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영원한 지침서, 채근담의 맛
인생의 영원한 지침서, 채근담의 맛
  • 강진신문
  • 승인 2021.07.1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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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의 다시 보는 중국의 고전 (1)

김점권 전 센터장은 도암출신으로 전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포스코건설 북경사무소장을 거쳐 중국건설법인 초대 동사장을 지냈다. 이어 광주테크노피아 북경 센터장을 거쳐 교민 인터넷 뉴스 컬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중국에서 25년간 생활한 역사와 고전, 문학류를 좋아하는 김 전 센터장을 통해 중국고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본다. 편집자주/

 

내 인생 65년 동안, 무슨 책이 나의 스승이었는가?

괜히 혼자서 외롭다고 생각 할 때, 누군가로부터 턱없는 중상모략으로 심신이 괴로울 때, 자신의 잘못으로 실패하고 처량해 질 때, 주변의 누군가가 더없이 부러워 질 때, 왜 나만 안 되는가? 라고 하늘이 원망스러울 때, 아무 일도 아닌데 괜히 혼자서 짜증나고 세상이 싫어질 때, 그 어느 곳에 가서 하늘을 보고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 속에서 자유자적할 때... 즉 인생이 괴롭거나 즐거울 때 무엇으로 어느 정도 자신을 추스를 것인가?

채근담을 보면 된다. 매  순간마다 읽고 또 읽으면 묘하게도 그 속에 답이 있다. 그리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개 속에서 길을 헤매다가 한줄기 빛을 맞이한 것처럼 희미한 길이 보인다. 채근담의 힘이다. 채근담은 화려하지 않은 호롱불 같은 안내자다. 꼭 어떻게 해야만 된다는 강조도 강요도 없다. 그것을 본다고  해서 잘 된다는 보장도 없다. 본인의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래서 좋다.

채근담이라는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4학년 때인 듯 하다. 그 시점이야 중·고등 시절을 거치면서 괜찮아 보이는 이런저런 서적들을 섭렵하였지만, 막상 채근담을 손에 들게 된 것은 도서관에서 빌린 다른 책속에 적힌 인연 때문이다.

당시의 처지는 곤혹스러웠다. 학부 시절 공대라는 특성에 적합하지 못해서 학점은 바닥이었고, 오로지 공채만으로 취직을 준비해야 만 했다. 시골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하는데, 평상시의 준비가 부족한 셈이었다. 4학년 1년 동안 독서실에 죽치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속에서 매일 들여다보는 채근담의 글귀는 부족한 정신적 양분을 제공하는 양식이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먹어도 줄어들지 않은 영원한 정신적 비타민...

그렇게 보낸 1년은 원하는 대기업에 입사하였고, 연수시절에도 신입사원의 불편한 위치에서도, 중견간부로서 분주하더라도, 해외사업의 첨병으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더라도, 그리고 임원으로서 사회생활의 이끼가 끼기 시작하더라도 채근담은 손에 놓지 않았다.

처음 구매한 책은 10년 만에 제본한 실타래가 풀려서, 2번째 구매한 책은 5년 만에 분실하여서, 세번째 구매한 책은 '도교로 보는 채근담'으로서 약 20년간 내 곁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역시 제본된 실타래가 중간 중간 풀려 낱장으로 겉돌고 있다.

채근담은 명나라 시절의 숨어있는 은자로서, 이름은 홍자성, 호는 환초도인이라고 하며, 그의 행적은 채근담의 내용만큼이나 세속의 명예와 이익에 초월하여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의 명인이었던 우공겸(1580년)이 친구로서 '채근담 제사'를 써서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출신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사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채근담이 동양에서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인격 수양서로서 널리 익히게 된 배경 중의 하나도, 홍자성이라는 개인의 인물 내력과 행적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채근담 속에 담긴 내용 중심으로 받아들이는지 모른다.

채근담은 경구풍의 단문 350여 장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시적 표현이 넘치는데다 대구가 멋스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이야기의 소재도 매우 풍부하고, 내용 역시 삶의 구체적인 모습, 인간의 심리와 세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누군가가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채근담의 사상은 결코 한쪽으로 경도되지 않는다. 스님, 도사, 유학자가 아닌 보통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찌 한쪽의 논리만이 우리를 도와 줄 수 있겠는가? 채근담은 동양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불가, 도가, 유가 등 세가지 사상이 잘 융합되어 있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지나가면 대에는 소리가 머물지 않고, 기러기가 가고 나면 못에는 그림자가 머물지 않나니,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오면 마음이 비로소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빈다"

이는 불가의 선의 색채가 풍부하게 나타나 있는 것으로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외적인 일로 더 이상 핍박을 받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사람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다음은 도가의 맑고 고고한 기풍을 노래한 구절이다.

"갈대꽃 이불을 덮고 눈 위에 누워서 구름아래 잠잘지라도 밤기운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으며, 대나무 잎 술잔 속에서 바람을 읊조리고 달을 희롱하면 만장의 홍진을 멀리 벗어나리라"

이 글은 명예와 이익을 벗어나 유유자적하게 소요하면서 천지자연의 조화를 즐기는 은사의 풍모가 우러나오지 않은가? 자, 이제 현세를 살아가는 유가적인 처세의 지혜를 담은 글귀다.

"절개가 높은 사람이 화합하는 마음으로 처세하면 남과 다투는 길을 열지 않을 것이고, 공명 있는 선비가 겸손한 덕으로 사람을 대하면 질투의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공명과 이익을 멀리하고 도의와 덕을 소중히 하는 군자의 처세를 담은 것이다. 이런 좋은 글들이 채근담 속에는 지천으로 널려있다.

채근담이란 말은 송나라 때의 유생 왕신민의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사람이 채근을 씹어 먹을 수 있으면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다"라는 뜻으로서 즉, 채소의 뿌리는 딱딱하고 질기지만 잘 씹으면 씹을수록 참 맛이 우러나듯이, 채근담의 글을 음미하고 곱씹을수록 인생의 참다운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채근담은 인생의 친구이자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선배 같은 스승이었으며, 어느 날 두서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적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기도 하였으며, 남과 다른 이 길을 혼자서 가는 것이 괜찮을까? 혼자만의 불안에 대한 묘한 답을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남들은 무엇이 좋다고 하여도 내가 싫으면 결코 근처에 가지 않아도 외롭지 않았으며, 그것이 이익이라고 하여도 내 생각에 맞지 않으면 그냥 훌훌 털어버려도 결코 후회가 되지 않았다. 그 답과 기준은 채근담 속에 은근히 녹아 있었다. 그래서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이제 환갑을 넘기면서 주변에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에게 한 가지를 먼저 주고 싶다면 '채근담'이다. 혹자는 너무 소심하고 수비적인 삶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이렇게 채근담 속의 한구절로 답하고 싶다.

"문장이 지극한 경지에 도달하면 별다른 기특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흡족 할 뿐이며, 인품이 지극하면 다른 기이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본연(本然)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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