 답답하고 뜨거워요."
병원 진료실에 있다 보면 위와 같은 이유로 내원하신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본인 스스로 판단해 내원하신 분도 있고 가족 또는 다른 과 전문의의 권유로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 내원 하기도 한다. 환자들과 불편한 점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위와 같은 증상들은 우울한 감정에서부터 시작된 경우가 꽤 많다.
우울장애는 기분의 문제만이 아니며 여러 가지 신체적인 문제들이 동반된다. 지속되는 우울감 또는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이 있으며 수면 변화(불면 또는 과수면), 식욕 변화(증가 또는 감소), 피로감이나 활력의 저하, 무가치감, 과도한 죄책감, 기력의 저하, 죽음에 대한 생각, 자살 시도 또는 계획 등의 증상들을 보인다면 우울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증상들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우울장애 치료가 필요하다.
우울장애는 왜 생기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우울장애는 마음이 여린 사람, 의지가 약한 사람이 걸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은 우울장애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다. 우울장애는 단순히 의지 문제가 아니라 유전, 신경생화학, 해부학적 요인, 정신사회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병된다.
신경생화학적인 요인으로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이 대표적인 생체 아민 이상으로 관여한다. 이 외에도 GABA, 글루타메이트, 아세틸콜린 등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우울증의 발생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신 MRI기술을 활용하여 이에 대한 연구들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우울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 뇌의 요인들로 인해 다양한 증세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치료에도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조절해 주는 약물들이 사용되고 있다. '우울증 치료제는 중독이 되는 약이어서 절대로 약 복용을 하면 안 된다.', '우울증 치료제는 부작용이 너무 많고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된 편견이다. 신체 조절 능력이 떨어져 혈압 당뇨가 오고 이에 대한 약 복용이 필요하듯 우울증도 우리의 뇌 안에서 일어나는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적 변화를 약으로 치료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의지의 문제라고만 여겨 우울증에 대한 치료가 늦어질수록 회복이나 치료가 힘들어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자살 시도까지 나타날 수 있으며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때문에 우울증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즐거워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슬퍼하고 우울한 일이 있을 때 우울해지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다. 사회 통념상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비하여 지나친 감정반응이 아니고 자신의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부적절한 반응이 아니라면 정상적인 건강한 감정의 발현인 것이다.
사랑, 기쁨, 분노, 두려움, 감동, 그리움, 즐거움 등 사람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여러 가지 감정 중 우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감정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감정도 있다. 우울감은 정상적인 감정 중 하나이지만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감정 중 하나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우울하다는 표현을 못하기도 한다. 감정표현에 자유로운 서구사회와 달리 우리나라는 유교문화 영향으로 감정표현을 내비치는 것을 성숙하지 못한 행동, 호들갑스런 행동, 이기적인 행동 등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에 우리는 우울한 감정을 느끼더라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아 감정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경우 많다.
자신의 여러 감정을 표현하는 게 무조건 좋다고 할 수도 없지만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돌아보려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꾹꾹 눌러 담기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우울한 기분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 달라는 내 마음의 신호일 수 있다.
내 마음속에서 우울의 신호가 느껴진다면 한번쯤은 여유를 가지고 내 마음을 돌아 봐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