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감 신유 임금 특명 용혈자리 찾아나서
현감 신유 임금 특명 용혈자리 찾아나서
  • 강진신문
  • 승인 2021.08.3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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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 - 서성리 만세길 9]
수통목과 아구재 귀신(Ⅰ)
강진읍 아구재

 

최근 강진군도서관이 지역의 숨겨진 역사, 문화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은 두번째 우리 동네 옛이야기를 발간했다. 도서관은 지난 2019년부터 전해져 오는 강진의 수많은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발굴 계승하기 위해 연 1회 연차적으로 우리동네 옛이야기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우리 동네 옛이야기'는 '서성리 만세길' 편으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6편의 강진읍 서성리와 관련된 전설 같은 우리 역사, 문화 이야기가 정성스럽게 담겨 있다. 이 동화책은 지역의 향토사학자인 양광식 강진문사고전연구소장의 감수를 받아 지역 출신 김옥애, 강현옥, 장미연 동화작가가 직접 쓰고, 지역 출신 김충호 화백이 그림으로 참여했다.


벌써 봄이 왔나봐. 여기 저기 색종이로 접은 것 같은 나비들이 알록달록 날개짓을 하고 있네. 이 좋은 봄볕을 놓칠 순 없잖아? 그래서 영랑생가로 해서 모란공원으로 슬슬 돌아볼까 하고 산책을 나섰어.

서문을 지나 아구재(서문에서 영랑로로 넘어서는 고개)로 오르는데 앞쪽에서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모든 게 따사로운 이 봄날에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랑 여자애가 말싸움을 하고 있는 거야.

"야! 거짓말 하지 마. 세상에 귀신이 어딨냐?"
"정말이라니깐! 우리 할머니가 어렸을 때 직접 보셨대."

가만 보니 세상에 귀신이 있니, 없니 하며 서로 우기고 있는 거였어. 그래서 나도 슬쩍 끼어들어서 한 마디 보태봤어.

"애들아, 너희들이 서 있는 이곳에서도 귀신을 봤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한번 들어볼래?"
"네? 정말요?"

두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봤단다. 그래, 귀신 이야기지. 그것도 옛날 귀신 이야기. 옛날이야기 중에서도 재미있는 게 귀신이야기랑 구미호 이야기잖아? 자, 그럼 수통목과 아구재에 얽힌 귀신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옛날 옛날에. 옛날이야기니까 이렇게 시작해야겠지? 옛날 옛날에는 맞는데 아주 먼 옛날이야기는 아니야. 조선시대 효종 임금이 다스리던 때(1649~1659)의 일이니까 말이야. 그 당시 중앙 관리들은 강진으로 내려오기를 모두 꺼려했대.

그도 그럴 것이 강진은 한양에서는 너무도 먼 곳이라 유배지나 다름없는 곳이었거든. 하지만 강진오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어. 바로 지방 이속들 텃세가 너무 세서 한양에서 내려온 현감들이 백성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없었기 때문이야. 현감이 명령을 내려도 아전들끼리 똘똘 뭉쳐서 현감 말을 무시하기도 했대. 그런 까닭에 강진의 현감 자리는 자주 비어있곤 했다는 구나.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어.

"이방 나으리! 이방 나으리!"
동헌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한 소리가 울렸지. 예방이 땀을 뻘뻘 흘리고 서찰을 흔들며 들어서고 있었단다. 마침 점심을 먹고 봄볕 아래 졸고 있던 아전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동헌 마당으로 내려섰어. 호랑이 없는 골엔 여우가 왕이라고 이방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뒷짐을 지고 나타났지.

"이 놈, 전쟁이라도 났다더냐? 웬 호들갑이더냐?"
"아이고, 우리한테는 전쟁 보다 더 무서운 일입니다요."
"저런 물색없는 사람을 보았나? 전쟁 보다 더 무서운 일도 있다더냐?"

흰머리가 수북한 이방은 전쟁이란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쳤어. 어린 시절 임진왜란을 겪고 십여 년 전엔 병자호란까지 겪은 지라 전쟁이란 말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

"우리 고을에 현감님이 새로 부임하신답니다요."
"그래? 어디 보자. 그러고 보니 전임 현감이 보따리 싸들고 가신게 벌써 작년 봄이던가?"

이방의 넉살에 아전들은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어.
"다시 보내실 때도 됐지요. 나라님도 황송하옵지 않습니까? 잊을만하면 현감님을 다시 보내주시니 말입니다."

이방의 말에 아첨하듯 형방도 말을 보탰지. 그러자 또 모두들 박수를 치며 웃어댔단다. 공방은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찔끔댔지.

"하하하하. 지겹지도 않으신가 보네."
"보내시면 자알 대접해서 또 자알 보내드리면 될 게 아닌가? 뭘 그리 호들갑이야? 여보게들, 아니 그런가?"
"맞습니다요. 이번 현감님은 두 해는 버티셔야 할 텐데요. 여기 바닷가 바람이 워낙 세서 고뿔이라도 걸리면 또 금방 줄행랑 놓으시 겄지요?"

형방의 맞장구에 또 다들 떼굴떼굴 구르며 웃어댔지. 하지만 예방만은 따라 웃질 못했어.
"이번엔 바닷바람이 아무리 세도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요. 이번 현감님은 우리 고을로 오겠다고 자청을 했답니다요."
"뭐라? 자청을 해?"

예방의 말 한 마디에 웃음소리가 싹 걷혔단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자청해서 스스로 강진으로 내려온 관리는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지.

그 해 5월 강진 동헌은 새로 부임한 현감을 맞느라 분주했어. 연둣빛으로 단장한 버들가지 사이로 태평소 소리가 가득 퍼지고 드디어 새로운 현감인 신유가 모습을 드러냈어. 꼭 다문 입술과 짙은 눈썹은 강단 있는 성격을 보여주는 듯 했지. 아전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새로 온 현감의 눈치만 살폈어.

"먼 길 오시느라 고단하셨을 텐데 한 열흘 쉬시면서 일단 여독부터 푸시지요. 이곳은 워낙 작은 고을이라 천천히 둘러보셔도 충분할것입니다. 소인이 직접 모시겠습니다."

그래도 아전들 중 최고 어른인 이방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어. 그 당시엔 새로운 현감이 부임하면 고을 형세도 익힐 겸 한 달 정도는 고을을 돌아보는 게 관례였지. 농토나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 직접보고 선정을 베풀기 위한 숙제 같은 일이었단다.

그러나 선정을 베푸는 목민관이 있으면 백성들 사정은 건넛산 불구경하듯 하고 자기 배불리기에만 급급한 탐관오리도 있는 법. 특히 비옥한 평야나 바다를 끼고 있어 농산물이나 해산물이 풍부한 고을은 그 만큼 수탈을 더 해가는 현감도 자주 내려왔단다. 강진의 아전들도 그런 현감들을 수없이 봐온 터라 중앙에서 내려오는 현감들을 마치 도둑 대하듯 볼 수밖에 없었지.

"아하! 그것 좋지! 슬슬 돌며 여기 남도 음식 맛 좀 보세나. 이곳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한양까지 소문이 자자하더구먼. 뭐 노독을 푸는 데 열흘이나 보낼 필요가 있나? 당장 내일부터 돌아보세."

새로 온 현감은 먼 부임길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어 보였어. 오히려 젊은이들보다 더 기운이 넘쳐 보였지. 이방은 그 기운 넘침이 영 불안했단다.

도대체 저 힘찬 기운으로 이번 현감은 또 얼마나 이 고을을 짜내려는지 걱정이 되었던 게지. 신유 현감은 말을 뱉기가 무섭게 바로 다음 날부터 강진을 둘러보기 시작했어. 제일 먼저 보은산 우두봉에 올라 강진 읍성을 쭉 살폈지.

그리고 다음 날부터 사나흘은 말을 타고 강진만 서쪽 끝에서 시작해 반대편 동쪽 끝까지 구석구석을 돌았어. 지금까지 이렇게 꼼꼼히 고을을 돌아본 현감이 없었던 터라 이방을 비롯한 아전들은 더 불안해졌단다.

사실 신유가 강진 현감을 자청하고 내려온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 그는 풍수지리에 아주 능통했는데 강진 이속들이 드센 건 아마도 지세의 영향 때문일 거라 생각한 거야. 그래서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강진의 거센 지세를 변형시켜 강진 이속을 포함한 강진 백성들의 기운을 꺾어놓을 셈이었던 거지.

그런데 부임하기 며칠 전 생각지도 않았던 특별한 사명까지 얻게 되었지 뭐야.

 

신유가 강진에 부임하기 며칠 전이었어. 효종 임금은 강진 부임을 자청한 충성스런 신하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 도승지를 시켜 신유를 불렀어.

"그대가 강진 현감을 자청하였다지? 듣자하니 그대는 풍수지리에도 아주 능통하다고 들었네."
새파랗게 젊은 임금이었지만 낮은 목소리엔 거부할 수 없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지.
"내세울만한 실력은 못되옵고 지세를 보는 눈이 조금 있을 뿐이옵니다. 혹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하문하시옵소서."

신유는 왕의 자리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젊은 임금의 속내가 궁금해 조심스럽게 물었어.
"경은 아마도 내가 부탁할 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말씀이시온지……?"

신유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임금의 용안을 살폈어.
"그대도 알다시피 선왕이신 과인의 아바마마는 여진의 오랑캐들에게 치욕스런 수모를 겪었다. 또 형님이신 소현세자와 난 어떠했는가? 과인이 볼모로 끌려가던 시절 내 등에서 병들어 죽어간 딸아이는 겨우 세 살이었다네. 난 지금도 그 아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네."

"어찌 그 날의 치욕을 잊을 수 있겠나이까?"
신유는 바닥에 닿을 듯이 머리를 조아렸어.
"그래서 말이네. 그대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하네."
"무슨 일이든 맡겨주시옵소서. 소신 죽을 힘을 다하여 전하를 보필할 것입니다."

"내 있는 힘을 다 하여 북벌(북쪽 오랑캐를 정벌하여 국토를 넓히고 국력을 굳건히 하는 일로 여기서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안겨준 여진, 즉 청을 정벌하는 일을 말함)을 완성하려고 하네. 그런데 지금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 발목을 잡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네. 이젠 하다 하다 호남 백성들마저 내 발목을 잡는구먼. 요즘 들어 호남 지방의 반대 상소가 늘고 있다네. 그 지역 유림들은 어찌 그리도 드센지……. 내 어릴 적 들은 풍문에 용혈 자리가 있는 곳에 서는 반역의 기운도 나온다고 들었네만……."

반역이란 말에 신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 쉬이 내뱉어서도 내뱉을 수도 없는 말이었거든. 젊은 왕은 지금 자신을 끌어내릴 수도 있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었어.

"그러하옵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왕이 되지 못한 자가 용혈자리를 차지하면 반역을 꾀해서라도 왕이 되려 하는 법이지요. 허나 염려치 마옵소서. 용혈 자리란 말처럼 그리 흔한 것이 아니옵니다. 설마 그 시골에 용혈 같은 자리가 있겠습니까? 허나 소신 전하의 안위에 터럭만큼이라도 위해가 될 것이 있다면 샅샅이 살펴 흔적까지 없앨 것이옵니다. 그러니 부디 심기를 굳건히 하시옵소서."

신유는 임금의 불안을 덜어주고자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답했단다. 신유의 말끝에 효종 임금은 신하의 두 손을 덥석 잡았어.

"그럼 내 은밀히 부탁하네. 자네만 믿겠네. 의심나는 곳이 있으면 바로 보고 하게나."
"음……."

강진의 지형을 다 돌아보고 동헌 마루에 앉은 현감 신유는 묵직하게 신음을 내뱉었어.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월출산 자락 끝에 있고 바닷가라고 하니 뭐 특별한 것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강진 지형을 둘러본 신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어. 왜 이 조그만 고을이 두 번의 전란에도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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