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외등(外燈)
[다산로] 외등(外燈)
  • 강진신문
  • 승인 2021.07.1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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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 _ 시인·수필가

내가 사는 동네 위쪽에 월남사지(月南寺址)가 있다. 사지는 절터이니 월남사가 있던 터라는 의미일 게다.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가 창건해 조선후기에 폐사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월출산 천황봉을 병풍처럼 거느리고 이 땅에 불심을 전하던 월남사, 그 규모가 지금 봐도 엄청나다. 대가람답게 주변 터가 만여 평은 족히 되어 보인다.

월남사지를 가려면 월남마을을 거쳐 가야 한다. 원래는 우리 동네도 월남리였지만 마을 아래 30세대 한옥이 들어서면서 동이 하나 더 생겨 분가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큰집 같은 월남리에 항상 정이 간다. 남 같지 않은 남다름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산책을 할 때도, 산에 갈 때도 월남마을을 지나간다. 10만 평 녹차 밭도, 백운동 원림도, 경포대 계곡도 월남마을 너머에 있다. 월남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대충은 안다. 그곳 이장의 스피커 방송을 우리 집 마당에서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뉘 집 자녀가 승진을 해 동네잔치를 하는지, 안길 풀베기 작업은 언제 하는지, 주민들이 모여 회관에서 무슨 특식을 해 먹는지도 알고 있다.

월남마을에는 자그만 사찰이 있다. 조붓한 골목길 안쪽에 있어 그리 눈에 띄는 절은 아니다. 그 절 뒷담에 외등이 하나 걸려 있다. 첨엔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외등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무심코 지나쳤다. 어느 저물녘, 갓을 쓴 노란 알전구가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담장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불빛이 내 발길을 밝히고 있었다.  

발길이 뜸해 밤길을 가는 사람에게 더 소중한 외등, 저 불을 밝히는 이 누구일까. 다붓한 담 뒤쪽에 외등을 내다 건 이 누구일까. 절의 담장에 걸려 있으니 물론 스님께서 내다 걸었을 것이다. 유독 인적이 빨리 끊기는 산촌의 저녁, 호젓한 절집을 찾는 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스님의 외등은 나보다는 남을 위한 배려의 불빛임이 분명했다.

월남사지 가는 길 인적 뜸한 고샅길
처마 끝에 풍경風磬 걸 듯 담장 밖에 갖다 내건
갓을 쓴 노란 알전구, 어둠을 밝힙니다

별빛이 하나 둘 순아순아 잠이 든 밤
눈 맑은 비구니의 지붕 낮은 집 뒤에서
알전구 그 둥근 보시布施, 무명無明을 닦습니다
-유헌 「외등外燈」전문

이처럼 어두운 길을 밝혀 주는 것도 불교에서 말하는 일종의 보시가 아닐까. 보시란 무엇인가. 자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건 없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보시를 행할 때는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그리고 베푸는 것도 모두가 본질적으로 공(空)한 것이므로 이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적이 걱정이 된다. 내가 너무 유난을 떨고 있지 않나 해서다. 스님은 별 의미를 두지 않고 행한 일일 수도 있는데, 아니 그거 자체를 생각해본 적조차 없을 수도 있는데 내가 이렇게 글로 옮겨서 말이다.

나는 스님을 잘 모른다. 사찰 이름도 모른다. 골목길에서 몇 발자국 꺾어 들어가면 절의 정문이 있는데도 아직 거길 가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무심한 사람이다. 가끔 산책길에서 비구니 스님과 스쳐 지나치지만 가벼운 목례가 고작이니 알 길이 없다. 월남마을에 있는 절의 스님이라고 아내가 귀띔을 해줘 그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지만 스님이 나에게 건넨 말없는 그 말씀은 깊고도 울림이 있었다. 

외등은 따뜻하다. 조금은 쓸쓸하다. 미처 귀가하지 못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이다. 그렇다. 크고 많은 것만 다가 아니다. 작고 적은 것도 소중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위만 바라보고 살지는 않았는지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저물녘, 골목길 그 외등의 불빛을 밟고 걸으며 나를 다시 돌아보고 싶다. 그 외등 같은 밝은 등불 하나 내 마음에도 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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