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강진에서 모두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
[특집] 강진에서 모두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
  • 강진신문
  • 승인 2021.02.0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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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강진읍 ②) - 서성리 만세길 2]
김위균 집의 대밭(Ⅱ)
강진읍 3·1운동 기념비

 

최근 강진군도서관이 지역의 숨겨진 역사, 문화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은 두번째 우리 동네 옛이야기를 발간했다. 도서관은 지난 2019년부터 전해져 오는 강진의 수많은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발굴 계승하기 위해 연 1회 연차적으로 우리동네 옛이야기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우리 동네 옛이야기'은 '서성리 만세길' 편으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6편의 강진읍 서성리와 관련된 전설 같은 우리 역사, 문화 이야기가 정성스럽게 담겨 있다. 이 동화책은 지역의 향토사학자인 양광식 강진문사고전연구소장의 감수를 받아 지역 출신 김옥애, 강현옥, 장미연 동화작가가 직접 쓰고, 지역 출신 김충호 화백이 그림으로 참여했다.



그들은 가만가만 의견들을 나누었어.
"그럼 우리가 독립만세 외칠 날을 정확하게 언제로 정할까요?"
"준비 관계도 있고 하니 좀 늦어지지 않겠어요?"
"3월 23일이 어떨까요?"
"그날 뭐 특별한 의미가 있소?"

"우리 강진읍이 생긴 날이지요."
"만약 그날 실패라도 한다면 어쩌지요?"
"되도록 실패 없이 해야지요."
"3월 23일이라. 좋구려."
그런데 만세를 부르려면 손에 들 태극기가 있어야 했어.

"급한 것은 태극기 만들 일이겠네요."
"그렇군요."
그 말을 들은 김위균이 말했어.
"태극기는 김현구와 김계홍이 책임을 지고 맡아주게나."
"알겠네."
"장소는 우리 집에서 하면 될게야."

김윤식은 서울에서 구해 온 독립선언문을 가리키며 물었어.
"이것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려면 인쇄는 누가 맡을까요?"
김위균이 대답했어.
"그건 김학수하고 내가 책임지겠네."

손과 발이 척척 맞아 떨어졌지. 서로 미루거나 꽁무니 빼는 사람이 없었어. 그러나 큰일을 위해선 더욱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어. 사람들에게 독립만세운동에 대해 알리고 참여할 수 있게 하려면 우선 몰래 몰래 사람들을 만나야 했지. 그 일은 김안식, 양경천 김윤식이 맡았어.
"사람들을 만날 땐 특히 눈치를 잘 살펴야 하오."
"이런 엄청난 일을 하려면 돈도 필요하지요."
"자, 돈도 조금씩이라도 모아 봅시다."

위균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각자 형편에 맞게 돈도 내놓았어. 1차 만세운동이 3월 23일로 정해지자 김안식은 이기성과 둘이서만 조용히 만났어.
"만약의 경우를 위해 우리가 2차 만세를 부를 날짜도 확실하게 정해 놓아야죠."
잠시 말이 없었어. 깊은 강물처럼 침묵만 흘러갔지.

"2차는 4월 4일이 어떨까요?"
이기성의 말에 김안식이 물었어.
"4월 4일이면 강진 장날 아니오?"
"맞아요. 장날이라 사람들이 장터에 많이 모여들 겁니다." 
"낮 열두시 보은산비둘기 바위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면 그걸 신호로 해서 만세를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이건 일차 만세운동이 실패했을 경우니까....... ."

자세한 계획들은 둘만 다시 만나 의논하기로 했어. 만세를 부를 시간이나 장소나 준비물 같은 것들을 이기성은 꼼꼼하게 헤아려 보았지. 서성리 김위균의 집에서는 태극기 만드는 일이 시작됐어. 태극기 준비를 맡게 된 김현구와 김계홍은 김위균의 집을 자기 집 드나들 듯 했거든.

 

김위균의 집이 삼대(곧고 긴 물건)같은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환한 낮에는 작업을 할 수가 없었어. 남의 눈을 피해야 하니까. 밤에 방안에 호롱불이 켜지면 그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지 않게 창문을 돗자리로 가렸어. 숨막힐 정도의 조용함이 흘렀지.

서로의 눈과 손만 움직이며 태극기를 만들었어. 흰 바탕의 긴 네모 종이에 동 그란 원을 만들어 음과 양의 태극 모양을 만들었어. 네 모서리엔 하늘, 땅, 물, 불을 나타낸 네 개의 괘를 그렸고. 짧은 봄 밤. 그들은 일을 하다가 가뜩이나 피로한 몸을 추스르며 창밖을 내다보았어.

새벽의 새싹 기운이 대나무 숲 사이를 뚫고 살갗에 와닿았어. 잘 해내야지. 어떻게든 성공을 해야 해. 그들은 스스로를 다짐하면서 오로지 그 일에 몰두했어. 밤에 만들어진 태극기와 낮에 인쇄해온 독립선언문들은 흔적 없이 감춰둬야 했어.
"들고 어서 나를 따라 오시오."

삽을 들고 나타난 김위균이 앞장을 서며 말했어. 김위균은 대나무 사이사이에 대 뿌리가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 흙을 팠지. 1미터 쯤 깊이로 파낸 후 바닥엔 댓잎을 깔았어. 흙이 묻지 않기 위해 커다란 보자기로 태극기를 싸가지고 구덩이에 넣었어.

"아, 이제 좀 든든하고 안심이 되네."
모두들 긴장이 풀어지자 얼굴을 마주보며 얇은 웃음을 날렸어. 그 러고 보니 김위균의 집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딱 좋은 장소였거든.
"자, 이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이곳을 빠져 나갑시다."
"너무 피곤한데요."
"낮엔 각자 집에서 눈 좀 붙이고 저녁에 이리로 다시 모이게요."
"알았소."

이 일은 며칠 동안 똑같이 계속되었어. 태극기를 만들면 대나무 숲으로 들고 가서 숨기고 또 만들면 다시 들고 가서 숨겼던 거야.

모두들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해냈어.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똘똘 뭉쳐졌지. 하루하루가 번개처럼 빠르게 지나갔어. 3월 23일이 점점 다가오자 몸들은 더욱 바빠졌어. 김현구와 김계홍은 서로 말을 주고받았지.

"이봐 현구. 내일부턴 밤낮 구별 없이 일을 해야 되겠네."
"괜찮을까?"
"마저 마무리를 지어야 될 것 아닌가?"
"........."
"밤에만 만들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아." 

마침내 현구도 김계홍의 말에 동의를 했어.
"그럼 그렇게 하자고." 그동안 김위균의 대밭 숲엔 숨겨진 태극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졌어.
3월 20일. 만세 운동 사흘 전이었지. 이른 아침부터 김계홍과 김현구는 김위균의 집에 도착했어.

"밝은 낮에 일을 하려니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네."
걱정 말라는 듯이 계홍은 현구를 다독였어.
"이 사람아 마음을 강하게 다지게."
"그래야겠지."
그들은 태극기를 만들다가 놓아둔 재료들을 꺼내 마무리를 해 나갔어. 낮 열두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을까? 갑자기 문 밖에서 김위균의 집 개가 컹컹 짖어대는 거야.

"뭐지?"
깜짝 놀란 김위균은 가만히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어. 검정색 바지에 붉은 줄이 끼어 있는 양복바지들이 아른거린 거야. 일본경찰 두 사람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방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어. 김위균은 순간 몸을 홱 돌렸어.

"큰일 났어. 숨겨. 빨리 숨기라고!"
현구와 계홍은 마치 벼락을 맞듯 당황했어. 두 사람은 만들었던 태극기를 잽싸게 벽장 안으로 집어던졌어. 부엌으로도 숨겨두고. 심지어는 입고 있는 바지 안쪽에다 집어넣기도 했어.
그리고는 태연하게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지.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던 거야.

"꼼짝 마. 거기 서거라!"
일본경찰이 현구와 계홍의 앞을 막았어. 일본 경찰 중 한 사람은 조선 사람인 듯 한국말을 잘했어.

"무슨 일이세요?"
현구가 묻자 일본 경찰은 비시시 입가에 웃음까지 머금는 거야.
"서울에서 공부해야 할 학생들까지 데리고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게야?"
"..........."
"여기는 왜 오셨소?"
"경찰서에 가 보면 모두 알거다."
"도대체 이유가 뭔데요?"
"가보면 알게 된다니까. 어서가자."

일본 경찰들은 방안을 뒤져서 눈에 보이는 태극기를 모두 빼앗았어.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정한 1차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 김위균, 김계홍, 김현구는 경찰서로 끌려갔어.

가면서 그들은 몰래 만들어 대밭에 숨겨 둔 많은 태극기들을 생각했어. 그것들을 빼앗기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던 거야. 두 명의 경찰 중 한 사람이 우리말로 말했어. 그는 보통 때도 순하고 정이 많아 마을에선 좋은 사람이란 말을 듣고 살았던 경찰이었어.

"너희들 잡혀가서 고생을 안 해야 할 텐데......"
마침내 강진 경찰서에 들어선 세 사람은 놀라 넘어질 뻔 했단다. 거기 태극기 만세 운동을 함께 이끌었던 동지들이 벌써 잡혀와 있었던 거야. 김안식, 김학수, 김윤식 등을 합해 아홉 명이 와 있었어. 거기다 세 사람이 또 들어와 모두 열두 사람이 됐지.

"어떻게 알고 찾아 왔을까요?"
"하느님도 원망스럽소."
"만세 한번 불러보지 못하고 이 꼴이 뭐다요?"
김위균과 김윤식은 눈빛으로 그런 말들을 주고받았어. 그들은 만세를 부르기로 정한 3월 23일에 장흥 검사국으로 모두 옮겨졌지. 만세를 부르는 대신 몸이 꽁꽁 묶인 채 끌려가고 만거야. 틈만 나면 억울하다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김안식은 그들에게 가만가만 위로의 말을 전했어.

"포기하지 말고 기다려 봅시다."
"우리가 잡혀가고 있는데 뭘 기다려요?"
"어쩌면 우리는 감옥에서 2차 만세 운동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르오."

1차 만세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장흥 감옥에서 멀리 경상도 쪽으로 옮겨졌어. 대구 검찰에서 판결을 받고 감옥살이를 했었지. 비록 1차 만세운동은 실패로 그쳤지만 김위균 집의 대밭은 강진 독립운동의 발상지가 됐거든. 그곳에서 3.1 독립만세를 외치려는 태극기가 준비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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