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부끄러움
[다산로] 부끄러움
  • 강진신문
  • 승인 2021.03.1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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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오늘 아침 모 신문에 난 기사다.

「남편과 사별한 후 두 아들을 키우며 힘겹게 살아가는 한 여성이 온라인 공간에 글을 실었다.
이 여성은 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두 아들의 어머니라고 자기소개를 한 뒤 '남편과 사별 후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들들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남편 고향인 하남으로 두 달 전 이사를 왔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많은 빚을 떠안고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고 있다'고 현재의 가정형편을 전하면서 '오늘 작은아들이 편의점에서 컵밥과 참치캔 등 먹을 것을 샀는데 가져온 물건들을 계산대에서 많이 들어내도 돈이 부족하자 곁에서 보고 있던 한 여학생이 이를 계산 해 주었다. 더욱이나 다른 물건까지 더 가져 오게 하여 추가로 결제해줬다'라고 하면서, 퇴근 후 작은 아들에게 이런 사실을 듣게 됐으며 그 여학생이 대신 계산해 준 금액은 대략 5만원 정도였다고 했다.

또 이 여학생은 아들에게 '시간이 나면 금주 토요일 오후 1시쯤 편의점으로 나오라'고 하며 '그동안 먹고 싶은 것을 적어오라'고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월급이 나오면 돈을 갚고 싶어 글을 올린다. 꼭 본인 연락 기다리겠다. 정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사연이 화제가 되자 글 속 주인공인 여학생이 댓글을 달았다. 여학생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에 대하여 우선 부끄럽습니다. 어린아이가 그 나이에 먹고 싶은 것이 많을 텐대 하는 마음에서 안타까웠고, 동생 같아서 계산해 드린 것뿐입니다. 어머님이나 아이가 제가 하는 행동이 동정심으로 느껴져서 오히려 상처가 될까봐 더 걱정이 됩니다"고 적었다.

이어 "예쁜 아이인데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짠했고 그래서 아이가 쉽게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몇가지 더 얹어서 사 준건데 이토록 고마워하시니 오히려 제가 더 송구스럽습니다"라면서 "결제 금액은 안 주셔도 되고 약속한대로 토요일 1시에 아이가 나오면 한번 더 챙겨드리겠습니다"고 도 했다. 이어 "하남에선 아들들이 상처받는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면서 글을 맺었다.」는 내용이다.

조금은 눈시울이 젖어오는, 그리고 가슴 따뜻해지는 기사다. 그러나 다른 것 들은 모두 차치하고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게 된데 대하여 우선 부끄러움을 느낀다" 는 그 여학생의 답변이다. 

아주 어렸을 적이다. 박정희 대통령 일가족이 김포공항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사진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 중 큰 영애(당시 대통령의 딸에게 부치는 호칭) 박근혜가 기자들 앞에 섰다. 그때 그녀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다음날 기사다. '동생 박근영은 기자들을 피해 경호원들 틈으로 숨어서 들어왔는데 큰 영애인 박근혜는 카메라 앞에 꼿꼿이 섰다'고 했다. 그 당시 그것이 누구를 칭찬하고 경멸(?) 하였던 것이었는지 또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그때,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집권을 꾀하는 아버지로 인해 수많은 학생들이 투옥되어 고문 받고, 그리고 죽어 가고 있는데 같은 학생으로서 조금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당시 근혜는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근영은 서울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나는 불교도가 아닌데 언젠가 우연히 읽게 된 유교경(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말씀)이다.

"부끄러워할 줄 알아라. 부끄러움의 옷은 모든 장식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 부끄러움은 소의 회초리와 같이 사람을 다스리는 채찍이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버리면 모든 공덕 또한 잃는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착한 법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이 없으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오는 사람들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같은 신문 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그 유들거리는 모습이 교활하다. 하나같이 꼭 자기여야만 된다는 그들에게서 무슨 겸양이나 부끄러움 등은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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