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이름값 하기
[다산로] 이름값 하기
  • 김제권 _ 수필가
  • 승인 2021.10.0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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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향기는 백대에 걸쳐 흐르고, 악취는 만년에까지 남겨진다는 뜻으로 유방백세 유취만년(流芳百世 遺臭萬年)이란 말이 있다. 이름을 생명처럼 중시하며 살다 가신 분들의 금언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그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이름을 훔치는 것은 돈을 훔치는 것보다 더함같이 여겼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여자의 이름 끝에는 '아들 자(子) 맑을 숙(淑)을 많이 붙였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 학급에서 미자, 숙자, 영자, 말자, 미숙, 영숙, 향숙이 등 이름이 같은 학생이 여러 명 있었다.

성(姓)까지 같은 사람이 두 명이 넘는 경우도 있었기에 그가 사는 마을을 앞에 붙여서 어느 마을 아무개라 불렀다. 어떤 집은 아버지가  형과 동생을 동시에 호적을 등재하러 면사무소엘 갔는데 친구를 만나 막걸리 한 잔 마시고, 형과 동생의 이름을 바꿔 신고를 했다. 요즘 같으면 법원에 개명 신청을 인터넷을 통해서 일반인도 쉽게 신청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개명절차가 매우 까다로웠다.

이름이 바뀐 사실을 모르고 지내다 초등학교 취학 시기에 발견하여 그때부터 형과 동생의 이름을 바꾸어 불러야 했다. 부모는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뜻을 잘 알고 지어 복을 많이 받게 하려고 유명한 작명가에게 의뢰하기도 한다. 그 만큼 이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없는 사물의 이름을 짓는 것도 그렇다. 우리 영공을 수호하는 전투기나 영해를 철통 방어하는 함대가 제작되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명명식(命名式)하게 된다.

그 분야 전문가와 작명가들이 참여하여 그 임무에 걸맞은 이름을 짓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향후 행적이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기 때문이다.

사물의 이름을 짓는 것도 이렇게 진지할진대 사람의 이름의 이름은 더없이 중요하다.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께서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어떤 일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는 이름을 바로잡는(正名) 일을 우선하겠다고 답했다. 정작 온갖 불의를 저지르면서 이름엔 태연하게 정의를 갖다 붙이는 당시 세태를 빗대 말했다. 이름에 나쁜 의미가 들어 있으면 그것을 피했다.

공자가 '도천'이라는 샘을 지나칠 때 몹시 갈증이 났지만 이름을 훔친 뜻을 지닌 샘이라며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서둘러 떠났던 것이다. 자신이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도 부정과 불의에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지지 처신에 조심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말이다.

어느 날이었다. 증자가 승모(勝母)라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때는 이미 해가 서편으로 져서 사방이 어둡고 배도 고팠지만 그곳에 머물지 않고 발길을 재촉했다.

'어머니를 이긴다'는 뜻을 지닌 마을에서 유숙한다는 것은 효자인 증자에겐 어머니에 대한 더 없는 불경이요 불효였다. 그 이름을 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름도 잘 지어야 하지만 이름값을 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옥불탁불성기'(玉不琢不成器)란 말이 예기(禮記)에 있다. '옥을 다듬지 않으면 좋은 그릇을 만들 수 없다.'는 말로 "아무리 이름이 좋고 소질이 뛰어난다 해도 부지런히 갈고 닦지 않으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노력을 게을리 하고 덕을 쌓지 않으면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은 부모님에게 불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나의 이름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름값을 하려고 힘써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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