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미스터 트롯에 빠지다.
[다산로] 미스터 트롯에 빠지다.
  • 강진신문
  • 승인 2021.01.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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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지난 해 초부터 들이 닥친 코로나19 해일이 전국을 덮치면서 국민의 생활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국민들은 일상이 되어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에 귀를 기울인다. 확진자 발생 숫자와 발생 지역에 따라 다섯 단계로 분리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단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과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우선적인 일이 되었다. 외출을 자제하고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자연히 많아졌다. 정다운 사람 만나서 밥 한 끼 먹자는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참으로 얄궂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일상이 정지되어버린 것 같은 막막함에 빠져 지내던 중 오락거리가 하나 있었다. 지금은 모든 채널에서 경쟁적으로 방영하는 다양한 트롯경연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던 '미스터트롯' 콘서트다. 최우수 가수를 단번에 뽑는 것이 아니고 많은 후보자들이 나와 여러 단계의 선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어느 출연자가 잘하나?'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아울러 제각기 마음에 드는 후보자를 정해 놓고 그 사람이 정상에 오르느냐 마느냐 설레는 가슴으로 지켜보는 것도 양념거리이다.

나는 평소 트롯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목요일 저녁을 손꼽아 기다리다 경연이 시작되면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예선을 거쳐 선발된 수십 명의 후보자들이 노래 실력을 뽐낸 다음 심사위원들이 매긴 점수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방식이 자못 흥미로웠다. 저 후보는 얼마의 점수를 받겠다고 나름대로 점수를 부여한 다음, 그 결과를 확인하며 나 자신의 음악적 감각을 확인해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이젠 첫 소절만 들어도 대충 점수를 알아차릴 정도가 되었다. 노래 솜씨는 다들 대단했다. 기성가수 뺨치는 실력자들이 선곡을 잘 못하여 기대 이하의 점수를 받고 발길을 돌리는 것을 보며, 이게 보통 어려운 관문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민영방송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미스터트롯'에 1만 5천여 명의 도전자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시청자들의 공개검증 과정을 통해 101명이 본선에 진출 했다고 한다. 후보 인원은 좁혀들고, 막바지에 이르러 열네 명 가운데 일곱 명을 뽑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두 사람이 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다음, 점수에 따라 한 사람이 탈락되는 방식은 과연 누가 자리를 지키고 누가 내려갈 것인가 비상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공간에서 함께 경연준비를 하며 지냈던 후보와 일대일로 겨뤄야 하는 대결이야말로 총칼 없는 전쟁이었다. 결국 최종 일곱 명이 남고 나머지 후보들은 탈락하게 되었다. 매혹적인 저음으로 남성미를 풍기던 후보와 생글거리는 미소로 애교스러운 율동을 자랑하던 후보가 미역국을 먹고, 화려한 몸짓연기와 함께 열정적인 고음을 내던 뮤지컬 출신 후보와 날렵한 발차기와 공중제비를 하며 노래한 태권도 선수 출신 후보도 탈락했다. 

결승 무대는 마지막 남은 일곱 명 가운데서 진선미를 뽑는 경연이었다. 작곡가에게 받은 곡과 자기의 애창곡 등 두 곡을 부르고 종합 점수에 따라 최종 순위를 결정하는데, 정말 손에 땀을 쥐는 열띤 경쟁이었다. 마침내 가슴을 졸이게 만든 끝에 최종 일곱 사람의 순위가 발표되었다.

2020년 1월부터 시작한 경연이 3월 중순에 이르러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그러자 방송사에서 후속 프로그램으로 전화 신청곡을 받는 시간을 마련했다. 종합편성채널 최고의 시청률인 30퍼센트의 기록을 그냥 멈추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승까지 오른 일곱 명의 가수를 모아 놓고 전국 시청자들의 신청곡을 불러주는 방식이다. 이것 또한 흥미진진하기 그지없었다. 통화하는 사람이 어느 가수를 지목할지 알 수 없으므로 전화가 연결될 때마다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며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대해본다. 이름이 불린 사람은 득의만만하지만 나머지들은 맥이 풀린다.

이번 경연방송을 통해 나도 트롯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그동안 그저 흘러간 옛 노래라며 노년층의 전유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불러서 그런지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맛 퓨전음식 같은 새로운 맛을 알게 되었다. 요즘 방송사마다 앞 다투어 이들을 초대하고 광고모델로 활약하는 것을 보면 지금 불고 있는 트롯 열풍이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가 않다. 코로나19의 끝이 언제인지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곱 트롯가수들의 눈부신 활동을 계속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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