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세상을 바꾸는 성공한 삶
[다산로] 세상을 바꾸는 성공한 삶
  • 강진신문
  • 승인 2020.10.2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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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만 _ 전 의정동우회장

일정한 재산이 없어도 한결 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선비나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 평범한 백성은 불가능한 일이다. 진실한 선비의 마음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 중요하다.

역사를 만난 수많은 인물 중 더할나위 없이 떠오르는 순천에 팔마비가 새롭게 연상됐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많은 중요한 순간이라고 별다르게 오는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기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740년전의 논픽션이 순천에 가면 팔마비라는 비석이 있다. 고려 시대에 순천에서 이로인한 사또 최석의 공덕을 기르기 위해 만든 비석이다. 최석 사또는 1278년에 부임하여 1281년 3년간 최석은 부임해 개경에서 순천까지 내려오게 된다. 당시에는 육지 교통수단이 말(馬)뿐이었으니까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순천에는 나쁜 관행이 있었다. 바로 전별금이다. 전별금이 뭐냐하면 예를 들어 팀장이 회사를 그만 두면 팀원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돈을 챙겨주는 것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사라진 것 같은데 예전에 그랬던 경험이 있었다. 아무튼 당시 순천의 전별금은 바로 말이었다. 사또가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 말 여덟마리를 줘야 했다. 그때 말 한 마리의 가격은 지금의 자동차 한 대 값과 같다고 했다.

그러니 엄청난 돈이다. 사또 임기가 3년이니까 사람은 3년마다 한번씩 그돈을 마련해야 했다. 게다가 관리가 사또만 있는건 아니었다. 사또는 말 여덟마리 사또 바로 아래관리는 몇 마리 그 아래는 또 몇 마리 이런 식으로 서열에 따라 전별금이 정해져 있었다. 이걸 마련한 일이 순천 백성에게 얼마나 큰 고역이었을까.

상상만해도 크나큰 부담이었다. 최석 사또가 임기를 마치고 순천 사람들은 말 여덟마리를 준비해 바친다. 최석은 이 말들에 짐을 싣고 개경으로 떠났다. 그런데 개경에 도착한 뒤에 순천으로 말을 돌려 보낸다. 심지어 말 여덟마리가 아니라 아홉 마리를 보냈다. 자신이 처음 부임할 때 타고 있던 말이 새끼를 낳았는데 이 말을 순천의 녹을 먹을 때 생겨난 것으로 순천의 재산이라면서 그 말까지 함께 돌려 보낸 것이다. 순천 사람들은 몹시 당황했다.

어라? 이런 관리도 있네? 이거 정말 기념비적인 일이다. 그래서 최석 사또 공덕비를 세우는데 그것이 바로 팔마비이다. 팔마비는 기록상 백성들이 세운 최초의 공덕비이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조선시대에는 이 팔마비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환다. 순천은 청렴의 도시로 불렸고 순천하면 팔마 그리고 최석을 떠올렸다.

특히 <지봉유설>을 집필한 이수광은 최석의 열렬한 팬이었다. 최석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모두 최석을 보고 배우자 하고 외치고 다닐정도였다. 이 팔마비 때문에 나중에는 웃지못할 일이 생기기도 했다. 사또가 부임하기도 전에 공덕비를 세우는 곳도 있었다. 그중 한곳이 안성이었다. 안성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여러 사람에게 물으면 라면 이름이 나온다. 예로부터 안성이라고 하면 무조건 유기였다. 유기는 몰라도 안성맞춤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말도 유기 때문에 생겼다. 당시 안성에는 장에서 팔기위한 장내기 유기와 주문을 받아 제작하는 맞춤 유기가 있었다. 당연히 맞춤 유기가 더 품질이 뛰어나고 값도 비쌌다. 안성 맞춤을 안성의 맞춤 유기처럼 품질 좋은 물건을 뜻하는 말이다. 지금은 딱 맞는다 잘어울린다는 의미다. 이렇게 새로운 말이 생겨날 만큼 안성유기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러니까 사또들은 안성에만 가면 유기로 한 몫 챙기려고 혈안이 되었다. 결국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방법을 생각해 냈다. 만약에 최태성이라는 사또가 부임 한다면 최태성 사또는 하늘이 내린 분이고 무지 청렴하며 백성을 위하고...이런 내용의 공덕비를 미리 세우는 것이다. 새로운 사또가 조금이라도 찔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선수를 치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지금 남아있는 공덕비 중에는 사또가 자기 자랑하려고 스스로 세운 공덕비가 많다고 한다. 그런면에서 순천의 팔마비는 확실히 그 가치와 격이 다르다고 할수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와 삶의 시간을 잘 살아낸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세부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그 궤적은 같다. 자기만의 중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갔던 사람들이리다.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이런 분위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물질만능 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 일수는 없다. 아무뤼 가진게 많은 사람이라도 인격이 부족하고 그사람만의 됨됨이가 없다면 진정한 인사가 되지 못할 것이다.

강진에 다산의 실학사상이 있다면 순천에 최석의 현실이행은 큰 뜻을 실천한 결과이면 민심을 거스리지 않고 오직 민과 함께 삶이 연결된 그의 깊은 내면은 민을 위한 사상 만인에게 공감주위 영원이 그 이름 남겼다.

남을 잠들지 못하게 했던 열정의 흔적 가슴  뛰게 했던 용기의 실천 세상을 사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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