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설날 아침에
[다산로] 설날 아침에
  • 강진신문
  • 승인 2021.02.2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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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겨울답지 않는 맑은 날씨다. 토방에 나와 밖을 바라보니 뜨락에 까치들 10여 마리가 난다. 구랍에도 자주 왔었던 그 녀석들이다. 하는 몸짓이나 동작이 언제나 똑 같다.

한두마리는 날개를 접고 다소곳이 나뭇가지에 앉아있지만 나머지 모두는 저희들 끼리 쫓고, 날고, 소리 지르며 이 나무 저 나무를 넘나든다. 집 담장 곁 피라칸사스 열매는 이 놈들이 결단 낸지 오래다.

한겨울에도 사랑의 열매처럼 생긴 아름다운 빨간 열매인데 하루아침에 해치운 것이다. 겨울이 지난 후에 따 먹었으면 했는데 금년에도 그런 바람은 허사다. 그러나 섭섭하거나 미웁지가 않다. 까치들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텃밭의 감을 따도 몇 개는 까치밥으로 남겨 두었었다.

며칠 전에는 눈 위에 내려앉아 먹이를 찾기에 쌀 몇 줌을 뿌려주었다. 그런데 주워 먹지 않고 오히려 멀리 날아가 버렸다. 지금 기억으로 옛날엔 까치가 귀했었다. 고작해야 한두 마리 정도, 그것도 1년에 몇 번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 시절 명절에 어머니는 어김없이 나물을 비롯한 몇 가지 음식을 사립문밖의 담장위에 올려놓았다. 까치밥 이었다. 까치들에 대한 노래도 많았다.

아침에 까치가 와서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지 했고,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라는 동요도 있었다. 아무튼 까치는 그 모습자체가 이쁘고 귀하기까지 하는 새였다. 사람들은 그런 까치를 길조(吉鳥)라 했고, 고무줄 새 총으로 다른 새는 다 쏘아 잡았지만 까치에게는 겨누기 조차도 않았다. 

그런데 그때 이름이 비슷하고 덩치도 그만한 까마귀들이 있었다. 까마귀들은 몸 전체가 까맣게 생겨먹어 우선 보기가 흉했다. 그놈들은 온통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수백 수천 마리가 무리지어 날아다녔다. 또 한꺼번에 보리밭에 내려앉아 한겨울의 보리싹을 송두리째 파 먹어버리기도 했다.

그들에 대한 흉한 얘기도 많았다. 까마귀가 하늘을 날다가 어느 집 근처에 앉으면 그 집이 상(喪)을 당하거나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했고, 또 그것들은 송장을 파먹고 사는 새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흉조(凶鳥)였다.

그래서 였을까, 옛 성인들은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정치인을 두고 '썩은 쥐를 탐하는 까마귀'(장자) 같다, 고 했다. 겉이 검은 까마귀를 속이 검은 정치인들에 견준 것이다. 그들이 무리지어 배태하는 당(黨)이라는 글자도 파자(破字)하면 검은 집(堂黑)이니 아이러니 하다. 지금 다행이도 그 흉조 까마귀들은 거의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속이 검은 그래서 역겹기까지 하는 인간까마귀들은 도대체가 줄어 들 줄을 모르고 그 행태 또한 날이 갈수록 그악스럽다. 제발 인간까마귀들 보지 않는 세상에서 한번만이라도 살아봤으면 싶다.

1700년전 도화원기를 쓴 도연명의 심정도 이랬을까 싶다. 그러나 그것은 어불성설, 한낱 바람뿐 일 것이다. 왜냐면 시커먼 속이 남들에게 비추이는 것은 모르고 어떻게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얼굴을 알리려고 하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므로-.

차치하고, 지금까지 글이랍시고 써오면서 그때마다 집사람에게 퉁사리를 맞았다. 가슴에 잔잔하게 와 닿도록 무엇을 써야지, 하고 한날 무슨 정치얘기, 남 헐뜯는 얘기, 그리고 지상이나 방송에서 떠드는 세속적인 얘기들을 쓴다고-. 애오라지 칼럼이 아닌 수필을 쓰라는 것이다. 오늘도 뜨락을 나는 까치들을 보고 필(筆) 따라 가슴 따라(隨想) 써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또 다른데로 흘렀다. 각설하고 그나저나 아름다운 저 까치들 따라 새해엔 길운이 오던지 아니면 근일 내 반가운 손님이라도 찾아 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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