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근면의 상징 개미를 본받자
[다산로] 근면의 상징 개미를 본받자
  • 강진신문
  • 승인 2021.06.23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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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우리 인간들이 하찮게 여기는 개미와 같은 곤충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기들 나름의 엄연한 삶의 질서와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나 곤충이나 하늘로부터 똑같이 귀한 생명을 부여 받은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미물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석류나무 한 그루를 분에 담아 몇 년째 기르고 있다. 나무 크기에 비하면 화분 크기가 턱없이 작지만 푸념하지 않고 봄이면 싹을 틔우고 여름이면 통통한 잎사귀에 윤기가 흐른다. 가을이면 가느다란 가지에 올망졸망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게 깜찍하고 대견스럽다.

그러나 소소하지만 확실했던 나의 행복은 오래가질 못했다. 두 해 전부터 잎사귀가 돌돌 말리고 가지 사이에 하얀 거미줄이 덕지덕지 붙었다. 잎이 무성하게 자라야 할 여름이 돌아왔건만 구겨진 잎사귀만 볼품없이 매달려있다. 나뭇가지 사이를 들춰보니 개미떼가 오르내리며 연한 잎을 빨아 먹고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파리와 모기 쫓는데 사용하는 스프레이를 뿌렸다. 개미떼의 활동이 잠깐 잠잠 하더니 부드럽고 달콤한 먹잇감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나의 인내도 한계점에 달하자 개미떼 소행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나무인데 고얀 놈의 개미야, 누가 이기나 보자.' 웃옷을 벗고 토시를 끼고 끙끙거리며 화분을 돌려 담벼락 밑으로 옮겼다.

살충제를 나뭇가지에 흥건히 살포하자 나무에 붙어 있던 개미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융단폭격을 맞은 개미떼는 더 이상 찾아오질 않았다.

개미떼의 습격으로 만신창이 된 나무가 안쓰러웠다. 예쁜 사기그릇으로 분갈이를 하고 영양분을 듬뿍 넣어 주었다. 나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예전보다 더 예쁘고 탐스런 열매가 가지마다 줄렁줄렁 열렸다.

어느날 아침이다. 개미떼와 일전을 치렀던 일을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중 전열을 가다듬은 개미떼가 또다시 출현했다. 사무실 앞 콘크리트 벽과 대리석 바닥 틈새에서 흘러나온 잘게 부서진 모래더미가 길게 늘어져 있다. 빗자루로 담벼락 배수구 쪽을 향해 힘껏 밀었다. 흙더미 속에 바짝 마른 지렁이 시체가 튕겨 나왔다.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를 못 견디고 동사했던 것 같다. 순간 역겹다는 생각에 재빨리 배수구 아래쪽으로 밀쳐 버렸다.

몇 시간 후 대리석 위로 더 많은 개미떼가 일사불란하게 행진하고 있다. 그들은 들어오는 대열과 나가는 대열로 나뉘어 다녔다.

구멍 바깥쪽으로 나오는 개미들은 자신의 몸통 크기의 모래 부스러기를 입에 물고 힘겹게 걸었고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가볍게 사뿐사뿐 걸었다. 지렁이 시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고 흙을 덮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수분이 증발되어 빳빳해진 지렁이 시체의 중량은 어림잡아 개미 성체의 수백 수천 배가 넘을 것처럼 보였다. 그 많은 무리가 단단한 대리석 바닥 틈새를 뚫고 나와 수 백리서 모래 조각을 운반하는 개미의 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담장 구석진 곳에 먹이를 저장해 둔 흙무덤만 보일 뿐 바글바글했던 개미떼가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다. 개미들은 천적의 눈을 피해 안전한 곳에 먹이를 갈무리해 두었으니 또 다른 장소에서 열심히 먹잇감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개미의 습성이 인간 정서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인색한 곤충이 아님에도 단지 생김새가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심술을 부리려 하는 것은 강자의 우월감과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호랑이가 지구상에 멸종 위기에 처해있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약자와 강자가 더불어 사는 상생의 원리를 무시하고 힘없는 짐승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 악순환의 결과다. 약육강식은 동물의 세계에서나 있는 것이다. 약한 자는 강한 자의 횡포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쥐가 벽에 무심코 구멍을 낸 것을 쥐는 금방 잊어버리지만 구멍은 언제까지 남아 있는 것처럼 상대방에 생각 없이 저지른 해코지가 피해자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 인간은 참으로 위대하다. 그 명민하고 지혜로운 힘으로 찬란한 역사를 창조해 왔다. 대대손손 이어온 자연경관을 함부로 파괴하거나 자연생태 질서를 교란시켜서는 안 된다.

약자의 생명을 존중하고 하찮은 미물의 생명도 살피는 것이 창조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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