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향의 저녁노을
[기고] 고향의 저녁노을
  • 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 승인 2021.09.0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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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내 고향, 도암면 지석 마을의 저녁노을이 너무나 아름답다. 여름 저녁을 황홀하게 물들이는 노을은 고향의 멋이다. 고향의 노을은 여름 저녁에 마을 주민에게 드리는 화려한 자연의 선물이다.

정원에 물을 주다 해가 저물어가고 어둠이 슬며시 다가올 때, 뒷산 매봉산 주변이 진한 연분홍 색으로 물들어가고 대나무 사이에 붉은 기운이 넘쳐난다. 아, 저녁노을이다. 만사 제쳐 놓고 저녁노을을 따라 산보에 나선다. 서쪽 하늘에는 불놀이가 한창이다. 어찌 저리도 색깔이 곱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

어느 날은 진한 홍색으로 온 세상을 불태울 듯이 진하게 다가오더니, 어느 날은 연분홍 진달래와 복사꽃을 섞어 놓은 듯이 핑크빛으로 가슴을 설레게 하며, 비 그친 어느 날은 서쪽 하늘에는 연한 노란색 채운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으며, 동쪽 하늘에는 오색 무지개가 세상을 축복해 주고 있다.

저녁노을은 맑은 하늘 끝 석양의 붉은 노을보다는 새털구름이 흐릿하게 끼어있고, 드문드문 뭉게구름이 걸쳐있다면 저녁노을의 맛은 최고다. 구름 사이로 투영되는 오색 찬란한 색깔의 멋, 어찌 필설로 가능한 일인가?

오직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고향의 저녁노을 감상은 단순히 하늘의 풍경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변 자연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노을의 맛을 더해 주고 있다.

어둠이 밀려오는 초저녁, 북쪽에 위치한 마을 뒷산 매봉산 봉우리 언저리에 걸려있는 새털구름 사이로 연분홍 서기가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이 번지고 있고, 일부 구름은 물감에 재주를 부리듯이 기묘한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그 기운은 서쪽 산맥을 따라 흐르는 흑석산 봉우리까지 면면하게 이어지고 있다.

산이 있으면 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이 가득 찬 동령 마을 저수지 수면에는 또 다른 노을이 번지고 있다. 물속에 마을이 있고, 산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오색 물감을 풀어놓은 수채화가 담겨 있다.

아, 아름다운 저녁노을이다. 저녁노을은 여름 저녁에 유난히 많은 듯하다. 지난 5월 말 모내기가 시작할 시점부터 석양의 노을은 7월 말까지 매일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내 고향 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미처 몰랐다.

'조강지처'라고 하듯이 어릴 적 고향을 떠나 50여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은 모든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고향의 산천은 알고 보니 참으로 괜찮은 지역이었다.

내 고향은 산과 바다, 저수지가 있는 아름다운 시골이다. 고향에서 불과 4킬로미터 움직이면 주변의 바다를 만끽할 수 있고, 동령 마을에 위치한 저수지는 전국적으로 낚시터로도 유명할 정도로 깨끗하며 조용한 곳이다.

산은 어떤가? 어릴 적부터 산을 좋아했던 필자는 국내 명산, 중국 명산을 많이도 다녀봤다. 그런 명산들에 비해서 고향의 산들은 화려하거나 장엄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기자기하게 갖출 것 다 갖추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면서도 찰진 산이다.

고향 뒷산은 매봉산으로 주산으로서 마을의 뒷심이 되어주고 있으며, 앞산은 봉덕산으로 안산으로서 외풍을 막아주는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매봉산 줄기는 북쪽으로 서기산, 별뫼산, 흑석산으로 이어지는 역할을 하고 있고, 봉덕산은 남쪽으로 석문산, 만덕산, 덕룡산, 주작산, 달마산으로 이어지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산세는 아주 험하지 않지만 누구라도 쉽게 건드린다면 결코 가만있지 않을 정도의 야무진 산이다. 고향에 귀촌 한지 6개월 만에 지기를 이해한 셈이다. 아울러 어릴 적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고향의 하늘과 구름, 저녁노을의 멋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명 시인의 마음을 통해서 대리 전달해 보겠다.

노을 (서정윤 시인 )

누군가 삶을 마감하는가 보다
하늘에는 붉은 꽃이 가득하다

열심히 살다가
마지막을 불태우는 목숨

흰 날개의 천사가
손잡고 올라가는 영혼이 있나 보다
유난히 찬란한 노을이다

한마디로 고향의 저녁노을에 반했다. 시인들 만큼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대동소이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문명의 이기(利器 )로 아름다운 고향의 저녁노을을 화면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 중에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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