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아버지의 그늘
[다산로] 아버지의 그늘
  • 강진신문
  • 승인 2021.05.0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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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 _ 시안·수필가

나는 장흥에서 태어나 강진읍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쳤다. 그 후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직장생활도 했다. 부모님은 영랑생가 아래 탑동에서도 사셨다. 방송사로 직장을 옮기고부터 난 목포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강진으로 귀향했다.

장흥은 내가 난 곳이고 친지들이 많다. 강진은 오래 살았다. 그만큼 아는 사람이 많다. 지금도 강진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의 고향은 장흥이 됐다가 강진이 되기도 한다. 문학 작품 발표 등 공식적인 출생지는 물론 장흥이다. 장흥 사람을 만나면 "고향이 나도 장흥"이라고 한다. 강진 사람에게는 강진이라고 말한다. 두 지역이 나에겐 고향이나 다름없다. 장흥과 강진이 이웃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이처럼 가까운 곳이지만 내가 강진으로 이사하던 60여 년 전은 달랐다. 살던 곳이 장흥 끝자락이기도 했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완행버스로 거의 한나절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선학동에서 회진포구 터미널까지 3km를 걸어 나와 버스로 장흥읍으로 왔고, 거기서 목포행 버스로 갈아타고 강진읍에서 내려 다시 3km를 걸어 들어온 곳이 우리 가족이 강진에서 처음 정착한 우두봉 아래 교촌리 샛골이다. 내가 여섯 살 때였기 때문에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다만 밤늦게 샛골에 도착해 아버지 등에 업혀 컴컴한 골목길을 지나 이모 댁으로 갔던 기억은 생생하다.

아버지는 그때 왜 강진으로 오실 생각을 하셨을까. 후에 들은 얘기로는 이모님이 강진에 사시기도 했지만 읍내로 나가 자식들을 가르쳐야겠다는 열망이 크셨던 것 같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기나 여기나 차이가 나지 않지만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엔 충분히 그럴 법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 시절 아버지의 교육열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회진포구의 어부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자존감이 특별하셨던 것 같다. 한문은 근방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말씀을 달고 사셨다. "우리 '유'가 중에 막걸리 한 말 못 마시는 사람 없다"며 호기도 부리셨다. 항상 자기주장이 강했다. 누구에게든 지려고 하지 않았다.

예닐곱 살쯤이었을까.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장흥에 제사를 모시러 갔다가 무슨 일로 친척과 다투시고 나서, 자고 가라는 손길도 뿌리친 채 밤늦게 삭금리 외갓집으로 가기 위해 달빛도 없는 산길을 둘이서 걸은 적이 있었다. 바닷물이 넘실대는 선학동 둑길을 가로질러 걸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수문 옆을 지날 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선자리 고갯길에선 헛것까지 보였다. "아부지, 저기 누가 바지개를 지고 가요. 누가 손을 흔들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까지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밤길이 무서운 아들의 손을 잡고 술에 취한 아버지는 그렇게 '신라의 달밤'을 부르며 잿등을 넘으셨다.

물설고 낯선 강진으로 이사와 몇 마지기 논밭으로 아버지는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다. 빈농으로는 아들 딸 가르치기가 어려웠을까. 변두리 구멍가게 자리를 보러 가신 적도 있고, 사설 우체국 우편배달부를 해보시겠다고 우체국을 찾아가기도 하셨다. 구멍가게도, 우편배달부의 꿈도 이루지 못하셨지만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동분서주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 얼굴도 모르고 사셨다. 아버지를 낳고 바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 집 저 집에서 젖을 얻어먹으며 자랐다고 들었다. 그래서 약주라도 한 잔하신 날은 '어머니 젖을 제대로 먹고 자랐으면 장군이 됐을 거'라고 큰소리를 치곤 하셨다. 난 그때 그 말의 행간에 깊게 밴 아버지의 외로움을 읽어내지 못했다. 어머니 없이 힘든 세상을 건너오신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그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불효자였던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이 다가오고 있다. 어머니의 그늘에 가려 한때 내 기억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던 아버지의 그늘, 그 아버지와 함께 넘던 고향의 잿등은 포장도로가 돼 군내 버스가 다니고, 아버지와 함께 걷던 둑방길엔 영화 '천년학' 세트장이 들어섰다. 그렇게 하루하루 세상이 변하고 시간이 낡아가도 아버지의 그늘은 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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