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봄 쑥 망태에서 피어난 初心 이야기
[기고] 봄 쑥 망태에서 피어난 初心 이야기
  • 강진신문
  • 승인 2021.04.26 23: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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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원 _ 전 강진군수

어렸을 적 우리 동네 장터 한가운데에는 국화빵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오십 원에 네 개, 지금 생각하면 참 보잘것없는 먹거리였지만 항상 배가 고팠던 내게는 노릇노릇 한 국화빵은 그야말로 최고급 간식이었다. 어쩌다가 운이 좋으면 한 번씩 먹을 수 있었던 그 빵이 나는 너무 좋았다.

그때 소원 중 하나가 국화빵을 배가 터지도록 먹어보는 것이었는데 사실 내겐 그럴 돈이 없었다.

어느 볕 좋은 봄날의 일요일 오전, 친구들 몇이 마대자루와 호미를 들고나가길래 어딜 가냐고 물었더니 쑥을 캐러 간다고 했다. 쑥을 캐 마대 자루 가득 담아 팔면 천 원을 준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백 원이면 국화빵을 실컷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호미를 챙겨 친구를 따라 나섰다

우리 집에는 변변한 마대자루 하나 없어서, 짚으로 대충 얼기설기 만든 소 꼴망태를 메고 갔다. 봄날의 아지랑이만큼이나 아이들이 헤집어 놓은 들판의 쑥 향기는 어지럽게 피어올랐다. 나와 친구들은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 도 없이 점심까지 굶어가며 망태가 넘치도록 쑥을 캤다.

아이들의 조그만 손은 온통 녹색으로 물이 들었고 마대자루를 채우느라 씩씩거리며 쑥을 캐는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붉어졌다.

해가 뒷산에 걸리고 아이들의 붉은 얼굴에 저녁놀이 덧칠해질 때쯤 쑥을 가득 채운 마대자루를 메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얼굴도 구릿빛으로 번들거렸다.

그렇게 아이들은 빵빵한 마대자루를 가지고 농협창고 앞으로 모여들었다. 쑥을 사 가려고 기다리던 아저씨는 아이들의 마대자루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백 원씩 주셨다. 해는 져서 어둑어둑해졌지만 백 원짜리 한 장을 가슴에 꾹 품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얼굴은 하얗게 밝아졌다.

사실 난 친구들의 마대자루를 본 후 나만 천 원을 다 받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친구들의 마대자루는 다 큼지막한데 내 소 꼴망태는 다른 친구들이 가져온 마대자루의 절반이 안되는 크기였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는 내게 오백 원 만 주셨다. 다른 아이들이 캔 쑥에 비하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난 왠지 모를 서러움에 창고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만 울고 말았다. 그렇게 다른 아이들이 쑥 값을 다 받고 돌아간 뒤, 아저씨는 울고 있는 내게 가만히 다가오셔서 새까맣게 때가 낀 손에 조용히 백 원짜리 지폐를 쥐어주셨다

처음에는 오십 원을 받고 우는 나를 보며 미안하고 짠한 마음에 돈을 더 주신 줄 알았다. 다른 아이들의 마대자루는 쑥 반 잡초 반인데 내 망대는 잡초 없이 오로지 쑥만 담겨 있어 오히려 다른 아이들의 것보다 쑥이 더 많다며 기특해 하시는 아저씨의 말씀을 듣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일하고 처음으로 받은 돈이 내겐 얼마나 새롭고 소중했던지.

그날 밤 나는 국화빵을 사 먹을 생각에 설레어 잠을 설쳤고 결국 날이 밝아 학교를 파한 뒤 장터에 있는 국화빵 노점상까지 한 걸음에 내달아 오십 원짜리를 자랑스럽게 내밀어 내 손으로 산 국화빵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지금은 맛있는 음식들이 지천에 널려 있지만 내가 그때 먹었던 국화빵만큼 맛있었던 간식은 없는 것 같다.

이 일로 난 아저씨에게 신뢰를 얻었고 아저씨는 날 볼 때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과자 같은 간식거리를 주시곤 하셨다 아직도 나만 지나가면 웃으시던 아저씨의 얼굴이 생생하다.

쑥을 캤던 그날, 친구들과 나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친구들은 마대자루를 그저 채울 욕심에 쑥이건 뭐건, 눈앞에 보이는 풀은 다 캐고 뜯어 집어넣었고 나는 순수하게 쑥을 팔면 돈을 준다는 말에 그저 쑥만 열심히 캐어 담았을 뿐이었다.

차이는 단지 그것 하나였다. 쑥을 캐기 시작할 때부터의 마음. 자루를 채우는 것과 쑥을 캐는 것,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생각하는 그 마음에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일의 강도나 시간으로 보면 다른 친구들이 훨씬 오랜 시간 동안 힘들게 일했을 것이다 .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광고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다. 시작하는 마음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시작, 바로 첫 단추를 꿰는 작은 일이 성패를 좌우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기본을 지키는 마음이 나를 바꾸고 주변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가장 위대한 힘인 듯하다. 오늘 지금 바로 우리 모두 마음을 항상 들여다보고 잘 가꿔 야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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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문 2021-04-30 18:34:39
그동안 잘 계시죠?
오랜만에 얼굴을 뵈니 반가운 마음이 앞서네요.
국화빵 예기를 듣고보니 군수님이나 저나 살아온 과정이 별로 다를바 없네요.
배고픈 그때 그 시절이 말입니다.
항상 건강을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