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소 같은 남자
[기고] 산소 같은 남자
  • 강진신문
  • 승인 2021.05.0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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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례 _ 주부(칠량면)

어렸을 때는 '어른'이란 부모님 세대이거나 그 위의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 삶의 연륜이 쌓이면서 어른에 대한 나의 기준이 바뀌었다. 다수의 공익을 위해 과감히 권리나 부를 포기하고 약자의 편에 서서 강자의 억압에 대항하는 이들이 내 마음에 어른으로 자리 잡았다.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문익환 목사님, 사회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백기완 선생님과 채현국 선생님이 어른의 범주에 속하였다. 공공의 인물뿐만 아니라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주변에 어른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농산물품질관리원 김정환 소장님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눈처럼 하얗던 벚꽃이 봄바람에 흩날리던 날 그가 우리 사무실로 오셨다. 키가 크고 마른 외모로 강원도 감자 같은 담백한 미소를 눈가에 머금은 인상이 선하였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나 들어봤던 강원도 사투리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셨뜨래요?"

낯선 어투에 일제히 사무실 출입문 쪽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강원 지원에서도 일 잘하고 빈틈없기로 소문난 분이라 했다. 해남군 소장님과 친분이 있고 전남 지역에 애정과 관심이 있던 차에 기회가 생겨 강진으로 발령받아 오게 되었다고 한다. 

소장님은 대략적인 업무를 파악한 직후부터 솔선수범하기 시작하였다. 사무실 안팎 관리도 눈에 보이는 대로 손수 처리하곤 했다. 식사도 오천 원짜리를 하더라도 다 함께 자리를 만들려 노력하였다. 사실 소장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개인주의적인 분위기로 인해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소장님이 부임한 뒤로는 사무실 분위기가 사뭇 훈훈해졌다. 나도 괜스레 일찍 출근하여 하루 일을 시작하는 날이 많아졌다. 출근하고 싶은 사무실이 된 것이다.

우리 사무소는 강진군은 물론이고 완도군의 섬까지 이행점검 출장 업무가 잦았다. 관용차가 여러 대 있었음에도 공무직인 우리에게는 거의 배정되지 않아 자차를 이용해 업무를 수행했었다. 우리 팀의 업무 특성을 잘 알고 있었던 소장님은 출장 업무가 많은 우리가 관용차로 출장을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이처럼 한결같이 직원들을 믿고 배려해주니 직무를 수행하는데 수월하였다.

소통과 배려를 실천하는 소장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어느 때보다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열심히 일했다. 자유롭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 덕분이었다. 또한,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새내기 공무원에게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업무 할 수 있도록 멘토 역할을 해주었다. 소장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권위를 내세워 씁쓸한 기억을 가졌던 내게 관리자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다.

황사로 덮였던 뿌연 하늘이 봄비에 맑아지듯이 나의 닫힌 마음도 치유가 되어 푸르름을 되찾게 되었다. 강원도 사투리가 신기했던 우리는 소장님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웃었다. 나는 소장님에게 '산소 같은 남자'라고 하였더니 동료들도 이구동성으로 잘 들어맞는다고 공감했다. 공기를 오염시키는 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분이 있는 반면에 편백, 소나무 우거진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산소를 닮아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분도 있다.

좋은 분들은 왜 그렇게 빨리 발령이 나는지, 계절이 몇 번 바뀌기도 전에 원래의 근무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강원도 깊은 산골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처럼 순박하고 마음이 따뜻했던 소장님. 나는 그에게서 '배려'와 '솔선수범'을 배웠고 지도자의 품격을 갖춘 '어른'을 보았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어른으로서 기억되고 싶다. 노인이 될 것인가 어른이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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