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너그러움(寬容)
[다산로] 너그러움(寬容)
  • 강진신문
  • 승인 2021.04.1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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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봄바람이 싱그럽다. 몇 년째 고향에 내려와 살면서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틈틈이 심어놓은 꽃과 나무들이 정원가득 빼곡하게 피어난다.

전정가위와 호미를 들고 작은 뜰 안을 한동안 서성이다 한낮이 되어 툇마루에 앉았다. 아침에는 추위를 느낄 정도이더니 정오가 가까워오자 덥다.

쉬면서 노트북을 열어 뉴스를 펼쳤다. 그런데 조금은 쓴 웃음이 나오는 기사 한토막이 눈에 들어온다. 내용인 즉

「45세의 손님이 편의점에 들어가 물건을 계산하면서 종업원에게 "담아"라고 반말을 했다. 이에 종업원이 "봉투가 필요하신 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 손님은 "그럼 들고 가냐?"라고 핀잔을 줬다. 그러자 종업원은 "봉투가 필요하면 드리겠으나 반말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라고 했다. 이에 그 손님은 종업원을 카운터 밖으로 나오라고 해서 욕설을 하고 계산 중이던 빵을 집어 들어 종업원 얼굴에 던졌다. 그리고 함께 온 친구도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합세하여 종업원을 밀치고 손바닥으로 수차례 얼굴을 때렸다. 결국 이것은 재판에 넘겨져 종업원을 폭행한 두 사람에게 각각 벌금 400만원씩을 선고했다.」라는 내용이다.-세계일보 4.12일자-

이 보다 기사 문안은 더 길고 또 그 이면에는 더 복잡한 설왕설래가 있었을 테지만 요약했다.

지난해 여름 어느 날이다. 형님의 병문안을 하려고 전남대학교 병원을 갔다. 그런데 갈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주차가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는 새로 생겼다는 3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도 마찬가지로 주차장 입구에 차량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을 기다려도 차들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마 주차된 다른 차량이 빠져 나와야만 하는가 보았다.

그런데 그 사이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차가 퉁 하면서 몸에 충격이 왔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중립에 놓은 후 발을 떼고 있었는데 차가 슬슬 앞으로 미끄러져 앞차를 받았던 것이다. 평지인줄로만 알았는데 도로가 약간의 경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차 싶었다. 앞 차를 보니 덩치가 내 차의 두 배쯤 되 보이는 먼지하나 묻지 않은 번쩍번쩍한 BMW다. 외제차를 조금 스쳐 500백여만원을 물었다는 어느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앞차 운전수는 벌써 나와서 부딪힌 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전화로, 어제저녁 작은아버지에 관한 조금은 안 좋은 꿈을 꿨으니 오늘 조심 하라는 조카 녀석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내 염려는 모두 기우였다. 앞차 운전수는 차가 부딪힌 곳을 한참 살피더니 나를 돌아보면서 싱긋 웃었다.

그러면서 "졸으셨어요? 놀라셨죠? 괜찮네요" 하는 것이었다. 그 얼굴이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존경스러워 보였다. 그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면서 혼자 생각했다.

나도 저 분처럼 넉넉한 사람이 되겠다.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고 관용할 줄 아는 사람, 비록 내 잘못 없이 상대방의 부주의로 교통사고가 났더라도 웃음을 먼저 건네는 그런 너그러운 사람이 되겠다고.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이날 이때까지 그걸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이 기사가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것이다.  

마냥 그늘에서 쉬고 있기에는 너무 좋은 봄날이다. 다시 호미와 전정가위를 들고 일어서며 어디서 읽은 글귀를 떠 올린다. ' 봄바람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과 같이 생각이 너그럽고 관용하는 사람은 만물을 소생시킨다. 그러나 생각함이 각박하고 냉혹한 사람은 삭북(朔北)의 한설(寒雪)과 같이 세상을 얼어붙게 하여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죽게 만든다.'

셰익스피어의 말이던가?
'남의 잘못에 대해 너그러워라! 오늘 저지른 남의 잘못은 어제의 내 잘못이었던 것임을 명심하라! 잘못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완전하지 못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모든 일에 대해 관용으로 대하라.'

봄바람 살랑이는 따스한 봄날, 얼굴 찡그려지는 신문기사 한 토막을 읽고 나의 지나간 일을 반추하며 해보는 단상(斷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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