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양의 노전은 지역이 아니라 일반 '갈대밭'
애절양의 노전은 지역이 아니라 일반 '갈대밭'
  • 강진신문
  • 승인 2020.09.2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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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 신영호의 강진이야기] 蘆田에 대하여
문화해설사들이 모여 강진 애절양의 내용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있다.

 

그동안 ‘다산선생’께서 강진 유배 생활 중 1803년 가을에 사의재에서 ‘애절양’시를 지었다.

그 시에서 ‘노전’장소에 대해서 지금까지 설왕설래로 하였던 곳이 남당포-남포, 도암면 용산 등 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문화재 전문위원인 김희태 선생의 조선 시대 ‘조선지지’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1911년 ‘조선지지’ 강진 편과 전체 지명을 대조하여 본 결과 노전(蘆田) 이라는 지명은 조선 지지에 강진편 호라면(虎羅面 현재의 군동면-호계·라천) 3곳에서 나오며 (평리2곳, 영덕리(영포+호계)1곳) 있다. 이는 노전이라는 곳이 특정지역을 나타내기보다는 그냥 일반적으로 갈대밭을 총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민교수의 글을 보면 이렇게 나온다. 남근을 자른 기막힌 사연.

황상의 시는 스승을 닮아 카랑카랑 하였다. 1803년 봄, 바닷가 노전리(蘆田里)에 사는 백성이 칼로 제 남근(男根)을 잘라버린 참혹한 사건이 있었다. 황상이 전후 사정을 듣고는 분을 못 참고 이 일을 시(時)로 노래했다. 애절양(哀絶陽)이다.

노전 사는 젊은 아낙 곡소리 길고 길다     蘆田少婦哭聲長
가진 아이 못 기르고 지아빈 남근 잘라     婦孕不育夫絶陽
시아버지 죽던 해에 포수로 차출되고       舅死之年砲手保
올해는 봉군에다 충군까지 겹쳤구나        今年烽軍叠充行
칼을 갈아 방에 들자 피가 자리 가득하니   磨刀入房血滿席
민 땅 아이 잔혹함이 실로 또한 근심겹다.  閩囝殘酷良亦慽
돼지와 말 불알 까도 오히려 구슬픈데      豶豕騙馬尙可悲
하물며 사람으로 혈맥을 자르다니          况乃人類戕血脉
부잣집은 1년 내내 세금 한 푼 안 걷고     豪家終歲無寸費
종과 거지 부류들은 착취하여 상케 하네    剝割偏傷傭丐類
이 법을 안 바꾸면 나라 필시 약해지리     此法不變國必弱
한밤중 이 생각에 속이 부글 끓는구나.     中夜念此腸內沸

조선시대 조선지지에 나온 노전에 대한 자료

 


아낙네의 때 아닌 곡성이 날카롭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던 해에도 포수보(砲手保)로 차출되어 군포세를 내야 했다. 그때는 참고 냈는데, 올해는 자신을 봉군으로 동원하다는 영이 내렸다. 여기에 갓 태어난 핏덩이까지 충군하다는 날벼락 같은 통고를 받았다. 이른바 악랄한 백골징포(白骨徵布, 죽은 사람의 이름을 군적과 세금 대장에 올려 군포를 걷던 일), 황구첨정(黃口簽丁. 어린아이를 군적에 올려 군포를 징수하던 일)의 현장이다.

이치로 따져본들 눈 하나 깜짝할 자들이 아니다. 악이 받쳐 눈이 뒤집힌 그가 칼을 시퍼렇게 갈아 방으로 뛰어들어 순식간에 제 남근을 잘라 버렸다. 이것만 없어도 자식을 낳지 않았을 텐데. 차라리 나를 죽여라. 방안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제6구에 고사가 있다. 당나라 때에는 민(閩) 땅 백성을 골라 환관을 삼았다. 환관의 살림이 자못 부유했으므로 이 곳 사람들은 사내아이를 낳으면 거세부터 했다고 한다. 이렇듯 밥술이라도 뜨고 살려고 자식을 거세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았지만, 제 손으로 제 남근을 잘랐다는 기막힌 말은 아무데서도 들은 적이 없다. 다산의 다음 편지는 아무래도 황상의 위 시를 보고 쓴 내용으로 보인다.

밤에 아프진 않았느냐? 안 아프거든 기름 모자를 쓰고 나막신을 신고서라도 밥 먹은 뒤에 바로 오너라. 혹 밀가루 풀이 있거든 조금 가져오겠니? 이 시는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 젓갈을 너무 자주 가져오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후에는 그러지 말도록 해라.

황상은 종종 스승의 밑반찬을 마련해 밥상에 올렸다. 다산은 마음이 편치 않으니 고맙지만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타일렀다. 비가 와서 길이 진창인데도 굳이 제자를 불렀다. 밀가루 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보내온 시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황상은 아전의 자식이었다. 아전의 자식이 아전의 포학을 고발한 내용이어서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간 공연한 사단을 만들기가 쉬웠다.

정작 다산 자신도 공분을 못 이겨 나중에 같은 제목의 시를 한 수 따로 지었다.

노전 마을 젊은 아낙 곡소리도 길구나                     蘆田少婦哭聲長
현문(縣門)향해 곡하면서 하늘 보며 울부짖네.              哭向縣門號穹蒼
전쟁 나가 못 오는 법 그래도 있다지만                    夫征不復尙可有
남근을 잘랐단 말 옛날에도 못 들었소.                    自古未聞男絶陽
시아버지 상 끝나고 아인 아직 핏덩인데                   舅喪己縞兒未澡
삼대의 이름이 군보(軍保)에 올랐구나.                     三代名簽在軍保
가서 암만 호소해도 문지기는 범과 같고                   薄言往愬虎守閽
이정(里正)은 으르대며 외양간 소 끌고 가네.               里正咆哮牛去早
칼을 갈아 방으로 가 피가 자리 가득하니                  磨刀入房血滿席
자식 낳아 곤액 당함 한스러워 그랬다오.                  自恨生兒遭窘厄
잠실(蠶室)의 음형(淫刑)이 어이 허물 있으리오.            蠶室淫刑豈有辜

민 땅 아이 거세함은 실로 또한 슬프도다.                 閩囝去勢良亦慽
생생(生生)의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라                    生生之理天所予
하늘 도는 아들 되고 땅의 도는 딸이 되네.                乾道成男坤道女
말과 돼지 불알 깜도 서럽다고 말하는데                   騸馬憤豕猶云悲
은혜로 차례 이을 생민(生民)이야 오죽할까                 況乃生民恩繼序
부잣집은 1년 내내 풍악소리 잡히면서                     豪家終歲秦管弦
곡식 한 톨 비단 한 치 내는 법이 없다네.                 粒米寸帛無所捐
다 같은 백성인데 차별 어이 이리 하나                    均吾赤子何厚薄
객창에서 자꾸만 「시구」편을 외우누나.                    客窓重誦鳲鳩篇

스승의 시는 서사가 한결 조리가 있다. 1구는 황상의 것과 꼭 같다. 일부러 같게 써서 두 작품의 연관성을 밝혔다. 중간에도 같은 어휘가 여럿 있다. 남자가 양근을 자른 이유가 막판에 이정이 세금 대신 목숨 같은 소를 끌고 갔기 때문임이 새롭게 확인된다. 이웃의 부잣집은 1년 내내 흥청망청 잔치로 해가 저물어도 세금 한 푼 내는 법이 없다.

어이 가난한 백성에게만 이처럼 포학을 부리는가? 끝에 나오는 「시구」편은 『시경』 ‘조풍(曹風)’중의 작품이다. 공평하고 균등하게 사람을 대하는 군자의 아름다운 덕을 칭송한 시다. 위정자의 심각한 반성을 요청했다. 이 작품에 대해 다산은  『목민심서』 권8, 「첨정簽丁」조에서 앞 뒤 사연을 따로 설명했다. 다산의 글은 이렇다. “이 작품은 가경 계해년 (1803)가을, 강진에 있을 때 지은 것이다. 당시 노전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군보에 편입시키고 이정이 소를 빼앗아갔다. 백성이 칼을 뽑아 스스로 그 양근을 잘라버리고선 말했다.

‘내가 이 물건 때문에 이 같은 곤액을 받는다.’그 처가 양근을 가지고 관아 문에 달려가니, 피가 아직도 뚝뚝 떨어졌다. 통곡하며 하소연해도 문지기가 이를 막아버렸다. 내가 이 말을 듣고서 이 시를 지었다.”

『치원유고』로 보면 황상이 이 시를 지은 시점은 늦봄이었다. 반면 다산은 가을에 지었다. 두 작품 사이에 얼마간의 시간적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두 사제는 같은 제목으로 함께 시를 지었다. 제자는 스승이 직접 시범을 보인 작품을 읽고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는 한편, 스승이 자기 시에 공감해 준 것에 크게 감격했을 것이다.

군동면사무소에 위치한 탐진강 공사 내역을 알리는 비석

 

<참고문헌>
정민(2011),「삶을 바꾼 만남」 문학동네/본문 발췌
조선지지(1911),국립중앙도서관 소장/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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