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허유와소부
[다산로] 허유와소부
  • 강진신문
  • 승인 2020.11.1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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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것들 중 하나가 줄어드는 수면시간이다. 오늘도 새벽 3시, 여느 때와 같이 자잘한 꿈과 함께 잠을 깬다. 뒤척이며 눈을 다시 붙이려 하나 되지 않는다. 불을 켜고 머리맡에 놓아둔 맹자를 펼친다. 그래도 별무소용이다.

아무래도 잠은 틀린 것 같다. 평소처럼 휴대폰을 열어 뉴스를 읽으려다 오늘은 tv리모컨을 집어 든다. 잠이 오지 않을 때 tv나 휴대폰을 열지 말라했지만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다. 켜자마자 국회에서 열리고 있는 대정부 질문이 나온다.

정치 뉴스는 채널을 돌려버리는데 오늘은 그대로 두고 본다. "장관, 장관은 지금 그것이 말이라고 해요? 그렇게 일을 하려면 그만 두세요" 모 국회의원이 눈을 부라리며 장관에게 말을 하고 있다. 장관은 쩔쩔매며 빌듯이 변명을 하려든다. 그러나 의원은 "…알았어요. 그만 두세요" 라며 말끝을 잘라버린다. 장관의 모습이 짠하다. 저 모습을 그의 가족이나 자식들이 본다면 어떨까?

이어서 국회의원은 자기 동료의원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간다. "저기 계신 존경하는 ㅇㅇㅇ의원님 …" 어투는 방금 전과 180도 바뀌어 있다. 그들이 자기들 의원을 지칭할 때는 하나같이 모두(冒頭)에 "존경하는…" 을 붙인다. 회의를 진행하는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발언권을 줄때마다 '존경하는 ㅇㅇㅇ의원님 말씀 하십시요' 한다. 그들끼리 쓰는 상투적인 수사(修辭)다. 쓴 웃음이 나온다.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것 중의 또 하나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로 군림하는 지자체의 의원에서부터 군수, 도지사, 국회의원 등이 모두다 하나같이 그 얼굴에 교활함이 묻어난다. 언필칭 그들은 무슨, 국민을 위하여, 국가를 위해, …의 발전을 위해, 어쩌고 하지만 천만에다. 그 유들유들하게 웃는 얼굴의 이면에서 명예와 권력 그리고 자기 삶을 위한 추한 가식이 진득거리는 것을 숨길수가 없다.

그 얼굴에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덜 할 것이다. 그것조차도 없다. 부끄러움. 사람은 모름지기 남 앞에 나설 때면 먼저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발가벗겨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부분까지는 자기를 남에게 까발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과 동물을 구별하는 바로미터 즉 기준이다. 인간에게는 있고 동물에게는 없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동물에 가깝다고 했다. 정치인들을 보고 있으면 역겨운 것이 이 때문이리라.

요임금은 나이가 들어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마음먹었다. 그는 아들 단주를 사랑했지만 왕의 재목감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사로운 부자(父子) 관계보다는 천하를 다스리는 대의가 먼저였다.

후계자를 물색하던 요임금은 허유라는 현명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요임금이 그를 찾아갔다. "현자가 계시온데 덕 없는 내가 임금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옳지 않소. 청컨대 임금의 자리를 받아주시오" 허유는 한마디로 사양했다. "명경(明鏡)같이 살아도 짧은 한 세상, 악취나는 썩은 물에 몸을 넣어 어찌 부끄러운 삶을 살아 가리요? " 라면서-. 그러나 그 후로도 계속해서 청하자 그는 기산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나 요 임금은 거기까지 찾아가 이제는 어느 한 곳의 성주라도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허유는 다시 거절하고 그리고 다음 날 흐르는 영천 강물에 귀를 씻었다. 때마침 소에게 물을 먹이려 왔던 소부가 허유에게 물었다. "왜 강물에 귀를 씻고 있는가?" "임금이 나를 찾아와 나라를 맡아 달라고 하네.

그래서 그 말에 더렵혀진 내 귀를 씻고 있네" 소부가 웃었다. "자네의 소문이 퍼졌으니 그런 말을 듣는 게 아닌가. 모름지기 참된 사람(은자)은 그 이름조차 밖에 알려지게 해서는 안 되는 법. 한데 자네는 그 이름을 은근히 퍼뜨려 명성을 얻은 게 아닌가?" 소부는 소를 몰고 강물을 거슬러 위로 올라갔다. "왜 소한테 물은 안 먹이고 그냥 가는가?" 소부가 대답했다. "자네의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내 소에게 먹일 수가 없네 "

'명예와 권력은 인간이 짊어진 쓸데없는 멍에이다. 그것들은 까마귀의 썩은 쥐와 같은 것, 백로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장자의 말이던가? 작금의 우리 정치인들이 만분의 일이라도 이를 새겨들으면 좀 좋으련만-. 그래서 상대가 더 훌륭하니 그를 뽑아달라고 하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허나 모두가 망언이고 백년하청일지 모른다. 왜냐면 '정치인은 죽어가면서야 부끄러움을 아는 동물' 이라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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