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포구에 뜨는 노을
[다산로] 포구에 뜨는 노을
  • 강진신문
  • 승인 2021.03.0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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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 _ 수필가

해가 지고 있다. 용마루 너머로 노을이 익어간다. 아마 지금쯤 저 멀리 구름발치 목포의 대반동 앞바다도 벌겋게 출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노을은 이처럼 늘 가슴에 스민다. 노을은 그렇게 우리를 다저녁에서 애저녁으로 끌고 간다. 시나브로 노을이 사라지고 나면 한옥의 알전구에 다시 노을빛 불이 들어온다. 

낮과 밤의 가교 역할을 해서일까. 노을은 참 편안하다. 수채화 물감처럼 번져가고 동심의 크레용처럼 아름답다.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눈동자에는 그리움이 노긋이 묻어있다. 그래서일까. 난 노을을 특별히 좋아한다. 진노랑 귤색도 좋고 감빛 혹은 황톳빛 주황색도 좋다. 사막의 분홍색 노을도 좋고 강가의 붉은 노을도 좋다. 따뜻해서 참 좋다.

내가 사는 강진에도 노을 명소로 알려진 곳이 많다. 갈대 사이에서 사운대는 강진만 생태공원의 노을은 살아 움직이는 그림이고, 마량포구 가는 길 고바우공원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한 폭의 풍경이다. 죽섬 너머로 떨어지는 노을은 바다를 물들이고, 덕룡산 봉우리에 걸린 노을은 바람을 물들인다. 구강포구의 노을은 또 어떤가. 포구 위에 뜨는 노을, 강물에도 동동 떠 함께 흐른다. 그때쯤이면 해안 절벽 아래 분홍나루 카페의 찻잔에도 노을이 살포시 담긴다.

눈을 조금 더 멀리 돌려보자. 사막의 노을 말이다.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사막의 노을을 상상해보라. 장엄하고 경이롭다. 아쉬움이고 그리움이다. 2014년 늦봄이었던가.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사하라의 석양을 좀 보려고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포기한 적이 있었다. 바람이 빚은 모래산 너머로 붉디붉은 노을이 만발한 사막, 그 사막의 풍경을 가슴에 담지 못한 게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글거리는 사막의 노을을 TV를 통해서 얼핏 봤다. 실크로드를 다룬 여행 프로그램에서였다. 실크로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중국의 장안에서 로마까지, 만 2천여 km에 이르는 동서양 교역로를 말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길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이기도 한 장안, 즉 지금의 시안에서 둔황까지 천 200여 km이다. 그곳에 돈황(敦煌)이 있고 막고굴(莫高窟)이 있고 명사산(鳴沙山)이 있고, 월아천(月牙泉)이 있기 때문이다. 명사산의 석양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 TV의 창에 비친 노을을 지켜보며 울컥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바람이 빚고 시간이 다듬었을 명사산의 노을은 장관이었다. 노을을 배경으로 쌍봉낙타의 긴 행렬이 지나갔다. 신기루처럼 노을 지는 그곳 명사산 아래 초승달 하나 떠 있었다. 월아천이다. 사막으로 변한 대지를 바라보며 흘린 선녀의 눈물이 고여 오아시스가 됐다는 호수, 석양의 월아천을 바라보는 순간 촉촉이 젖은 선녀의 입술이 스쳐갔다. 

나는 사막이 되고 네 눈물은 달이 되고
초승달에 현絃을 걸어 모래 울음 켜는 저녁
누천년 마르지 않는, 노긋한 입술이여
 -유헌「월아천月牙泉」전문

노을이 없는 석양은 얼마나 밋밋할까. 노을을 건너뛴 밤하늘은 얼마나 쓸쓸할까. 어쩌면, 그 날의 월아천도 노을이 배경으로 깔렸기 때문에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쌍봉낙타의 긴 행렬 또한 노을이라는 동행이 있어 먼 길을 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태양이 고단한 하루를 접고 노을을 드리우면 사막도 휴식에 들어간다.

이처럼 노을은 쉼이고 휴식이다. 저녁으로 가는 완행열차이다. 갈 때를 알고 제자리를 내주며 초승달을 부른다. 그런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동자는 얼마나 그윽한가. 그런 노을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삭막한 세상, 가끔은 노을처럼, 때로는 노을 같이 살 일이다. 붉게 붉게, 느리게 느리게도 살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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