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강진에서 독립운동,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
[특집] 강진에서 독립운동,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
  • 강진신문
  • 승인 2021.01.0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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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강진읍 ②) - 서성리 만세길 1]
김위균 집의 대밭(Ⅰ)
강진읍 3·1운동 기념비

 

최근 강진군도서관이 지역의 숨겨진 역사, 문화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은 두번째 우리 동네 옛이야기를 발간했다. 도서관은 지난 2019년부터 전해져 오는 강진의 수많은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발굴 계승하기 위해 연 1회 연차적으로 우리동네 옛이야기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우리 동네 옛이야기'은 '서성리 만세길' 편으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6편의 강진읍 서성리와 관련된 전설 같은 우리 역사, 문화 이야기가 정성스럽게 담겨 있다. 이 동화책은 지역의 향토사학자인 양광식 강진문사고전연구소장의 감수를 받아 지역 출신 김옥애, 강현옥, 장미연 동화작가가 직접 쓰고, 지역 출신 김충호 화백이 그림으로 참여했다.

 

 


강진읍 서문 안 네거리에서 보은산 쪽으로 가다보면 대나무 숲 안에 샘이 있었어. 그 샘을 사람들은 옥샘이라 불렀지. 샘 둘레는 울창한 대밭이었어. 대나무들을 헤치고 조그맣게 난 대밭 길로 들어서면 초가집이 한 채 나타났거든. 여섯 칸짜리 본채에 다섯 칸 문간채가 붙어 있는 집. 길에서는 대 숲에 가려 집이 잘 보이지 않았지. 그 집 주인은 김위균.

하늘을 찌를 듯 울창한 대밭 속엔 단칸짜리 정자(놀거나 쉬기 위 해 경치 좋은 곳에 만든 아담한 집)까지 뒀어. 시를 좋아한 어른들이 모여 시를 읊고 멋있게 시간을 보냈던 쉼터였어. 하지만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로는 그 정자에도 사람들이 모이질 않았지.

1919년(기미년) 2월 8일. 일본 동경에서는 공부하고 있던 한국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선언식을 가졌대.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한 독립선언식을. 일본에서 독립선언식이 무사히 마쳐지자 이번엔 서울에서도 3.1 만세 운동이 터진 거야.

나라를 빼앗긴 조선 사람들은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곳곳에서 독립운동을 벌였어. 강진에 살고 있는 몇몇 뜻있는 사람들은 3.1운동에 대해 알고 있었어.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읽고, 삼일 만세를 불렀다는 소식을 들었던 거야. 그래서 김안식과 이기성은 강진에서도 독립운동을 펼칠 의지들을 다져갔어.

"각자 극비리에 행동해야 하오." 김안식이 말하자 이기성은 대답했어.
"믿을 수 있는 동지들만 우선 끌어 모아야지요."
"그래야죠." 김안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어.
"독립만세 의거 날짜는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강진 학생들이 돌아오면 그때 결정키로 합시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던 지방의 학생들은 3.1 만세 운동을 자기들의 고향에 알리고 싶어 했어. 학생들은 독립운동에 도움이 되기 위해 속속 자기들 고향으로 돌아갔지. 그동안 서울학생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김안식은 학생들이 강진에 올 날을 기다리는 중이었거든.

"정확히 날짜는 잡지 못해도 대강 계획은 세워 둡시다." 이기성의 말에 김안식은 대답했어.
"아무래도 만세 운동을 1차와 2차로 두 번 잡아야 될 듯 싶소."
"아니 왜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야 되지 않겠소?" 김안식은 지혜 있는 눈을 껌벅거렸어.
"1차를 늦어도 3월 하순. 2차를 4월 상순쯤으로. 어떻소?"
"좋습니다."

"1차 운동은 내가 끌어가겠소." 김안식은 자기가 1차 만세운동을 위해 앞에 나서겠다 했어.
"그럼 2차는 내가 맡아야죠." 이기성도 단단히 각오를 하는 표정을 지었어. 둘은 깊은 한숨을 내 쉬었지. 어쩌다 나라를 잃고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런데 꼭 우리 둘만 알아야 될 일이 있소."
"그건 또 뭡니까?"

"만세 운동 행사가 1차와 2차로 나누어졌다는 말은 절대로 둘만 알아야 하오." 이기성은 김안식의 말을 받아들였어. 입을 굳게 다물고 눈빛으로 약속을 했어. 만약 일차 운동이 실패할 경우엔 자기가 나서서 2차 만세 운동을 끌어가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지.
"우리 실수하지 맙시다."
"그럽시다."

 


이기성과 헤어진 김안식은 즉시 1차 독립 만세운동 준비에 들어갔어.
이럴 즈음 서울 휘문 학교에 다니던 김윤식과 경성 법전에 다니던 양경천 학생이 강진에 내려온 거야. 1919년 3월 8일. 꽃피는 봄이었지만 꽃샘바람을 맞으며 두 학생은 고향 강진에 도착했지. 걸음을 멈춘 김윤식은 경천에게 말했어.

"경천이, 자네는 얼굴 보이지 말게."
"왜?"
"자네 집으로 가서 숨어 있게."
"같이 가면 안 돼?"
"둘이 다니면 남의 눈에 쉽게 띄니까."
"윤식이 자네는?"
"난 김안식의 집으로 곧바로 가겠네."
"그렇다면."

양경천은 머뭇거리며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어.
"이것도 가지고 가야지." 양경천은 속옷에 숨겨 가지고 온 애국가 가사와 독립신문을 윤식에게 내밀었어.
"얼른 받게. 조심하게."
"알았네." 안전을 위해 따로따로 행동하기로 한 윤식은 혼자 김안식의 집을 찾았어.
"들어오게. 곧 뜻을 같이 할 우리 동지들이 이리로 올 걸세." 기다렸다는 듯이 김안식은 김윤식을 반갑게 맞았어.

"경천이는 보내고 혼자 왔습니다."
윤식은 구두 안창 밑에 깔고 온 독립선언서를 김안식의 앞으로 내 밀었어.
"이렇게 소중한 걸! 힘들게 가져 왔구먼."
"들키면 끝장이니까요."
독립선언서와 애국가 가사와 독립신문을 든 김안식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지.
"고맙구먼. 수고 많았네."

그때 김안식의 집으로 김위균과 김현구가 찾아왔어. 그들은 학생 김윤식과 양경천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에 숙연해졌어. 윤식에게 서울의 3.1독립운동 상황을 자세히 듣게 되자 더욱 만세운동의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거야.

"함께 일할 동지들을 더 끌어 모아야 할 것 같네." 김위균, 김안식, 김현구는 같이 일할 사람들의 힘이 더 필요했어.
"각자 한두 명씩만 책임을 지세."
"한두 명 가지고 되겠어?"
"사람이 많을수록 들통날 염려도 있잖아." 
김현구가 먼저 말했어.
"난 김계홍을 맡겠네."

김위균도 덩달아 말을 이었어.
"난 한 명을 더해서 두 사람을 하겠네. 김만철과 양병우를 책임질게."
김안식은 김학수와 김제문을 맡겠다고 약속했어. 그리고 모든 연락 장소를 서성리 김위균 집으로 정했어. 서성리 김위균 집이란 말에 모두 좋다며 박수까지 친 거야.
"대숲이 우거져 있으니 숨을 수도 있고 일본경찰들 눈을 피하기 딱 좋은 곳이지요." 김위균도 마다하지 않고 말했어.

"아무리 우리 집 대밭이 무난하다 해도 행동들은 무겁게 해야 하오."
"암. 그건 옳은 말이지요." 그들은 헤어질 때도 따로따로 움직이며 안개처럼 흩어졌어.
1919년 3월 10일.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무렵이었어. 그날 김위균의 집으로 여러 사람들이 모였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한 사람씩 살금살금 찾아왔어. 일본한테 다시 나라를 찾아와야 된다는 뜻을 함께 한 동지들이었지. 김윤식과 양경천도 모습 을 드러냈어.
김위균이 먼저 말문을 열었어.

"윤식과 경천이가 서울에서 구해 온 것들을 보았을 때 순간 가슴 이 뭉클합디다."
"어서 우리도 좀 봅시다." 김위균이 그들 앞에 먼저 독립선언서를 펼쳐 보였어.
"이것을 서울에서 가져왔단 말이지."
"그렇다네."
"둘 다 대단한 학생들이네 그려."

"서울에서 내려올 때 왜놈 순경에게 잡힐까봐 우리들 속이 다 타 버렸다니까요." 윤식의 말에 경천도 한마디 했어.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이 정말 천만 다행입니다." 먼저 독립선언서를 읽어 봤던 김위균이 설명을 해 나갔어.

"여기 서른세 사람의 이름들을 읽어 보시오."
"바로 그분들이 3·1 만세운동에 앞장 선 사람들 아니겠소."
"그렇지요."

"참으로 감동입니다." 누군가가 독립선언서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어.
"여기가 탑골공원이라 생각하고 가만가만 누가 한번 읽어 보시오."
"내가 낭독을 하리다." 그렇게 말한 김위균은 소리를 낮춰 독립선언문을 읽어 내려갔어.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하는 국민인 것을 선언하노라. 이것으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으로 자손만대에 일러 겨레가 스스로 존재하는 마땅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이하 생략. 1979년 3.1운동 60주년을 맞아 김동길 박사가 한글세대를 위 해 작성한 독립선언문중 일부임)

글을 다 읽고 난 김위균은 힘을 주며 말했어.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일본에게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국민인 것을 강진에서도 널리 널리 알려야 하오."
그때 윤식도 덩달아 설명을 했어. "지난 번 서울 탑골 공원에서는 세계만방에다 그 사실을 알렸었지요."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아 와야만 합니다." 위균의 집에서 저녁을 먹은 사람들은 이따금 대밭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들었어. 대나무들이 너희들은 나라를 위해 대나무처럼 대쪽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다독이는 듯 했어. 독립선언문을 앞에 놓은 그들의 몸에선 뜨거운 피가 팍팍 솟고 있었지. 저절로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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