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
[기고]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
  • 강진신문
  • 승인 2021.07.30 15: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500밀리미터를 넘나드는 폭우를 동반한 장마 기간 동안 우리 지방의 피해는 자심했다. 축사가 물에 물에 잠기고, 산사태로 길이 막히고, 논둑이 무너져 토사가 벼농사를 덮치기도 하였다. 다행히 우리 고향은 지대가 높아서 큰 피해는 없었지만, 비가 그치고 태양이 내려쬐이면서 장마 피해는 내 집 정원에도 약간의 영향을 미쳤다.

무엇인가? 별거 없다.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예쁜 꽃을 피웠던 화초가 연이은 물세례에 뿌리가 썩어버려 고사되고 말았다. 데이지, 피튜니아, 금잔화, 버베나, 목마가렛 등이 햇볕이 나면서 고사되어 시커멓게 변해버린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원의 아름다움을 장식했던 그 꽃들이 앙상하게 말라버리자 가슴 한곁이 짠해지면서, 꽃들을 바라보며 술 한잔 마셨던 지난 세월이 그리워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만물은 한번 태어나고 때가 되면 흙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 아니겠는가, 약간의 길고 짧음은 있지만, 억겁의 세월 속에서 지켜본다면 광음의 차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지는 꽃 잡을 수 없다. 할 수 없이 새로운 꽃으로 빈자리를 메꿔야겠다. 읍내 꽃 집에서 새로운 꽃을 구매하고 정원에 열심히 심었다.

내 곁을 떠나간 꽃들을 상기하면서 불현듯,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라는 성어가 생각난다.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노 정객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면서 주변의 비리와 한물간 인물들을 끌어모으고 주변에서 비난이 쇄도하자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잡지 않는다'라는 말로 제압했다고 한다. 가히 노회한 정객의 절묘한 회피술이다.

상기 성어에 대한 관련 고사는 많다. 자기 입맛에 맞게 당시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어려운 상황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언어유희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러 고사 중 장자의 <지북유 편>에 나오는 이야기는 의미심장하고 가장 마음에 와닿는 해석이다.

안연(顔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저는 예전에 스승님께서 '가는 것을 전송하지 않고, 오는 것을 맞이하지 않는다'라고 들었는데, 제가 어떻게 하면 그런 무심의 경지에서 노닐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하길, "옛날 사람은 외부 사물의 변화에 따라 순응하면서도 내면의 정신은 외부 사물에 좌우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내면의 정신이 외부 사물에 좌지우지되어 외부 사물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다. 외부 사물에 순응하면서 변화하는 자는 자연에 맡긴 채 무심하기 때문에 변화에도 편안하고 변화하지 않은 것에도 편안하니 서로 다를 것이 어찌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즉, 사람이 자신을 자유롭게 유지하려면, 외부 변화에 순응하며 유연하게 살아가되, 내면의 정신 철학은 올바르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는 기존의 세상 질서를 예측 불가능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어제의 장점이 오늘의 단점이 되고, 어제 승리자가 패배자가 될 수 있는 심각한 역사적 전환기에 처해있는 듯하다. 이런 환란의 시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할 듯하다. 급격하게 변화해 가는 외부 환경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내면 정신은 흔들리지 않은 신념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모든 사물은 극에 이르면 반드시 반작용을 한다( 物極必反)"라고 한다. 아무리 어려운 코로나 상황이라도 아침은 오게 되어있다. 긴 역사의 과정을 되돌아 보면 어렵고 힘든 위기의 순간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된 경우가 많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자신을 따뜻하게 다독이며, 지치고 힘들 때 일수록 주변을 돌아보며 새벽을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