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좋은 이웃
[다산로] 좋은 이웃
  • 강진신문
  • 승인 2021.07.0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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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노모께서 홀로 계시는 고향집에 돌로 쌓아 올린 담벼락이 있다. 매끈한 자연석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담이다.

대숲에서 내려와 담장을 점령하고 있는 조릿대 숲이 우거져 있다. 언덕 위에 매화나무 감나무 등 과일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청명 지나면 아버지께서 나무 둘레에 구덩이를 동그랗게 파서 인분을 넣고 흙으로 덮었다. 냄새가 고약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면 악취를 맡지 않으려고 손바닥으로 코를 막고 다녔다. 한편 영양분을 섭취한 감나무는 보답으로 이듬해 많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했듯이 감나무도 생명체라서 수령이 오래되다 보니 말라 죽었다. 우두커니 서있는 고목 껍데기는 껍질이 벗겨져 날린다. 여름이 되면 태풍에 쓰러질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젊은이가 없는 시골에서 커다란 나무를 베어줄 사람 구하는 일마저 쉽지 않다.

몇 해 전 흉측하게 방치된 윗집에 젊은 부부가 새로 이사를 왔다. 젊은 부부는 낡은 집을 산뜻하게 수리하고 마당에 우거진 잡목을 제거했다. 철제 울타리 사이마다 키가 작은 꽃과 나무를 심고 처마 밑에 스피커를 설치해 음악소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의 부인은 맵시가 좋기로 마을에 소문났다. 맛깔스런 음식 솜씨로 복지회관 조리사를 오랫동안 하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하고부터 서울에서 살다 중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도회지 생활에 익숙한 아내를 설득해 함께 왔는데 농사 경작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에게는 귀농보단 귀촌이 맞을 것 같다.

나보다 두 살 위인 그를 형으로 호칭하고 있다. 얼마 전 허물어진 블록담장을 견고하게 쌓아주고, 전기톱으로 키 큰 감나무 몇 그루도 잘라주었다. 어머니께서는 좋은 이웃이 생겨서 좋다며 흐뭇해 하셨다.

어릴 적 윗집은 대가족이 부유하게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모르나 우환이 겹쳐왔다. 그의 아버지는 새집을 짓고 헌집도 수리하던 목수였다. 여름 장마와 태풍으로 한쪽이 허물어진 집을 수리하던 중 지붕이 내려 앉아 흙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었던 것 같다. 가장의 죽음은 한 가정이 기울어가는 서곡이었다.

그 집에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서너 살 터울 쯤 되었다. 첫째는 선천성 청각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사춘기에 목숨을 끊었다. 둘째는 훤칠한 키에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성격도 좋았다. 중동으로 해외 근로 갔다 온 후 열심히 살다 불혹의 나이에 경운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셋째는 성격이 원만하여 부농으로 부유하게 살고 있다. 넷째도 성격이 원만하고 활동적이었는데 아쉽게도 십대에 덤프트럭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다섯째는 나와 동갑내기였는데 소아장애를 앓았던 것 같다. 두문불출하며 지내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목숨을 잃었다.

한 세기 동안에 남편과 아들 넷을 앞세워 보내야 했던 노파는 힘들었던지 말년에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상실한 채 살다 돌아가셨다.

젊은 시절 부유하게 살았던 그는 심성이 고왔으나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것 같다. 생활 쓰레기가 나오면 모두 아랫집 담벼락 밑으로 버렸다. 아랫집에 사는 어머니께서 윗집서 버리는 고철더미와 쓰레기뭉치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지난여름 동생과 함께 산더미처럼 쌓였던 묵은 쓰레기를 한나절에 걸쳐 치웠다. 어머니께서 말끔하게 정리된 텃밭을 바라보시며 이젠 모기 걱정 않게 됐다며 기뻐하셨다.

마을에 칠십 년대 초만 해도 백여 가구가 넘게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고작 사십여 가구만 살고 있는데 해가 갈수록 빈집이 늘어간다. 여느 농촌마을 풍경처럼 어린애 울음소리가 끊긴지 오래다. 이웃집 젊은 부부는 마을 어르신들의 불편한 일을 도와주니 객지에서 살고 있는 자녀들은 마음이 든든하다.

나는 감사의 표시로 이웃집 형을 초대해 소주를 한 잔 대접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타고 술잔이 오고가자 취기가 올랐다. 그는 왕년에 청량리에서 술집을 경영하며 한가락 했다는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나도 이에 뒤질 세라 왕년에 맥주병 몇 병 정도는 거뜬히 산산조각 냈다고 이마를 내밀어 보였다.

소인배들의 부질없는 취중망언을 듣던 어머니께서 그게 무슨 자랑거리냐며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라고 야단을 치셨다.

직장을 따라 고향을 떠나 온지 어언 22년이 되었다. 북풍한설 맞아가며 눈코 뜰 새 없이 살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이순 훌쩍 넘었다. 심신이 피로 할 때 눈을 감고 생각만 해도 힘과 위안이 되는 고향에서 중년의 두 사나이가 기울이는 술잔 속에 뜻 깊은 하루해가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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