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노년4고(老年四苦) - 농촌의 하루 -
[다산로] 노년4고(老年四苦) - 농촌의 하루 -
  • 강진신문
  • 승인 2020.09.1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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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수필가

무료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나 하루가 너무 길다. 젊었을 적 그토록 바라던 휴일이 년 중 이어지는데 이것이 어느 날 부터 지루함으로 변한 것이다.

이렇게 1년을 보내고 년 말에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세월만 흘려보낸 텅 빈 한해가 된다. 그리고 지나간 한 해가 쏜살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서 읽은 글 구절이다. '하루를 바쁘게 살면 1년은 길고 하루를 더디게 살면 1년은 빠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30대에는 세월이 30㎞의 속도로 가고 60대에서는 60㎞로 간다' 고 했을까? 정년 후 몇 년 간은 그렇지 않았다. 정년을 했을 때 남들은 무료하여 강가로 출근을 했니,
너무나 긴 하루니라고들 했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바빴다.

재직 때 하지 못한 일들을 이제는 해 보려니 하며 조금은 설레기까지 했다. 정년과 동시에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리고 한편으로 검도를 시작했다. 이런 것 들은 예전에도 가끔씩 하던 것들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문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래서 집에서는 글을 쓰고, 검도 도장에선 운동을 하고, 또 학원에선 대학, 중용, 논어 맹자와 시경 등을 공부했다. 그때는 정말 하루가 짧았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내가 보아도 우습다 할 글들을 많이 썼다. 단편과 꽁트 그리고 수필과 시 등 책 한권을 발간 할 수 있는 분량이다. 죽은 후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미암유록(微巖遺錄:가칭)에 실릴 것 들이었다. 그리고 예상치 않게 수필가의 명칭도 얻게 되었다. 이른바 등단 작가가 된 것이다. 

친구의 권유로 모 중앙지에 수필 한편을 투고했는데 당선이 돼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또 검도 유단자도 되었다. 그래서 공인단증과 날이 시퍼렇고 1m가 넘게 긴, 칼집에 용(龍)의 자개문양이 새겨진 진검(眞劍)도 갖게 되었다. 거기다 또 한문지도사 자격증까지 취득을 하였다.

시작 할 때 어렴풋이 계획은 세웠지만 언감생심 이루리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들이었다.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여 성취하면 하루는 짧지만 1년은 길다' 라는 얘기를 하려다 의도와는 다르게 무슨 자랑 비슷한 전제가 되어버렸다. 차치하고, 그때는 어떻든 보람차고 긴 한해 한 해였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가 못하다.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다. 집사람은 정년 할 당시부터 시골로 가자고 했었다. 시골에는 한옥 한 채와 몇 마지기의 전답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의욕을 가졌다.

집을 수리하고, 기와담장을 쌓고, 그리고 정원연못을 만드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또 한편으론 논농사를 인수(?)받아 지었다. 그런대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모두 끝나고 3년차에 접어들자 이젠 더 할 일이 없어졌다. 목표가 없어진 것이다. 목표가 없으므로 계획 또한 사라졌다. 하루가 더디게 가고 무료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년 말에 생각해 보면 1년이 순식간에 가버렸다. 목표와 그리고 성취한 것이 없어서일 것이다.

선인(先人)들은 노년의 4가지 고통을 빈곤(貧困). 병(病). 그리고 외로움(孤)과 할 일 없음(無爲)이라고 했다. 그 중 외로움과 할 일 없는 것은 참으로 큰 고통이다.

새벽에 일어나 산행과 바닷길 산책을 1시간 동안 한다. 그리고 아침식사 후 그라운드 골프를 또 한 시간가량 하고 돌아온다. 그 외에는 할 일이 없다. 간혹 논을 돌아보고 예취기로 논둑을 베곤 하지만 그것이 무위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뜨락의 정원수를 다듬는 일 그리고 잡초를 뽑는 일, 그런 것들도 목표가 없는 그야말로 일시적인 일일 뿐이다. 그 나머지 시간은 그냥 흘려보낸다.

집사람은 요즘 와서 들 건너 밭에다 축사를 짓자고 한다. 내가 반대했더니 그러면 허가만 내 달라고 한다. 글쎄, 소를 키우면 무료함이 없어질까? 그래서 외로움도 가실까?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이에 그것은 또 아닐 것 같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도연명의 글들에도 노년의 외로움이나 무위에 대한 구절은 없다. 혹시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더 늦기 전에 노년 4고 중 외로움과 무위 즉 할 일 없음을 해결하기위해 어떠한 목표를 세우고 그리고 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목표가 인생을 즐겁게 하고'(로버트 슐러) '짧은 인생은 시간의 허비로 인해 더욱 짧아진다'(사무엘 존슨)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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