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귀향가던 송시열 선생 그려진 영당 삼거리
제주도 귀향가던 송시열 선생 그려진 영당 삼거리
  • 강진신문
  • 승인 2021.05.0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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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 - 서성리 만세길 7]
영당 삼거리(Ⅰ)

 

영당 삼거리는 강진의 번화가였어. 강진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으니, 매일 복작복작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지. 지금은 매우 낡고 허름하지만 한때는 상권(상업상의 세력이 미치는 범위)이 밀집된 곳이었단다. 놋 그릇 공장하며 말발굽을 고치는 마점(馬店), 굵직한 제재소, 식당 등이 빗살처럼 빽빽했다고 해. 하지만 진짜 명물은 따로 있었지. 바로 신성의 영당이었어.

무슨 말이냐고? 지금 영당이라고 불리는 영당(影堂)은 덕이 높은 분의 화상(사람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린 형상)을 모시는 사당(조상의 신주를 모셔놓은 집)이었거든. 그 곳에 송시열 어른의 화상을 모셨더란 말이지. 조선왕조실록에서 무려 3,000번 넘게 거론된 그 어른을 말이야. 어때, 놀랍지? 송시열의 화상이 어떤 연유로 강진 영당에 모셔지게 되었는지 사연을 들려줄게. 졸지 말고 잘 들으렴. 자, 1689년으로 날아간다. 슈∼웅!

서인(사색당파의 하나)의 우두머리 송시열은 숙종 임금 앞에 납죽 엎드렸어. "전하! 후궁의 소생을 두 달 만에 원자로 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 그 말이오? 이젠 듣기도 싫으니 당장 나가시오." 임금은 화를 버럭 냈어. 송시열의 간언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

"중전께서 아직 젊사옵니다. 전하, 원자라니요? 너무 성급한 결정이옵니다."
이게 다 무슨 말이냐고? 임금의 후궁인 장씨가 왕자 균을 낳았더란다. 그런데 임금은 낳은 지 두어 달밖에 되지 않은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겠다고 나선 거였어. 대신들은 깜짝 놀랐지. 게다가 대궐은 당파(조선 시대,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붕당 내에서 다시 나뉜 파벌)싸움이 한창인 때라 매일 얼음판을 지나듯 아슬아슬했거든.

"이르긴 뭐가 이릅니까? 귀한 왕자를 얻었는데 원자로 삼지 못할 일이 무엇이란 말이오?" 임금은 노여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어.
"전하, 다시 한 번 신중히 생각하셔서……."
"시끄럽소!"

임금은 오히려 원자의 명호를 정하여 종묘사직에 고했단다. 이윽고 장씨를 희빈으로 봉하기에 이르렀지. 송시열은 부랴부랴 입궐했어.

"전하, 송나라 신종은 후궁에게서 철종을 얻었으나 적자가 없자 그때야 비로소 태자로 책봉하여 왕위를 잇게 했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또 시작이오? 남의 나라는 어땠느니 하는 말도 그만 두시오!"
임금은 차가운 눈빛으로 송시열을 노려보았어.

"전하, 주례(중국의 경서)에 이르기를……."
"주례든 가례든 그만두라 하지 않았소?"
"한 나라의 세자를 책봉하는 일이옵니다."
"이 나라 지존인 내가 하는 일이오."

"전하!"
"신하가 자꾸 임금의 옷깃이나 잡고 늘어지다니요? 당장 물러가시오."
"통촉하여 주옵소서!" 거듭되는 만류에 임금의 얼굴빛이 붉어졌어.
"음… 가만두지 않겠다!"

 

결국 송시열은 관직을 삭탈당하고 제주도로 유배되었지. 원자책봉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이유로 중전을 폐비시키고, 이를 반대한 이들을 모두 유배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단다.

83세의 노구를 끌고 송시열이 강진 남당포(지금의 남포)에 도착한 것은 1689년 2월 23일이었어. 남당포는 뱃길이 매우 발달한 포구였단다. 대마도는 물론 중국이나 제주도로 가는 배들로 매일 복잡했어. 교역(물건을 사고팔고 하며 서로 교환함)이 잦으니 자연히 사람들이 몰려들어 상업이 발달했지. 송시열은 강진을 경유하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는 길이었단다.

"선생님이 남당포에 당도하셨답니다."
"제주도로 유배를 가신다는군요."
사람들이 우르르 포구로 몰려들었어. 마치 명절이라도 되는 듯 대단한 인파였지.
"유동아, 서둘러라." 백련사 스님도 발길을 재촉했단다.

"스님, 누가 오시기에 이리들 야단입니까?" 유동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어.
"주자학의 대가시란다."
"주자라 함은 주희 선생을 말씀하는 것이옵니까?"
"그렇지. 사서를 집주하신 분이지. 송시열은 조선의 주희라고 불리는 분이란다."
"그런 분이 왜 유배를 오신답니까?"
"그러니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느냐."
스님은 깊은 숨을 내쉬었어. "휴∼우."

유동은 표정을 살피다가 대뜸 스님의 가사자락을 붙잡았단다. 길을 잃을까봐 내심 걱정이었거든. 어쨌거나 오랜만에 외출인지라 유동은 신바람이 났어. 저도 모르게 흥얼거렸단다.

서문(西門) 사는 윤첨도 어린 아들을 데리고 무리에 끼어들었단다. 먼발치에서라도 유학의 거장을 보고 싶었거든. 윤첨의 아들 윤도는 얼떨떨했어. 집안에서 화초처럼 살았던지라 이렇게 많은 군중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거든. 윤도는 저도 모르게 아버지의 손을 꼭 붙들었지. 꽃샘추위가 극성이던 날이었어.

"저기 우암선생이시다." 누군가 외쳤어.
"수척하게 마르셨구나."
"아니 어쩌다가 ……." 한 유생(유학자 선비)은 끝내 눈물을 흘렸어. 키 작은 윤도는 아무리 애써도 그분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지.
"자, 큰 어른의 모습을 한 번 뵈어라!"

윤첨이 아들을 불끈 들더니 자신의 어깨위로 올렸어. 갑자기 키가 커진 윤도는 얼떨결에 행색이 초라한 어른을 보게 되었지. 그분은 미동도 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어. 윤도는 왠지 모르게 뭉클했단다. 그때, 윤도 발아래에서 한 아이가 발끝을 세우며 목을 빼고 있었어. 녀석도 분명 선생을 보려는 거였겠지. 머리가 매끌매끌한 아이었단다. 윤도는 속으로 '동자스님인가.'하고 생각했지. 그때였어.

"폭풍 때문에 배를 띄울 수가 없답니다." 한 유생이 외쳤어. 고약한 날씨 때문에 뱃길이 꽁꽁 묶인 거였어.
"아, 다행이다." 윤첨은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아들을 땅바닥에 내려놓았어.
"강진에서 선생을 모시게 되다니 꿈만 같습니다."

포구에 모인 사람들이 좋아했어. 아버지 덕분에 바닥에 내려 온 윤도는 동자스님을 가까이에서 보았어. 눈동자가 머루 같다고 생각했지. 순간 동자스님이 휙 돌아다보았어. 두 아이의 눈길이 잠시 부딪쳤지.

"흠흠……." 윤도는 하늘을 쳐다보며 모르는 척 했어. 때마침,
"윤도야, 자리를 옮겨야겠구나." 윤첨이 아들의 손을 잡고 유생들에게 다가갔어. 선생의 거처를 두고 의견들이 분분했거든.

"아무래도 조용한 백련사로 모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유생의 고택으로 모시기보다 사찰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였어.
"선생님, 폭풍이 잦아들 때까지 백련사로 모시겠습니다."
송시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어. "여러분께 부담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어.

"별말씀을요. 하룻밤이라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말은 삼켜야했지. 유배길이라서 모든게 조심스러웠거든.
"자, 백련사로 갑시다." 일행은 발길을 돌렸어. 구강포를 따라 백련사로 향했지.

유동은 송시열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았어. 무표정한 선생의 모습은 왠지 외로워 보였단다. 하지만 눈빛만은 힘이 있었어. 당당한 기운이 서려있다고 생각했지.
백련사는 모처럼 소란해졌어. 스님들은 스님대로 유생들은 유생대로 바빴어. 유동도 찻주전자를 들고 문지방이 닳도록 넘나들었어. 이것저것 잔심부름이 많았거든. 주지는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선생에게 백련사 깊은 골짜기에서 채취한 녹차를 대접했어.

"음, 몸의 때를 씻어주는 맛이오이다." 송시열이 말했어.
"노독이 어서 풀리셔야할 텐데……."
주지스님의 걱정에 송시열이 빙그레 웃었어.

"식사준비를 서둘러주세요."
"선생님 잠자리도 다시 살피시고요."
백년사의 밤은 이렇게 깊어갔단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우암 선생은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잠자리에 들었어. 산사의 고요함 속으로 빠져들었지.

다음 날 송시열 선생은 신세에 보답이라도 하겠다는 듯 일찍 일어나 대중 앞에 섰어. 먼 길 떠나 온 사람 같지 않았어. 눈빛은 부드럽게 살아났고 목소리엔 힘이 실렸지. 드디어 강연이 시작되었어.

 

"태극은 음양의 본체인데 동(動)하여 양(陽)이 되고 정(靜)하여 음(陰)이 되는 것입니다."
유동스님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중용의 첫머리에 이르기를, 하늘이 명하는 것을 성(誠)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태극(太極)을 말하는 것이니, 곧 하늘 위에 또 한 층이 있다는 논리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머리만 아팠지. 발은 저리고 눈도 자꾸 감겼어. 윤도도 마찬가지였어. 몸을 비비 꼬느라 정신이 없었어. 어느 순간, 두 아이의 눈길이 부딪쳤어. 윤도가 고개짓을 했어. 두 아이는 눈치껏 밖으로 나왔단다. "휴∼우"

"이제야 살겠네!" 마당끝자락에 서자 아이들은 기지개를 켰어.
"스님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윤도가 물었어.
"아니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유동스님이 까만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리며 대답했어.
"그렇죠? 태극이니 성이니 머리통이 깨지는 줄 알았습니다."
"헤헤헤."

"그런데 스님, 강연중인 저 선생님은 무슨 죄를 지었답니까?"
"당파싸움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싸움이라면?"
"욕심 때문에 파당을 지었다지요."
"편을 갈랐다는 말입니까?"
"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요."
유동이 어른스럽게 대답했어.<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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