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가을날 오후의 단상(斷想)
[다산로] 가을날 오후의 단상(斷想)
  • 강진신문
  • 승인 2020.10.1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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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오후 5시.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산비탈을 오른다. 햇살은 아직도 따갑다. 눈 아래 저 멀리 들판은 황금색으로 온통 노랗다. 지루한 장마끝에서도 벼는 익는다. 산 기슭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가냘프다.

긴 치마를 휘감고 있는 가느다란 여인들의 허리다. 능선의 저쪽 장군봉 산비탈에 온통 억새가 하얗다. 바로 가깝게 마량 만호성이 길게 마을을 껴안고 돈다. 등허리에 땀이 흐른다. 산이라고도 할 수 없는 나즈막한 봉우리지만 경사가 가팔라 숨이 가쁘다. 지난여름 내내 아침 5시에 일어나 여기를 올랐으나 며칠전부터 저녁나절로 바꿨다.

드디어 북산의 정상, 여느 때처럼 팔각정에 오른다. 산 밑의 가을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씻긴다. 눈 아래 송림사이로 저 멀리 덕동포구가 펼쳐진다. 아름답다. 한폭의 그림이다. 여행을 좋아하여 많은 날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저토록 아름다운 경치는 흔치 않았다.

지난겨울 어느 날에는 모처럼 눈이 쏟아졌다. 마치 수천수만의 나비가 춤을 추며 바다위를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마량과 고금을 있는 고금대교 저 멀리 비단결처럼 푸르른 바다, 유구한 날 그 수면을 안고 높고 낮게 떠 있는 섬들-. 고려 때 어떤 시인이 모란봉의 부벽루에 올라 대동강물과 강 건너 펼쳐지는 들판, 그리고 크고 작은 산들을 바라보면서 < 긴 성벽 기슭으로 도도히 강물 흐르고 넓은 벌 동쪽은 점점이 산이로다 …'> 라고 시를 지었지만 그 글귀 뒤로 더 이상의 시구가 떠오르지 않아 통곡을 하며 내려왔다는 부벽완월(浮壁玩月)이 이랬을까?

멀리 바다를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난다. 너무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이 순신 장군의 숨결이 느껴지면서 피비린내 나는 우리의 역사가 떠올라서이다. 1597년. 모함에 의해 이순신장군은 영어의 몸이 됐다. 그러나 원균의 패배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라 해남 명량에서 대승을 거둔다. 그리고 그 수군을 이끌고 지금 눈앞에 펼쳐저 있는 저 곳 고금도 덕동포구에 진영을 꾸린다. 장군이 자리를 비우는 사이 일본의 만행은 극에 달했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그들이 그 기간동안 우리백성들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가지고 간 숫자가 몇 십만 이라고 했다. 코는 군인이나 농민, 여자나 남자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어민도 농민도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무참히 죽여 그들 공훈의 결과물로 만들었던 것이다. 셋째아들의 전사소식을 듣고 통곡 또 통곡을 했다는 장군이 저곳에 머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김 훈의 '칼의 노래' 몇 부분을 옮긴다.

(전략) 고금도 덕동포구의 앞바다에서 섬들은 첩첩이 겹치면서 흩어져 있었다. 일출의 바다는, 섬 사이를 붉은 띠로 휘돌아, 바람이 적 쪽으로 몰려가고 물결이 잠드는 조금 무렵에 바다는 내수면처럼 고요했다. 무술년의 햇볕은 깊고 힘셌다.(후략) 그 바다에서는 늙은 어부들만이 안개 속을 드나드는 섬과 바위들을 목측으로 엮어가며 항해 지표를 더듬어낼 수 있었다. 고금도에서 나의 군사들은 혈거했다. 장졸들은 진흙으로 담을 올리고 거적으로 지붕을 덮은 군막에서 잠들었다. 고금도에서 장졸들에겐 끼니때마다 소금에 절인 푸성귀를 찬으로 먹였고, 말린 생선을 씹어서 소금기를 채웠다.(후략 *여기서 <나>는 이 순신 자신임)

'약무호남 이면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 또한 없다) 라고 했던 장군이 노량에서 전사 후 저곳 고금도에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80여 일간 초분으로 안장되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 호남인만이 당신을 지켜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풍광 때문이었을까? 이 가을날, 슬프도록 아름다운 포구를 바라보며 상념에 쌓인다. 400여 년 전, 나라의 존망이 백척간두에 있었음에도 조정의 정치인들은 사리사욕과 파당에만 몰두했다.

이 순신 장군을 막론하고 김 덕령 장군도 곽 재우 장군도 모두가 그들의 정치싸움에 의해 모함을 당해 죽거나 유배를 당했다. 그런데 지금도 정치하는 자들의 행태는 그때 그들과 하나 다르지 않다. 왜구의 침입을 당파에 이용했듯 이시각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까지도 정치에 이용한다. 오직 그들에게는 자신의 영달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교활함만이 있을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들의 간악함에 몸서리가 처진다. 아놀드 토인비의 말이던가? '역사는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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