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장군, 한신(韓信)이 남긴 고사
불세출의 장군, 한신(韓信)이 남긴 고사
  • 강진신문
  • 승인 2021.10.0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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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점권의 다시 보는 중국의 고전(3)

 

김점권 전 센터장은 도암출신으로 전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포스코건설 북경사무소장을 거쳐 중국건설법인 초대 동사장을 지냈다. 이어 광주테크노피아 북경 센터장을 거쳐 교민 인터넷 뉴스 컬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중국에서 25년간 생활한 역사와 고전, 문학류를 좋아하는 김 전 센터장을 통해 중국고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본다. 편집자주/

 

중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던 없는 사람이든 한신에 대해서 한두 번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취임 직후 미국 방문 결과 일부 여론이 미국 사대주의 외교에 대해서 쑥덕공론이 일자, 한신의 '과하지욕(跨下之辱)' 즉 '남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는 치욕을 감수하고 내일을 기약한다.'라는 고사로서 심경을 표현한 적도 있다.

한신은 누구인가? 한신(BC 231 ~ BC 196년)은 유방이 항우와의 전투에서 결국 승리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한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신이다.
그는 20대 중반에 일약 대장군으로 발탁되고, 불과 35살의 나이에 역적으로 몰려 참수당했으나, 불과 10년 동안 대장군으로 활약한 공적은 중국 역사상 4대 명장, 병선 (兵仙)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지금까지 한신에서 비롯된 고사 성어마저도 15개가 된다고 한다.

한신은 소하의 추천에 의해 대장군직이 되기 전까지는 일반 병졸의 생활을 하였으며, 누구도 한신의 재능과 미래를 밝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한번 대장군이 되어서는 세상을 완전히 뒤집었으나, 승리한 후 여인에게 허망하게 참살 당한 비운의 영웅이었다. 그러한 그의 드라마틱 한 삶 자체가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흥미를 유발하고 영웅의 말로가 안타까워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지 모른다.

자, 그럼 한신의 인생 역정을 통해 생성된 15가지 고사 성어 중 우리에게 익숙한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일반천금(一飯千金 : 밥 한 그릇 주고, 천금을 얻다). 한신의 출신은 빈천하였으며 부모를 일찍 여의어 어릴 적부터 가난하여 동가숙 서가식 하였다. 젊은 시절 무위도식하며 얻어먹거나 강가에서 낚시질로 겨우 입에 풀칠을 했으나, 굶는 날이 더 많았다.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아낙네가 한신의 모습이 하도 딱해, 남는 주먹밥 몇 개를 건네 주곤 하였다.

이에 감격한 한신이 고맙다고 인사하며, 향후 꼭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하지만, 아낙네는 비웃으며, "하도 딱해서 주먹밥을 주었지만, 무슨 은혜인가? 사지 멀쩡한 젊은 사람이 일을 해서 먹고살아야지" 하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천하를 평정하고 초왕으로 봉해진 후 고향을 방문할 때, 한신은 아낙네를 찾아서 천금의 황금을 하사해서 생긴 고사다. 이른바,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 모르니, 현재의 모습만 보고 천대하지 마라'는 교훈을 남긴다.

과하지욕(袴下之辱 : 남의 가랑이 밑을 지나는 치욕). 한신은 키도 크고 약간 유생의 풍모가 있었으며, 그는 종종 긴 장검을 허리에 차고 읍내를 폼 나게 걸어 다니곤 했다. 사실 그 시절에 남자의 멋은 긴 칼을 옆에 차고 길거리를 폼 나게 걸어가는 것이었는데, 아, 글쎄 이것이 동네 부랑배에게 눈꼴이 잡혔다. 남의 밥이나 얻어먹는 주제에 웬, 긴 칼에 똥 폼이란 말인가?

동네 부랑배는 한신의 앞길을 막고, 시비를 걸었다. "너는 허우대는 멀쩡하고 긴 칼 옆에 차고 거들먹거리는데, 칼이라도 쓸 줄 아느냐? 나하고 한판 붙자. 그게 싫으면 내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면 용서해 주마." 주변에 모여든 구경꾼은 늘어나고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는데, 웬걸 한신이 부랑배 가랑이 밑으로 기어감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과연 한신은 바보인가, 작은 일을 참고 큰일을 도모하는 영웅인가?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다다익선(多多益善 :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젊고 능력 있는 한신, 절대 무적의 군사 전략가, 천하 대장군, 유방은 천하 통일은 하였지만, 한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결국 한신이 친구이자 항우의 부하였던 종리매를 숨겨 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신은 초왕에서 회음후로 강직당하고 장안으로 호송 당한다.

 

어느 날 술 한잔하면서, 유방이 한신에게 휘하 장군들의 능력을 물었고, 결국 자신의 군사 능력을 물었다. "과연 나의 군사 관리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대왕은 많아야 1~2만 명입니다."
빈정이 상한 유방은 "그럼 한신 장군은 어떻소?"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다다익선)."
다시 빈정이 상한 유방이 "그런데 자네는 왜 내 밑에 있지?"

한신이 정색을 하고 유방에게 말하길, "대왕은 군사 지휘 능력은 제한적이지만, 대신에 대장군과 장군을 거느릴 수 있는 대왕의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한신은 병법뿐만 아니라 사람의 장점과 직위에 걸맞는 인재의 능력 여부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것 말고도 한신 때문에 발생된 고사 성어는 국사무쌍(國士無雙), 사면초가(四面楚歌), 십면매복(十面埋伏), 필부지용(匹夫之勇), 부인지용(婦人之勇) 등 15가지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한신은 왜, 그렇게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참살 당하고야 말았는가? 역사적인 기록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중요한 것은 '공이 높아 군주를 놀라게 한다'라는 고사의 대명사다. 한신은 군사적인 능력은 뛰어났으나 대인관계, 정치적인 권모술수 등에 대해서는 수준 이하였다고 한다. 거기다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의 근성이 남아서 대인의 풍모가 부족하거나, 겸손 겸양의 덕이 부족하여 타인의 경계를 불러일으켜 스스로 화를 불렀다고 기록되어있다.

이유야 어떠하든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비록 '인물의 평가는 성패로 판단하지 않는다'라는 사마천마저도 항우에 대해서는 비록 거사는 실패하였지만 인물평은 높았는데, 한신에 대해서는 군사적 능력은 높게 평가하였으나, 인물평은 후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한지의 소설이나, 대하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가슴 뛰게 하고 통쾌한 장면은 한신의 대장군 취임식 장면과 첫 전투에서 장한을 물리치고 천하를 진동하는 장면이다. 평소에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보통 사람의 활약과 성공이 우리 서민의 대리 만족으로 이어졌기 때문인 지 모른다.

한신, 그는 불과 35살에 천하의 대장군으로 대업을 이루고, 정치적으로 미숙하여 여인에게 참살 당했지만, 그는 우리 서민들 마음속 깊이 불세출의 영웅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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