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경이로운 생명력
[다산로] 경이로운 생명력
  • 강진신문
  • 승인 2021.04.0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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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내가 살고 있는 주택과 가까운 위치에 제과점건물이 있다. 벽면과 바닥을 대리석으로 붙였는데 벽과 바닥 틈새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곡예사처럼 찰싹 붙어 자라고 있다. 몸통이 어린아이 주먹 크기만 한데 울퉁불퉁 불거져 있다. 좁은 공간에 씨앗이 어떻게 들어갔으며 바짝 마른 바닥에 어떻게 싹을 틔웠을까 궁금하다. 

위태롭게 서 있는 그 나무 곁을 지나칠 때마다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건넨다.

"나무야! 너는 그 넓고 비옥한 땅도 많은데 하필 이처럼 척박한 곳에서 살고 있느냐? 내가 너를 볕이 잘 들고 부드러운 흙으로 옮겨 심을 수만 있다면 옮겨 주고 싶다."

나무는 건재함을 과시하며 겨울이 돌아오면 잎을 벗어 던지고 앙상한 가지로 죽은 듯이 서 있다가 이듬해 봄이면 어김없이 새싹을 틔운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여기저기서 뿜어내는 에어컨 열기와 아스팔트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바람을 잎으로 식히며 견뎠다. 모진 비바람과 폭염을 한 몸으로 떠받쳐가면서도 해마다 새로운 나이테를 그으며 살아가는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사소한 일로 불평하며 살아가는 내가 한심스럽다고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저녁이다. 통행이 뜸한 틈을 이용해서 나무의 몸통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흔들어 보았다. 얼마나 견고하게 틀어박혔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무는 콘크리트 바닥 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수분을 끌어올려 잎을 피워내고 탄소 동화작용을 한다. 신산하고 고단한 처지를 탓하지 않고 잎을 피우고 몸집을 키워가는 나무가 대견스러웠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약 1,200여 평 되는 넓은 뜰에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고 빈공간에 잔디를 심어놓고 있다. 숲에는 새들이 노래하고 꽃밭에는 아름다운 모양의 꽃이 향기를 뿜어낸다.

여름이면 무성해진 나무숲과 보송보송한 잔디밭에서 여치와 찌르레기가 음악회를 연다. 잔디밭에 잡초를 뽑고 살충제를 살포하는 일은 다반사가 되었다. 깔끔하게 깎아 놓은 잔디밭은 잔디 구장처럼 시원스럽다. 웃자란 풀잎이 잘려 나간 뒤 햇볕에 마르며 내뿜는 향긋한 냄새는 추억을 자극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땔감을 마당 한가득 말려 놓았을 때 뙤약볕에 잎이 도르르 말리면서 풍기던 상큼한 냄새와 닮았다.

그런데 차량 숫자가 차츰 늘어나면서 기존 주차공간이 부족해졌다. 잔디밭 일부를 줄여서 주차장으로 활용케 되었다. 무성히 자란 잔디를 걷어내고 산업폐기물 일종인 슬러그를 깔아 기계를 장착한 강철롤러로 흙을 단단하게 다졌다.

봄이 되자 땅 밑에 깔려있던 잔디가 단단한 흙을 비집고 나왔다. 흙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도로 포장재 아스콘으로 두껍게 깔고 페인트로 주차 공간 표시를 했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아스콘으로 덮어놓은 가장자리에 두더지가 지나간 것처럼 바닥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연한 잔디 새싹이 실금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밀더니 삽시간에 주차장을 점령하여 아스팔트 위에 배를 깔고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장해 갔다. 참으로 경이로운 생명력이었다.

후한서(後漢書)에 이르기를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柔能制剛弱能制强)."고 했다. 우리 입속에 있는 부드러운 혀는 오래 남지만, 강한 이빨은 자칫하면 부러진다. 연한 나무뿌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뿌리를 내리고, 부드러운 새싹이 단단한 아스콘 바닥을 헤집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인간은 강해야 승리하고 약하면 패배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 까닭에 한사코 더 강한 무기를 생산하고 힘을 길러 굳세고 강하게 밀어붙이다 결국 부러져 망가지고 만다.

비좁은 콘크리트 벽 틈에 끼여 살면서도 빌딩 숲 사이로 잠시 스쳐 가는 햇볕에서 영양소를 공급받아 나무줄기에 영양분을 보내며 나이테를 키우는데 게으름 피우지 않는 나무를 바라보며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을 떠올려 봤다.

내가 지금 서있는 자리가 조건이 좋지 않다며 불평하기보다 살아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하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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