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도깨비 불
[다산로] 도깨비 불
  • 강진신문
  • 승인 2021.07.1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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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희 _ 시인

강진 읍내 서북쪽 외각에 호수공원이라 부르는 생태호수가 있다. 우주의 배꼽 같고, 고을의 허파 같은 호수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점점 나무들이 균형을 잡아가고, 밤이면 우리들 건강을 위한 운동 코스로 제법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 뚝딱 만들어 생긴 곳, 한낮에는 앉아 있을 만한 나무 그늘이 아직 어우러지지 않았지만, 우리집과 가까워서 더 찾는 곳이다.

그 둘레를 걷다보면 내 스스로 자욱해진다. 자욱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내가 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시간이고, 내가, 내 안에 못물처럼 고여 비로소 고요해지는데, 정신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호수공원의 사계절은 도심에서의 온도보다 경계가 뚜렷하여, 꽃과 나무와 수면의 빛깔이 정직하고 정확해서, 우리 인간의 말로 받아 적을 수 없지만, 분명 어떤 전율이 온 몸을 통과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로 나는 밤에 호수공원을 찾는다. 원두막에 앉아 있노라면, 멀리 도로 가드라인의 밤차들 행렬이 드믄드믄 불 꺼진 차창같다. 그 연결은 마치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진 오는 기차가, 희망을 실어 나르는 듯 보여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오래도록 오지않는 내고향 오는 기차를  나는 마냥 기다린다. 그것은 아직 나에게 오지 못한 어떤 기약같은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도착하지 않는, 아니 영원히 오지 못할지라도 오늘 저녁도 무언가를 마중나온 것이다. 나에게 호수공원은 역 대합실이다.

어느 날처럼 나는 오늘도 방금 도착한 희망의 엽서를 온 몸으로 받아 읽는다. 더구나 호수에는, 원두막의 정취가 유년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는데, 수면을 경계로 쏟아지는 가로등 불빛의 고요한 풍경 위에, 다시금 먼 달빛이 내려와 애무하며 포개진다. 그것은 매혹적이다.

요즘 뜨는 캠핑카들이 주변을 차지하고 있어서, 나에게는 조금 낯설기도 하였지만, 새롭게 부상한 우리의 관광문화에 한 몫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호수공원이 더욱 홍보 되고, 관광객들의 굳은 마음을 더 열 수 있다면, 또한 지역 문화 답사에 한 코스로 이어진다면, 신선한 공기와 힐링 장소로 더할 나위 없는 문화공간으로 확보 되고,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면 아주 좋겠다.

나는 확신으로 꽉 찬 호수의 마음에서, 강진 오는 기차를 기다린다,

날 밝으면 없는 도깨비불 같은 불빛들을 따라가다가 지상과 가장 가깝게 떠 있는 양치기자리, 바다뱀자리, 아크투루스, 별들을 헤아리다가 밤 깊은줄 모른다.

보았다

밤에만 기차가 오는 호수공원
오늘 저녁도 가드라인을 따라
차창 같은 도깨비불이 수없이 달린다
짧은 기적만 배드리 들녘에 던지며 사라지고
어둠은 더 깊게 파인다
다시 만난다는 것이 때때로 흐림이다
호수는 호수인 채 일어 날 줄 모르고
누군가의 독설처럼 떨어진다

기차만 기다리다가 기차만 기다리다가

이수희  <도깨비 불 > 전문

까만 도화지에 소원이 마구 달아난다. 양치기자리, 바다뱀자리, 아크투루스 , 헤아리다가 날 밝으면 없는, 아직껏 또 다른 내가 있는 줄 알았던가

허망한 도깨비불에 불과한 꿈같은 시간, 그런 세상을 꿈꾸다가 사라진 것이여, 막연한 허무의 종착역이여 이제는 도깨비불로 떠나는 것인가

떠났다고 할 것도 없고, 다시 올 것도 없는 삶인데, 오늘도 하나의 점처럼 떠난 불빛들 잠시 지나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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