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감의 시대
[기고] 공감의 시대
  • 강진신문
  • 승인 2021.08.14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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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_ 공무원노조 강진군지부장

동경올림픽의 첫 금메달에 이어 3관왕을 차지한 선수가 향우의 딸이란다. 오랜만에 주변 사람들이 내 일처럼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며 한 마디씩 보탠다.

코로나 여파로 마음도, 살림살이도 힘들어진 터라 낭보는 사람들의 공감을 부른다. 혈연, 지연, 학연이란 익숙한 공감은 자긍심으로 번졌다.

공감은 인연과 감성으로만 촉발하지 않는다. 알다시피, 기후변화와 코로나 팬더믹 같은 위기 인식은 집단지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서로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공황(Panic)은 사회적 공감을 거쳐 연대와 협력으로 번져갔다. 다소 생소한 경험이다. 경쟁과 차별로 격화된 대립의 세월 탓일까. 질곡의 근대사에 이은 일제 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분단상황은 우리를 각자도생으로 내몰았고 남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공감은 집 담장을 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권력은 우리의 공감을 통제하고 공권력은 연대를 가로막기 바빴다. 17년 전에도 공무원들의 파업에 공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부패한 공직사회를 개혁하고 국민의 공무원으로 바로 서겠다는 구호는 추상적이고 생경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공무원은 독재 권력과 부패를 방조하고 민중을 겁박한 통치자의 대리자였을 뿐이다. 권력에 기생하며 부패의 떡고물에 취해 살던 사람들이 뭘 더 누리겠다고 단체를 만들고 정부에 맞서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1960년 6월 15일, 이승만 독재에 종지부를 찍은 4.19 혁명정부는 특별한 조치를 취한다. 부당한 권력에 동조하지 않을 권리 즉,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조문을 신설한다. 공무원의 신분을 미끼로 탈법을 강압하고, 관권 부정선거에 공무원을 동원해 민의를 왜곡하는 독재 권력의 악순환을 끊어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도 잠시, 민주적 정통성이 빈약한 5.16쿠테타 세력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 권리를 의무라는 딱지로 덧대버린다. 공무원을 권력의 도구로 삼을 야욕의 시작이었다. 공감은 통제되고 연대는 가로막혔다. 불행히도, 이 역사적 퇴행은 아직도 여전하다.

국민을 위태롭게 하는 정책, 공사(公私) 구분 못하는 부패가 아직도 빈발하는 이유다. 공직사회의 사정을 잘 아는 내부자의 목소리를 뭉개 버렸으니 국정농단 같은 부패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미얀마 군부 쿠테타에 저항하는 국민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업무복귀 명령을 거부하고 정부 기능을 마비시킨 공무원들이었다. 국민과 함께하는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4년, 공무원들의 노조가입을 6급 이하로 제한한 '공무원노조법'은 단결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 공무원을 분열시켜 권력의 통제하에 둬 하수인으로 삼을 요량이었다. 공무원들은 저항해야 했다. 퇴행의 역사를 연장하려는 권력의 술책을 막아야만 했다. 총파업 등 투쟁 과정에서 136명이 해직되고 2,457명이 징계를 맞았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17년 만에 공무원의 단결권을 보장하는 노조법이 개정됐다. 또, 해직과 징계를 받은 공무원들이 복직하고 그 명예를 회복하도록 특별법도 시행되었다. 하지만, 희생된 공무원들의 상처는 여전하다. 그들에게 지워진 인사상, 경제적 불이익보다 소외(疏外)의 상처가 깊다.

공감 없이 치유될 수 있을까. 73년 만에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무고한 희생자의 아픔은 긴 세월의 무게에 눌려있다. 참사의 진실 규명도 없이 '기억공간'을 철거해야 하는 세월호 유족의 심정은 또 어떤가. 사람 목숨이 귀해서 만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두고 노사(勞使)의 공감이 판이하다. 복원된 남북통신선을 두고 쏟아내는 진영의 날 선 대립은 언제쯤 복원될 것인가. 희생과 생명, 그리고 평화에 대한 우리의 공감(共感)이 절실하다. 언제까지 각자도생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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